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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Oct 11. 2020

오케스트라에 참여한다는 것은 (1)

피아노에서 바이올린으로, 다른 세계와의 첫 만남


     나는 음악에 관심이 있는 편이다. 우리 엄마는 피아노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결혼 전에 피아노를 배워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혼수로 가져온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피아노를 치지도 못하면서 앉아서 건반에 손을 얹어놓고 찍은 사진도 있다. 결혼하고 나서 엄마는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기에 나는 피아노를 배우러 학원에 다녔다. 실력이 늘으니 재미가 붙긴 했지만 피아노 학원에서 가르치는 건 재미없었던 바이엘과 손가락 연습하는 하농 같은 것들 뿐이었다. 어느새 의무감으로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바이올린과 만나게 된다.






     때는 초등학교 5학년이 끝나가던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복도를 지나가는데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창 너머를 들여다보니 방과 후 수업으로 열린 바이올린반에서 나는 소리였다. 교실 안의 아이들은 전부 각자의 바이올린을 왼쪽 어깨에 얹은 채 활을 그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쳐온 나에겐 악기라 하면 항상 의자에 정자세로 앉아 건반에 손가락을 올려놓는 피아노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었다. 바이올린 연주는 텔레비전 속에서나 본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내 눈 앞에 바로 그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교실에선 실력이 그만그만한 아이들이 연습 중이라 텔레비전에서 들은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 않았는데도 나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 '모습'에 넋을 빼앗겨 버렸다. 바이올린을 꼭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았다. 


     평소의 나는 잘 조르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데 그 날만큼은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바이올린이 그리 대중적인 악기가 아니었고 아는 사람 중에 하는 사람도 없어서 도대체 이걸 어디서 사야 하는지, 가격은 얼마 정도 하는지도 몰랐다. 엄마는 학교에 전화를 해서 방과 후 수업 바이올린 강사님의 연락처를 받아 직접 물어봤다. 


     알고 보니 그 선생님은 나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 다니는 학생을 둔 한 명의 엄마이기도 했다. 방과 후 수업이니 수업료는 저렴했는데 악기 가격이 비쌀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저렴한 연습용 악기도 있다고 했다. 선생님께서 10만 원대의 악기를 사다 주셨고, 그것이 나의 첫 바이올린이 되었다.


     바이올린을 하겠다는 핑계로 하기 싫었던 피아노를 그만두고 다음 해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피아노를 했으니 악보 보는 법, 음정, 장/단조 등은 구분할 줄 알았지만 현악기는 건반악기와 달랐다. 피아노는 정확한 음정이 정해져 있으니 그 건반을 누르면 정확한 소리가 나니까 음정 부분은 기초로 깔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있다. 


     그런데 현악기는 내가 손을 짚는 위치에 따라 음이 나기 때문에 손을 정확히 짚지 않으면 음정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일단 음정부터 '어느 정도는' 정확히 짚어야 그다음 단계로 강약 조절이나 감정 표현 등이 가능했다. 그리고 난 오른손잡이인데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왼손으로 세밀하게 현을 짚으면서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정확한 자세로 활을 잡고 현을 긋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소리가 아닌 괴상한 소리가 났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실력이 늘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방과 후 수업뿐만 아니라 특별활동반(일명 C.A.)까지 바이올린반을 선택했다. 방과 후 수업 선생님이 특별활동반도 맡아서 하셨고 그렇게 나는 방과 후 수업에다 특별활동까지 1년 동안 바이올린을 열심히 했다. 실력이 쭉쭉 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었다. 내가 가려는 중학교에는 방과 후 수업이나 특별활동에 바이올린반은 없었다. 그래서 계속 바이올린을 하려면 개인 레슨을 받아야 했다.


     그러던 중 2월에 졸업을 앞두고 바이올린 선생님께서 엄마한테 직접 전화가 왔다. OO이(나)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 더 시켜볼 생각은 없냐고. 나도 내가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1년 내내 방과 후 수업에다 특별활동반까지 다 참여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눈여겨 보신 것 같다. 개인 레슨으로 이어가서 선생님의 수입을 늘리기 위한 밑밥(?)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선생님은 칭찬을 해주셨다. 


     마음속으론 개인 레슨을 받고 싶었지만 바이올린을 시작할 때도 초등학교 6학년이 이제 공부해야지 무슨 악기를 배우냐며 아빠가 싫어하기도 했었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는 부모님 모두 공부에 더 집중하길 원하시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엔 IMF가 터져 집안 경제가 언제 휘청거릴지 모르는 불안한 시대였고, 레슨을 받아도 전공할 생각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단순한 취미활동을 위해 추가로 돈이 들어가는 레슨을 받는다고 하기가 미안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1년 동안 실컷 하고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수업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저 집에서 틈틈이 전에 배웠던 것들을 연습해보곤 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이 시작되면서 학교에 방과 후 수업으로 관현악반이 개설되었다. 음악 선생님 중 한 분이 플루트를 부시는데 그분께서 만든 반이었다. 그래 이거다, 싶어 가입했다. 주로 아이들이 많이 배우는 바이올린 몇 명, 플루트 몇 명, 첼로 정도 있었던 규모가 20명도 안 되는 아주 작은 관현악단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모여서 연습을 하고 2학기 때는 작은 연주회도 했었다. 


     평일 낮에 했던 공연이라 부모님은 오시지 못했지만 그때 왕따를 극복하고 다시 친구가 된 친구들이 와주었었다. 그리고 다시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번엔 내가 스스로 관현악반에 가입하지 않았다. 가끔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연주를 해보다 대학생이 되었다.



 '오케스트라에 참여한다는 것은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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