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에피소드와 나의 속마음
올해도 4월 1일이 되었다.
어느 달이나 매달 1일은 묘한 설렘에 휩싸인다. 이번 달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제 곧 다가올 계절은 어떤 모습으로 날 설레게 할까? 회계팀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특성상 매월 1일엔 마감을 하느라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일이 많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약간은 들떠있다.
특히나 4월 1일은 겨울이 끝나가고 봄을 맞이하는 시점이라 여러 풍경이, 공기가 나를 설레게 한다. 분홍 벚꽃잎이 마구 흩날리고 연둣빛 새순이 솟아오르는 풍경을 어디에서든 볼 수 있어서 걷기만 해도 발걸음도 가볍고 기분이 좋다. 출근해서 팀 막내와 오늘 4월 1일이라고, 만우절이라며, 예전에 같이 일하던 분 생일이 4월 1일이어서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다는 잡담을 했다. 그리고 오전엔 열심히 일을 했다.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고 잠깐 외출을 했다. 회사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 엄마가 부탁한 걸 맡기러 갔는데 아무리 그 매장을 찾아봐도 없었다. 아무래도 매장이 없어졌나 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회사로 돌아오고 있었다. 햇살이 좋았고 바람은 따스함을 머금고 있었다. 확실히 이젠 겨울바람이 아니었다. 음악을 들으며 얌전히 걷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춤을 추며 사무실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거의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고 사무실 앞에 거의 다 왔는데 팀 막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과장님, 어디세요?
팀장님이 심각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사무실에 오면 좀 보자고 하셨어요.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저 말만 듣고도 딱 촉이 왔다. 어떤 거짓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팀장님이 만우절이라는 걸 이용해서 우릴 놀려주고 싶으신 거구나. 막내에게 사무실 앞에 거의 다 왔다고 하고 사무실에서 보자고 했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팀장님과 옆 팀의 팀장이 소곤소곤 대화를 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 대화의 톤과 간간이 들려오는 단어로 미루어보아 우리 팀 팀장님이 옆 팀 팀장에게도 무언가 거짓말을 해서 속이고 난 상황임을 직감했다.
곧 막내도 사무실에 도착했고 나와 막내는 팀장님 자리로 갔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사무실에서도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표정을 읽기가 어렵다. 마스크 너머로 눈만 보이는 팀장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 내가 언제 말해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하루라도 빨리 말을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 내가 4월 말까지만 일하고 그만두게 됐어.
옆을 슬쩍 보니 막내는 놀란 눈치였다. 막내는 팀장님이 면접을 봐서 뽑은 직원이었다. 그리고 내가 팀장님과 일한 지는 이제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팀장님의 말이 이어졌다.
여러 가지 사정도 있고... 본부장님이 퇴사 한 달 전에는 말을 꼭 해달라고 해서 오늘에서야 말을 하네. 같이 오래 일하지 못해 미안해... 특히 OO이(막내)한테도 미안하고...
그랬더니 막내가 팀장님 아니죠? 진짜예요? 왜요? 하며 물음을 쏟아냈다.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 팀장님이 떠날 거라는 생각은 진작에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팀장님은 언제든 제일 먼저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능력도 되고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에 이직 준비를 한다면 가장 먼저 떠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나는 이직 준비를 해도 한참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고 나와 직급이 같은 팀 동료는 아직 회사에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사내 연애를 하고 있는 데다 올해 말에 결혼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직보다는 최대한 회사를 다닐 때까지 다니고 육아휴직에 들어가거나 회사를 그만둘 가능성이 더 컸다. 막내는 아직 우리 회사에서 2년 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배울게 많고 할 일도 많은데 요즘 들어 힘에 부치는지 그만두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적도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팀장님, 거짓말이죠? 오늘 만우절이잖아요.' 했더니 맞다고 실토하셨다. (ㅋ) 사실 아까 점심시간에 팀장님과 동료 둘만 있어서 동료한테 슬쩍 거짓말을 해봤는데 동료가 눈물을 보였길래 이거 다른 사람에게도 통하겠다 싶어 나머지 팀원 둘에게도 똑같이 만우절 장난을 해보려고 하셨던 거였다.
나는 오늘이 만우절인걸 알고 있었으니까 팀장님이 무슨 말을 해도 당연히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면서 다음번에 팀장님이 그만둔다는 말을 하면 그건 절대 거짓말일 수 없겠구나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오늘의 일을 계기로 다음번에 진짜로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을 좀 완화할 수 있을까? 내가 팀장님보다 먼저 그만둘 수도 있으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요즘 일 할 때마다 계속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다. 일을 하다가 힘들거나 짜증 나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곧은 아니겠지만 언젠간, 가까운 시일에) 여기 곧 그만둘 거니까'라는 생각. 아직 구체적인 방향은 잡지 못했지만 이직에 대한 첫 신호탄으로 토익시험을 봤고 여태까지 본 시험 중에 점수가 제일 잘 나왔다. 이것도 시험이니까 시험을 여러 번 봐서 패턴에 익숙해진 것인지 내가 그동안 실력이 좀 쌓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력서에 붙일 증명사진도 새로 찍었고, 이력서 업데이트도 시작했다. 몇몇 부분만 좀 다듬으면 될 거 같다. 현재까지의 경력에 대해서 기재를 해놓긴 했는데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지에 따라 이력서를 새로 써야 할 수도, 아예 다른 방향으로 전직 준비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구직 사이트를 둘러보고 있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면 팀장님이 제일 이 자리를 빨리 떠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만우절이 지나가고 팀장님과 팀원들과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 먹었다. 밥을 먹다가 팀장님께서 솔직히 올해 초에 힘들어서 이직을 생각했다고 말하셨다. 그러니까 만우절의 그 거짓말이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던 거다. 회계감사 대응도 있었고, 팀장님 위에 있는 본부장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느꼈으며 대표이사는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게다가 자신을 키워주신 외할머니까지 갑자기 돌아가시는 등 개인적으로도 힘든 일이 겹쳐진 시기였다고 했다. 당장은 이직에 대한 마음은 접으신 거 같다. 하지만 팀장님은 언제든 여길 훌쩍 떠날 수 있다.
팀장님이 퇴사한다고 해서, 동료가 결혼이나 육아휴직을 이유로 퇴사하게 되거나 혹은 막내가 이놈의 회사 못 버티겠다며 퇴사하는 경우. 그러니까 내 의지가 아닌데 팀원이 변동되면서 팀 내 상황이 변할 때, 가만히 있다가 그런 판도와 변화에 수동적으로 얽히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이직을 함으로써 이 판도를 바꾸는 것, 내가 이 변화를 이끌고 나가는 것, 그게 현재 나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