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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Nov 15. 2020

작가라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가을의 정취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들은 한마디

(2016년 시점에 쓰인 글입니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지 일 년정도 되어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그때만 해도 한 달에 한 번이나 2,3달에 한번 정도는 계속 어딘가로 떠나고 있었다. 그래서 가을이 다가오니 이번엔 또 어디로 가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이직하면서 생긴 약 1주일의 틈을 이용해 오사카와 교토를 갔었는데, 그때 갔던 교토의 아라시야마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곳이 있지 않을까? 하며 찾아봤더니 담양에 죽녹원이 있었다. 


     나의 국내여행은 거의 8할이 내일로 여행을 통해 이루어진 것인데 담양 근처인 광주에는 간 적이 있었지만 일정 금액을 타고 기차만 타야 하는 내일로 티켓의 특성상 버스를 타야 하는 지역은 추가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제외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죽녹원이야 워낙 유명한 곳이니 다음번에도 언젠가 갈 기회가 있겠거니 해서 가지 않았었는데 아직까지도 가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담양엔 그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었고 가을에 단풍이 들면 정말 멋지다고 했다. 


     그래, 이번 여행의 테마는 ‘가을의 정취를 찾아서’로 정했다. 담양에서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 길에 들르고 다음날 집으로 올라오는 길엔 온양(아산)에서 내려 그 동네의 은행나무길을 걷고 온양온천에 몸을 푹 담그고 집으로 오는 여행의 세부 계획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11월 둘째 주 주말, 여행 날짜가 다가왔다.






     서울에서 담양으로 바로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기차여행을 좋아했고, 광주에서 담양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로 가까운 위치였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광주에 도착해 바로 담양행 버스를 탔다. 1박 2일 여행이라 짐을 최소화해서 배낭 하나가 전부였다. 버스를 타니 금방 담양에 도착했다. 


     죽녹원에 들러 대숲을 구경하고 메타세쿼이아 길에 들렀다. 단풍이 절정인 시기를 지나서 왔더니 사진에서 본 것과는 달리 잎들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단풍을 보기 위해 여행을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담양 구경을 잘 마치고 다시 광주로 돌아왔다.


     담양에 숙소를 잡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날 여행 출발을 위한 기동성 확보 때문이었다. 나는 기차 여행을 하고 싶어 기차를 타고 온양온천역으로 가야 했는데 광주에서 기차를 타고 온양온천역에 가려면 익산에서 한 번 갈아타야 했다. 기차를 환승해야 하니 광주에서도 아침에 더 빨리 출발해야 했다. 그리고 담양보다는 광주가 더 큰 도시다 보니 숙소의 선택권이 넓고 구경할 곳, 먹을 곳 흔히 말하는 핫플레이스가 더 많았다. 숙소는 핫플레이스 중 하나인 양림동에 잡았다. 


     그전에도 광주는 몇 번 와본 적이 있었는데 여행자인 내 입장에서 숙소란 교통도 중요하고, 구경거리도 많아야 하고, 먹을 데가 많은 곳이라면 더더욱 좋다. 양림동은 선교사 저택이나 수피아여고 건물 등 특이하고 오래된 건물이 많이 있는 동네였고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떡볶이집도 있었고 (아직도 있나 모르겠네) 시내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긴 해도 근처에 지하철역도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숙박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몇 년 사이에 양림동은 더 발전되어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더 많이 들어섰고 숙소도 많이 생긴 것 같았다.


     내가 처음 국내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던 2012년만 해도 게스트하우스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나마 대도시나 관광객이 많은 도시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었지만 전부 4인실, 6인실 등의 다인실 형태가 많고 1인실은 잘 없었다. 그때는 나도 어렸고 선택지가 없었으니 4인실, 6인실에서 잤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씩 먹고 사회초년생을 벗어나니 돈도 더 벌기 시작했고 낯선 여행자들과 하룻밤 어울리는 것도 심드렁해질 무렵부터는 같이 자는 게 불편해졌다. 하지만 혼자 여행하는데 호텔 숙박까지는 부담되었으므로 게스트하우스 중에 1인실 방이 따로 있는 곳을 선호했다. 


     당시에는 양림동에 있는 숙소를 예약하려고 보니 내가 예약하려는 곳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서 협동조합 사이트에 들어가서 신청을 하라고 했다. 무사히 예약을 마치고 담양 구경 후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주택가에 있었다. 일반 가정집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에 있는 주택 중 하나였고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젊은 사람이 하는 숙소는 아니다 보니 그냥 편안한 가정집 같은 느낌의 숙소였다. 그런데 투숙객인 나에게 숙소를 설명해주시고는 나가시려는 주인아주머니가 한마디를 던졌다.




주인 아주머니 : 그런데 혹시... 작가세요?
나 : 네? 아니에요.



     내가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던지 동네에 서점이 있는지 그런 걸 묻지도 않았다. 노란 은행 이파리들도 다 떨어지고 쌀쌀해지는 이런 시기에, 안경 쓴 조그만 아가씨가 혼자 백팩을 메고 씩씩하게 숙소를 찾아와 묵겠다고 하니 그냥 놀러 온 사람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글을 쓰며 사는 사람으로 보였던 걸까? 


     작가에 대한 어떤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일까? 그 숙소가 평소에 작가들이 많이 묵는 곳인가? 아니면 최근에 작가가 온 적이 있던 걸까? 아니라고 대답하고 방에 들어왔는데 어이가 없기도 하면서 이런 상황이 재밌기도 했고 정말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거기서 아주머니께 ‘제가 작가처럼 보였나요? 어떤 점에서요?’라고 물어볼 걸 그랬다. 왜냐하면 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까.


     그다음 날 물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기차 시간 때문에 이른 시간에 체크아웃을 했다. 체크인, 체크아웃 시에 모두 주인을 만나지 않고 셀프 체크인으로 운영되는 숙소도 많다. 이번에는 체크인 때는 주인분을 만났지만 체크아웃은 셀프여서 주인 아주머니를 다시 볼 일이 없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 이 정 궁금하면 문자나 전화까지 해서 물어볼 수는 있었지만 관두었다. 기분 좋은 의심으로 간직하기로 했다.






주인 아주머니께,


‘작가’라는 아주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재밌는 에피소드네, 하고 넘겼었는데 

아주머니에게 들었던 그 한마디가 무의식 속에 남아 

제가 이렇게 브런치의 ‘작가’가 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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