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무래도 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 (1)

나는 개인주의자인가 이기주의자인가

by 세니seny

2017년 3월 17일의 일기.


아침에 목이 간질간질하면서 기침이 나길래 물도 마실 겸 해서 정수기 쪽으로 갔다. 오늘은 오후에 강연을 들으러 가는 게 있어서 곧 11시쯤 점심을 먹고 나갈 거라 머그컵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해서 종이컵에 물을 한 잔 천천히 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얼마 전부터 선반 위에 책이 몇 권 있었는데 그중에 마스다 미리의 '어떻게 해도 싫은 사람' 일본어판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누가 갔다 놓은 거지?




물 한 컵을 마실 동안 심심해져서 보려고 책을 들춰 봤다. 나는 이미 읽었던 책이라 금방 훅훅 넘겨볼 수 있었다. 주인공인 수짱의 친구가 근무하는 회사 에피소드가 나왔다. 같은 부서에 여직원이 둘 뿐이라 다들 사이가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같이 일하는 여직원이 매번 연휴에 맞춰서 휴가를 내고 매번 틀렸다고 지적해 주는 실수를 계속하고(즉 전혀 귀담아듣지 않고 있다는 소리) 외부손님이 오고 나서 먹은 찻잔을 항상 치우지도 않는다는 둥 도무지 그 사람이 좋아질 수 없다는 에피소드가 실려있었다.


여기서 평소에 휴가를 있는 대로 다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는 살짝 찔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연휴에 맞춰 휴가를 내고 금요일이나 월요일에, 나에게 가장 편한 때에 휴가를 쓰기 때문이었다. 왠지 같이 일하는 대리님한테 미안해졌다.


그런데 2차(?) 공격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오늘 오후의 강연은 삼성역에 있는 코엑스몰의 행사장에서 있었고, 코엑스까지 먼 길 나선 김에 내가 다니던 치과도 갈 겸해서(어금니 쪽이 부었는지 자꾸 거슬렸다) 다섯 시 반에 잠실역 근처에 있는 치과에 예약을 해두었다.


마음 같아선 여유 있게 여섯 시에 가고 싶었는데 치과에선 일곱 시가 마감이니 적어도 다섯 시 반까진 와야 한다고, 여섯 시 예약은 받기가 그렇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래, 나도 직장인이니까 이해는 한다. 그래서 다섯 시 반으로 예약을 잡은 건데 강연은 종료시각인 다섯 시를 넘겨서야 끝났다. 치과까지 가기에 시간이 촉박해졌고 어차피 이번 주 초에 회사 근처에 있는 치과에 가서 급한 대로 약 처방을 받은 터라 치과를 가고자 하는 의지가 사라졌다. 그런 상태로 강연장 밖으로 나왔는데 같이 온 회사 직원들이 다들 이제 어디로 갈 거냐,라는 얘기가 나왔다.


영업부 여직원은 부스에 한 번 더 들른다고 했고 마케팅팀 직원은 차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 부스에 갖다 줘야 한다고 했다. 같이 온 차장님은 담배를 한 대 피울 겸 마케팅팀 직원과 나갔다 온다고 하신다.


나는 일정이 있냐고 묻길래 사실은 치과에 가려고 예약해 뒀는데 아무래도 늦게 끝나서 못 갈 거 같다, 그래서 집에 가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같이 온 차장님이 그럴 줄 알았다면서 'A대리(나)님은 어디 올 때 있으면 그 근처에서 약속 잡는다니깐요'라며 같이 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평소에 '나는 어디 일이 있으면 그 근처에서 꼭 약속을 잡아요' '꼭 미리 다음 스케줄을 잡아놔요' 그런 얘길 했거나 그런 태도를 보이게 행동했었나?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가? 나만 그런 건가? 나에겐 그 말이 '너는 절대 손해 볼 일을 안 한다' '너는 항상 너의 스케줄에 맞춰 행동하는 이기적인 인간이다'로 읽힌 건 그저 기분 탓일까.


그냥 다른 때 같으면 기억도 못 할 말인데 어젯밤에 있었던 엄마와의 다툼도 생각났다. 그리고 아침에 읽은 책의 구절도 생각나면서 내가 그렇게 이기적이고 못난 인간인가 싶어 지는 거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한 끝 차이고 솔직함과 무례함 역시 한 끝 차이다. 어려운 일이다. 더더욱 말을 조심해야지. 하지만 이러다가는 입이 붙어버려서 더더욱 말주변이 없고 망조가 들겠지만.


내가 그동안 주위에 그렇게(?) 이기적으로 군 건가. 남들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다를 수 있고 때로는 남들이 봐주는 내 모습이 더 정확할 때도 있으니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본위의 동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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