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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Sep 16. 2020

강남역 4번 출구의 그녀

강남 한복판에서 삶의 비애를 보다

     이제 약 2년에 걸친 강남 출근의 끝이 보이고 있다. 우리 집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면 강남역까지 한 방에 갈 수 있지만 내가 타는 구간은 일명 '지옥'이라 불리는 신도림 -> 잠실 방향이고 출근이 9시까지라 시간대 또한 최악이라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버스를 타고 다니고 있다. 


     버스를 타서 좋은 건 해가 쨍쨍 내리쬐면 내리쬐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깥 풍경을 보며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버스에서는 무슨 노래를 들어도 잘 어울린다. 그리고 그나마 강남 출퇴근을 하며 얻은 소득이라 하면 차도 없는 내가, 차 있는 남자 친구도 없는 내가 잠깐이나마 차를 타고 한강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그날도 그런 날들 중에 하나였다. 그래도 마음이 한 가지 편안했던 건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간 덕택에 차도 안 밀리고 사람도 없어서 조금 여유로워 좋았고, 이 회사에 입사한 지 3개월 이후부터 계속 바라던 이직이 드디어 결정된 것이다. 아주 고맙게도 나에게 최종 합격 이후 한 달이란 여유시간까지 허락해주었다. 그게 조율이 안 돼서 최종에서 안 된 경우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출근길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새로운 회사에 가면 다시 적응하느라 힘들겠지만 일단 그 전까진 지금 회사에 다니는 것은 매우 마음이 편하다. 그래, 뭐 한 달도 안 되는 이 시간들만 참으면 되는데 라며 힘을 낼 수 있다. 


     그날도 강남역에서 버스는 멈추어 섰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려서 버스는 더욱 한산해졌다. 나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아하니 잠에서 깨서 그저 멍하니 밖을 보고 있었다. 강남역 주변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중에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보아하니 광고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광고지를 들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식당이나 피트니스센터 광고지를 무자비하게 나눠주는 사람들처럼 약간 막무가내 정신으로 나눠줘야 하는데(그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이 받는다) 그러지도 우물쭈물 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젊어 보이는, 내 또래이거나 그보다 어려 보이는 여자였다. 버스가 신호에 걸려 멈춘 바람에 그 상황을 한참 보게 된 나는 제발 그 길 폭이 넓은 거기 말고 길목이 좁아서 사람들이 딱 그 사이로만 지나다닐 수밖에 없는 곳으로 가기를 바랐다. 


     그 길 끝에 서서 나눠주면 사람들이 그걸 받아야 지나가기가 수월하니 지금보다는 많이 받을 텐데, 그러면 빨리 퇴근할 수 있을 텐데 하며 살짝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보기에도 거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예상했던 곳을 지나서 강남역 4번 출구까지 갔다. 아, 거기도 나쁘지 않지. 퇴근길에 가끔 지하철을 타면 그 출구는 거의 100% 광고지를 나눠주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러 나온 사람이 꼭 있었으니 광고지를 나눠주거나 뭔가 그런 걸 하기엔 좋은 자리라는 건 증명된 셈이었다. 


     그런데 거기로 이동한 그녀는 광고지는 안 나눠주고 주위를 한참 두리번거리더니 4번 출구 앞 공사장에 앉아있던 공사장 아저씨에게 뭐라 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공사장 아저씨한테 광고지를 나눠주는 건가, 했는데 순간 아저씨가 핸드폰을 들고 광고지를 나눠주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찍고 있었다. 여자는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신호가 바뀐 버스는 출발했다.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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