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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Oct 11. 2020

오케스트라에 참여한다는 것은 (2)

대학생이 되어 본격적인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다

'오케스트라에 참여한다는 것은 (1)'에서 이어집니다.



     나는 경영학부 전공으로 입학했다. 인원이 소수인 학과라면 소속감도 금방 생기고 친해지기도 비교적 쉬울 텐데 내가 입학한 경영학부는 학부 단위로 학생들을 모집했기 때문에 한 학년에 학생수가 200명이 넘었다. 그나마 전체 인원을 반班 단위로 나눠서 같은 반에서 조금 친해진 친구들과 전공 수업을 같이 듣곤 했지만 학교 생활에 뭔가 아쉬움이 있었다. 


     이미 5월이 되어 학교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한 봄날, 친구와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함께 버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왜 있잖아, 전에 ㅁㅁ관 지날 때 오케스트라 동아리 홍보하는 테이블이 있었는데 가서 물어볼까 하다가 못 했었거든. 내가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조금 했었고 관현악 반도 해봐서 오케스트라 동아리도 재밌을 거 같은데 아쉽다.’ 


     그런데 마침 나와 내 친구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던, 같은 반인 데도 불구하고 별로 친하지는 않았던 친구가 자기가 오케스트라 동아리 회원이고 우리 반에 XX이도 동아리 부원인데 중간에 가입해도 괜찮으니 생각 있으면 자기랑 같이 가자는 것이다. 아마 혼자였다면 나는 결국 동아리에 가입하지 못한 채 계속 아쉬워만 하다 대학생활을 마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손을 내밀어줘서 가게 되었다. 


     그렇게 5월이 되어서야 나는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어갔고 들어가자마자 마침 MT도 있어 MT도 갔다. 같은 과 동기가 두 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적응이 쉬웠다. 다른 동기들과는 아직 어색했지만 바로 윗 학번인 여자 선배들이 정말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집에 묵혀있던 악기를 꺼내 연습에 참여했다. 


     그래도 나는 예전에 악기를 배운 적이 있었지만 우리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동아리였기 때문에 악기를 전혀 할 줄 모르다가 동아리에 가입해서 그제야 악기를 구입하고 배우는 친구들도 꽤 많았다. 재미있었다. 실력은 천천히 회복되었지만 그보다 학교에 소속감도 느낄 수 있었고 혼자 연주할 때와는 달리 바이올린, 플루트, 첼로 정도의 조촐한 구성이어도 세 악기가 같이 연주하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같은 과 동기 2명은 집이 지방이어서 방학을 맞아 집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연습에 잘 나오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제 친구들이 없어도,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꾸준히 연습에 나갔다. '동아리'하면 나에게 떠오르는 몇 가지 상징적인 장면들이 있다. 이것은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여름방학에도 주 1회 연습이 있었다. 건물 5층에 있는 동아리방은 학교를 내려다볼 수 있어 좁았지만 에어컨 같은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더웠다. 그렇지만 2학기에는 새로 지어진 건물에 위치한 더 넓고 쾌적한 동아리방으로 옮길 예정이라 그 여름만 버티만 되었다. 


    아마도 나보다 훨씬 더 이전에 있던 선배들이 동아리방 벽을 하늘색 페인트로 칠해 그곳을 하늘로 만들었고, 그 하늘 위에 하얀 구름을 그려놓았던 동아리방에서, 아주 더운 여름날, 연습에 나왔던 10명도 안 되는 인원들이 열심히 활을 그으며 피가로의 결혼 서곡을 연습했다. 나는 그 날이, 그 장면이 왜 그렇게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오케스트라 동아리'라고 하면 그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열정을 돈으로 살 수 없었던 시간, 살면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시간 말이다.


     우리 동아리는 매년 2학기 초인 9월에 연주회가 있었기 때문에 여름방학 때부터는 연주회에서 해야 할 곡도 정하고 더 피치를 올려 연습에 매진해야 했다. 여름방학 중간에 펜션 같은 곳을 빌려 3박 4일로 '뮤직캠프'라는 것을 떠나는데,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연습만 하러 가는 일종의 훈련 같은 느낌이다. 3일 내내 오랜 시간 연습을 하니 얇은 바이올린 현을 짚는 왼손 손가락에 굳은살이 잡혔다. 


     그리고 2학기가 되었다. 집에 가있느라 방학 내내 연습에 나오지 못했던 동기 두 명은 개강하고 나서 동방에 들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다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에 연습에 나오던 친구들 중에서도 연습의 강도나 곡의 강도에 치여 그만두는 친구들도 생겨났다. 


     공연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서곡이나 구성이 간단한 곡들을 하는 편이고 2부는 아마추어라 해도 오케스트라니까 교향곡을 올린다. 다만 그 해엔 동아리 인원도 적고 연습량이 부족해 교향곡 전 악장을 연주할 수가 없어 일부 악장만 연주했다. 나는 예전에 바이올린을 했었다고는 하지만 스즈키 4권 정도의 수준이었고 초등학교 이후로는 레슨도 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2부 무대에 오르기엔 실력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동아리에 늦게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른 날도 나와서 연습하는 모습이 선배들의 눈에 좋게 보였나 보다. 오케스트라의 형태를 갖추려면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나머지 악기들은 전부 전공자들인 음대생들을 객원으로 불러서 무대를 채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우리 동아리 인원들도 가능한 많이 참여를 하는 게 좋기 때문에 선배들은 내가 2부에 서도 된다고 결론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1,2부 공연에 모두 참여하게 되었다.


     공연 당일엔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이쁘게 하고 검은색 정장을 입고 무대에 섰다. 객원으로 현악기도 좀 더 부르고, 플루트 외에는 없는 관악기 파트도 부르고, 팀파니까지 무대에 함께하니 나름 규모가 갖춰진 무대였다. 중학교 때 관현악반에서 연주회를 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이번엔 오케스트라의 주요한 악기 구성이 다 갖춰져 있었고 무대와 조명시설이 갖춰진 곳에서 공연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조마조마했는데 공연시간은 후딱 지나갔다.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가수들이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공연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는데도 공연이 끝나고 하면 허무하다고 하는 게 이런 느낌인 거라는 게 어떤 것인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에 참여한다는 것은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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