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니seny Oct 11. 2020

오케스트라에 참여한다는 것은 (3)

오케스트라는 1+1=2가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낸다

'오케스트라에 참여한다는 것은 (2)'에서 이어집니다.



     그리고 동아리 2년 차가 된 다음 해에는 약간의 욕심이 생겨 초등학교 때 구입했던 저렴한 연습용 악기 대신 30만 원대 정도 되는 악기를 교체했다. 그리고 이제는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연습을 하면서 집행부의 역할도 해야 했다. 신입생 모집, 지휘자 선정, 곡 선정 또 뮤직캠프 일정을 짜고, 연주회 장소를 섭외하는 등의 행정적인 일들이 우리 학번에게 주어졌다. 


     나는 악보계라는 다소 애매한 직함을 가지고 있었고 악보만 잘 관리하면 되는 일이라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동아리 회장, 악장 같이 무거운 직함을 맡은 동기들은 많이 힘들어했다. 신입생 땐 무작정 연습만 잘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연습은 물론이고 후배들 케어에 행정적인 일까지 처리해야 했으니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동기들도 있어 마지막엔 몇 명 남지 않았지만, 울었다 웃었다 하며 2학년의 연주회도 어찌어찌 선배들의 도움과 후배들의 참여로 무사히 마무리하게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 동아리를 하고 싶었지만, 3학년 정도가 되면서 남학생들은 군대에 가거나 여학생들은 어학연수, 미래에 대한 준비 등으로 휴학을 시작해 윗 학번으로 올라갈수록 참여하는 인원이 적어졌고 나도 그에 해당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레슨을 받았었고 지역 오케스트라에 참여해볼까 하며 온라인 카페도 기웃거렸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이제는 거의 악기에 손을 놓아버렸다.


    악기를 혼자 연주할 때도 즐거웠고 뿌듯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곡을 내가 직접 연주할 때의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오케스트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오케스트라는 여러 악기로 이루어져 있다. 개별 악기를 다루는 개인의 실력도 분명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개별 악기들이 모여서 내는 소리는 단순하게 1+1=2가 아니다. 악기들이 모여서 내는 1+1의 가치는 정확하게 환산할 수 없다. 그건 2가 될 수도, 0.5가 될 수도 아니 숫자로는 셀 수 없는 형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각자의 파트를 연습해오고 박자를 맞추고, 음정을 맞춰가면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간다. 모두 크게 실수하지 않고 하나의 곡이 온전하게 연주되었을 때의 그 느낌, 그건 참여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케스트라의 매력에 빠진 것이다. 그 전엔 바이올린을 했어도 클래식 음악을 거의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교향곡이나 소품곡 같은 클래식 음악은 가사가 없는 데다, 교향곡이나 협주곡의 경우 1악장-2악장-3악장-4악장 이런 식으로 이어지다 보면 곡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에 뭘 어떻게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는 적어도 먼저 곡을 찾아서 듣고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교향악 축제에 찾아가거나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 클래식이 흘러나오면 잠시 멈춰서 듣기도 하고, 유럽여행을 갔을 때 현지에서 공연을 보기도 했다. 


     나는 A교향악단은 어떻고 B교향악단이 어떻다더라, 연주자 C의 연주는 이렇고 연주자 D는 저렇다더라까지 구분하는 수준의 청자는 아니다. 다만 그저 내가 좋아하는 몇 개의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사람 정도가 된 것이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 오케스트라 조직이 회사 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선 각 개인이 자기가 맡은 일을 한다. 모두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가 있고, 이것들이 모여 회사의 이익을 내는데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개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팀 내에서의 협업이나 다른 부서와의 협업, 이해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개별 악기의 실력이 훌륭해도 다른 악기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그 곡은 엉망이 되듯이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일이 힘들거나 갈등 상황이 있을 때 오케스트라를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남들이 다 된다는 대학생이 되었지만 소속감도 없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몰라 망망대해에 혼자 버려진 것만 같았던 그때, 동아리 선배들과 동기들과 더운 여름날 작은 동아리 방에서 열심히 활을 긋던 그때를 생각한다. 대단한 실력이 아닌 우리들이라도 한마음으로 연습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에서 주목받는 솔로 파트가 아닌 제2바이올린이어도 나름의 멜로디가 있었고 다른 악기들과 조화를 이루게 해주는 역할을 했음을 떠올리면서, 조직 안의 나는 솔로 악기이자 동시에 다른 멜로디, 음정과도 어우러질 수 있는 존재임을 자각하며 한 곡, 한 곡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고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케스트라에 참여한다는 것은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