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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Oct 03. 2020

수영장에서 인생을 생각하다

나의 수영 라이프를 되돌아보며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해였던 아홉 살의 겨울, 그것도 학기가 시작하는 3월이 아닌 1월부터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러 가게 됐는지 자세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엄마가 수영 수업을 등록했던 것 같다. 하필 1월이라 날씨도 추운데 물에 들어가야 하는 데다 원래 물도 무서워해서 수영 가는 게 즐겁지 않았다. 그래도 죽을 만큼 하기 싫지는 않았는지 일단 다니고는 있었다. 


     그렇게 수영을 약간 할 줄 알게 되었던 어느 날, 정규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남은 시간을 쉬는 시간으로 주면서 물에서 마음껏 놀라고 했다. 그래서 다른 애들은 다 물에서 첨벙 대고 놀고 있는데 그때부터 친구도 쉽게 사귀지 못하고 물도 무서워하던 나는 수영장에서 나와 물에서 한 발 떨어져서 노는 애들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본 애들 중 누군가가 장난을 친답시고 물에서 나와 몰래 내 뒤로 와서는 나를 수영장 안으로 떠밀었고 나는 그대로 물에 빠졌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너무 놀랐다. 지금도 그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꽤 충격을 받았던 것 같기는 한데, 수영을 배워서 할 줄은 알았으니까 큰일이 나진 않았다. 


     지금은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물을 덜 무서워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확실히 그 일이 있고 나서 물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다녔던 수영장에선 자유형에서 배영으로, 배영에서 또 평영으로 영법을 하나씩 마스터할 때마다 배지를 줬는데 그 배지를 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 수영을 열심히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이사를 하게 되어 더 이상 급수를 올리지 못한 채 수영장을 그만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선 방학 같은 때에 간간이 수영을 다녔고, 대학생이 되어 다시 수영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오랜만에 수영장을 찾았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어깨가 항상 결렸었다. 또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구두를 신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발을 삐끗했는데 빨리 치료를 하지 않아 인대가 늘어나 발목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발목 때문에 무리한 운동은 할 수 없었는데 물에서 운동을 하면 발에 부담이 없으니 이것이 다른 운동이 아닌 수영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수영 자체는 이미 배워서 할 줄 아니까 진도에 욕심 내지 않고 천천히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수영을 다시 시작한 건 진도를 나가겠다는 욕심보다는 재활의 목적이 컸다. 하지만 실제로 수영을 하다 보니 운동 자체에서 얻어지는 활력이 좋았다. 그대로 접영 단계를 지나 처음으로 오리발도 신어봤다. 오리발을 신으니 힘겹게 손과 발을 저으며 수영했던 거리가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수영이 쉬웠다. 대학생 이후로는 정규 수업은 다니지 않고 시간이 될 때마다 자유수영을 다니며 수영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레인을 오가며 떠오른 생각이 있다. 



수영장은 인생의 축소판이 아닐까? 



     수영장엔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이제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엄마와 함께 하는 수영 수업을 듣는 아기들부터 실내 수영장인데 워터파크 온 거 마냥 물 튀기고 까불어대는 초등학생들도 온다. 공부하고 학원 가고 시달리느라 그리고 왠지 수영장은 부끄러워 잘 오지 않을 것 같은 중, 고등학생들도 가끔 있고, 대학생이 되면서부턴 대'학생'이지만 20살이 넘었으니 성인반으로 등록해서 사회인들과 같이 수영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중, 장년의 남성 분들도 꽤 계시지만 역시 실내 수영장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힘찬 목소리의 중년 여성들과 파워 워킹하시는 할머니들이다. 정말 실로 다양한 사람이 모여 그 좁은 공간에서 헤엄을 치는데 정말 남녀노소가 다 모인다. 이 크기의 공간에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니, 수영장은 수많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참 이상하게도 어느 수영장을 다니던지 수영장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대체적으로 목소리가 걸걸하면서 살짝은 툴툴거리는 말투로 수업을 진행하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걸 보면서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의 어린 시절의 수영 선생님들도 그랬던 것만 같아 괜히 웃음이 났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여기 있네? 하하하. 그리고 아주머니들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수영법에 대해 오지랖 아닌 오지랖과 훈수 두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렇게 말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수영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닌데, 그저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런 말들로 물꼬를 트려고 하시는 것 같다. 


     전부 하늘색 타일로 덮여있는 네모 모양의 수영장을 빨강-노랑-파란색이 반복되며 이루어진 레인 구분선으로 레인을 여러 개로 나누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쨍한 원색으로 이루어진 수영장이라는 공간에 모여 각 레인 안에서 살기 위해 각자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다.


     수영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물에 대한 공포라는 게 사실은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공포와 같은 게 아닐까? 물은 투명하니까 안이 다 들여다 보이니 전부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물에 뛰어들면 숨이 턱턱 막혀오기 시작하니, 물을 알거라 생각했던 건 오만한 생각이다. 


     잠깐잠깐 숨을 내뱉으러 물속에서 나오는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 잠깐씩 호흡하는 이 찰나의 순간이 없다면 수영하는 게 너무 괴로울 것이다. 사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힘든 일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매일을 보내다 어쩌다 잠깐씩 맞이하는 소중한 순간들이(혹은 소중하다고 느껴야) 지겹다고 생각되는 이 평범한 일상을 받쳐주는 든든한 기둥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남들보다 빨리 가려고 해도 결국 같은 레인 안에서 빙빙 도는 건 아닐까? 그러니 타인에게 휩쓸리지 않고 내가 만족하는, 나에게 맞는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수영을 하다 보면 옆 레인과 비슷하게 출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옆에 가는 사람을 너무 의식하다 보면 자세가 흐트러지고 그러다 보면 속도가 느려지고 잡생각이 들며 결국 엉망진창이 되어버려 페이스를 다시 찾는데 시간이 걸린다. 


     수영장에선 아무리 느려도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서 팔을 똑바로 젓고, 발차기를 하고 중간중간 호흡을 하면 결승점에 도착한다. 다만 영법이 정해져 있는 수영과 다르게 인생엔 정해진 인생법(?)이 없다. 그렇지만 인생에 마지막 지점이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 나에게 집중하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내가 수영을 하며 내린 인생에 대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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