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무래도 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 (2)

아무래도 독립을 해야할 것 같다

by 세니seny

어제저녁엔 엄마랑 잠깐 말다툼이 있었다.


이번 추석연휴에 엄마, 아빠와 함께 해외로 자유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일단 어디를 갈지 알아보는 중이었는데 아무래도 이번이 진짜 백 년 만에 올까 말까 한 황금연휴다 보니 비행기표도 잘 없고, 있어도 비쌌다. 그나마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 중에 직항에 가격대도 그나마 덜 비싼 표가 있어 이거다! 싶어 예약을 하려고 엄마한테 보여줬더니 자기는 밤에 도착하는 건 죽어도 싫다고 한다. 이래서 가족 데리고 자유여행 하는 거 아니라고 했구나. 아직 표 예매도 안 했는데 그 말 뜻을 깨닫고 말았다.


이것도 이거였는데 엄마가 요즘 한창 일본어 공부에 빠져서 뭐만 나오면 계속 물어본다. 그래, 뭐, 물어볼 수 있는데 사실 힘들다. 너무 열심히 하는 게 좋아 보이다가도 때로는 좀 무서워 보일 때도 있다. 아무튼 지간에 네이버 사전을 켜서 뭘 물어봤는데 자꾸 엉뚱한 거 누르고 그래서 왜 엉뚱한 거 누르냐, 일단 지금 있는 단어만 들으면 되지 라면서 짜증을 냈더니 엄마도 화가 났는지 그거 하나 알려주면서 왜 그렇게 툴툴되냐, 왜 그렇게 못됐냐 라며 언성이 높아졌다. 어찌어찌 그 페이지는 마무리 짓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퍼뜩 생각이 들었다. 독립을 해야겠구나라고. 전에는 그저 막연하게 '혼자 나가서 편하게 살고 싶다 = 독립하고 싶다'였다면 이번엔 '적당히 크면 서로 떨어져서 사는 게 좋은 거다 = 독립을 해야 한다'라는 깨달음이 머리를 때린 것이다.


엄마도 삼십 년 넘게 세끼 차릴 걱정을 하는 게 지친 거다. 그리고 나도 밤에 들어와서 씻게 되면 엄청 미안해한다. 저녁에 뭐라도 끓여 먹거나 데워먹을라고 하다가도 엄마가 나와서는 밤늦게 부엌에서 뭐 하는 짓이냐고 화를 낼까 봐 결국 저녁을 먹지 않거나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물을 데우는 것에 슬슬 지쳐간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엄마의 신경까지 건드리지 않게 신경 쓰는 것에도 힘이 든다.


그런데다 하나라고 있는 동생은 눈치가 없어서 최소한 미안해하거나 밤늦게는 좀 조용히 해야 할 텐데 전혀 그런 게 없다. 게다가 아직도 사회인으로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러니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 애 몫까지 해야 하는 느낌이라 그것도 사실 부담이다. 동생이 괜찮은 곳에 취직하면 어느 정도 해결될 일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다 컸으면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인 거 같다.


엄마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친척 사촌들 이름을 대면서 '걔네들은 다 대학교 간다 어쩐다 하면서 스무 살 때부터 떨어져 살았고, 그렇게 한 번 집을 나오면 다시 돌아가지 않으니 걔네들 부모님은 얼마나 편하겠니'라며 부럽다는 투의 얘기를 한다.


그런데 내가 정작 나가 산다고 하면 결혼하고 나가라는 둥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면서 말이다. 여태까지 엄마랑은 서슴없이 친하게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엄마한테 정서적으로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 올해엔 부모님을 잘 설득하든, 우기든 해서 내년에는 혼자 나가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게 서로에게 좋을 거 같다.


나도 이제 지친다. 엄마가 해주는 따스한 밥과 빨래, 청소 등등은 너무너무 고맙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동생에 대한 푸념을 할 때마다 들어줘야 하고, 사회생활 하다 보면 좀 늦을 수도 있는 건데 단순히 밤에 조금 늦게 들어온다는 이유로 눈치를 보게 된다. 나도 나가서 내 살림을 꾸리다 보면 '이게 졸라 힘든 거구나' 하며 더 애틋해지고 미안할 테고 부모님도 부담감을 조금은 덜겠지. 서로 오래 붙어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퍼진다.


아무튼 목요일 밤의 엄마와 작은 말다툼과 금요일 오전에 읽었던 책의 한 에피소드, 금요일 오후에 상사로부터 들었던 말 한마디로 인해 쌓여버린 감정들은 쉽게 풀리지가 않는다. 최근에 트위터에서 본 문장 중에 요즘의 내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있었다.


난 아무래도
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


이 문장을 보고 무릎을 쳤다. 딱 이거다! 싶었으니깐. 그렇지만 언제는 적성에 맞는 게 있었나. 어떻게든 조금씩 노려하다 보면 그래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며 나아가는 수 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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