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걷기 (3) : 교대역 언덕배기

과거에 걸었던 길을, 미래를 위한 결심을 하며 다시 걸어보다

by 세니seny


삼호가든 사거리에서 교대역 방향으로 걸었던, 유월의 하짓날 밤. (2021.06.21)


오랜만에 팀 회식이 있었다. 그런데 회식 장소 근처에 내가 예전에 면접 보러 갔던 회사가 있었다. 그곳은 교대역에서 내려 잠깐 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꽤 걸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위치가 살짝 아쉬운 회사였다.


그렇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면접을 보러 가서 면접 전에 본 필기시험에서 나의 부족한 밑천을 다 드러냈고 쪽팔린 채로 면접을 마쳤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쓸쓸하게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왔던 기억이 있는, 그 길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이곳을 내 마음대로 교대역 언덕배기라고 부른다. 교대역 쪽에서 삼호가든 사거리를 지나 근처의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인데 교대역 쪽에서 고속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갈 때는 길이 상당히 언덕져 있어서 걷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짧은 회식이 끝나고 팀원들과는 횡단보도 앞에서 헤어졌다. 팀장님은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건너가셨고, 나를 포함한 여직원 세명은 식당 앞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교대역으로 오려고 했다. 그런데 나 빼고 둘이 반대 방향인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다시 헤어졌다.


그러고 나니 나만 덩그러니 그 자리에 남았다. 다 같이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지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월이다. 술도 한 잔 했고 배도 부르겠다, 걷기에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니 옛 추억도 떠올릴 겸 그대로 교대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내가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사랑하는 달이
바로 유월로 발음되는 6월이다.

육월이 아닌 유월.

'유월'이라고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통상적으로 1월이 한 해를 시작하는 달이고 12월이 일 년의 마지막 달이다. 하지만 나는 7월생이니까 나의 1년은 7월부터 시작한다. 그렇기에 나의 연력에서 6월은 항상 마지막 달이다. 다음 달이면 생일이 돌아오고 나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그렇기에 지난 일 년간 무얼 했나 자문하게 되고 앞으로의 일 년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월은 떠들썩하지 않아 좋다. 1월은 새해가 시작되는 달이니까 정신이 없고 날짜를 쓸 때도 아직 익숙지 않다. 2월은 1월의 어수선함과 번잡스러움에선 벗어났지만 주로 설 명절이 있고 단 3일이라도 다른 달보다 날짜가 짧다 보니 후다닥 지나간다.


3월엔 새 학기가 시작한다. 이미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3월엔 꼭 새 학기가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1월에 계획을 세워놓고 지키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금 시작하게 하는 힘이 있다.


4월은 설레는 달이다. 날이 여전히 쌀쌀하긴 해도 온갖 풀들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벚꽃이 공기를 물들인다. 그렇게 취해 있다 보면 4월이 다 가버린다. 5월은 바쁘다. 어린이날에 어버이날에 스승의 날까지. 그리고 결혼식도 많다. 그렇게 숨 가쁘게 5월까지 보내고 나면 6월이 다가온다.


6월엔 5월 같이 가족의 달이란 모토도, 큰 행사도 없다. (현충일이 있긴 하지만 현충일의 의미는 많이 약해졌다.) 그렇기에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상반기를 점검하는 시간이고 나는 나의 마지막 달인만큼 지난 일 년을 점검한다.


게다가 날씨도 참 좋다. 3,4월까지는 쌀쌀하고 5월이나 되어야 좀 봄 같다고 느끼기 시작하는데 유월의 날씨는 환상적이다. 낮에는 살짝 덥지만 하루하루 날이 길어지는 긴 하루가, 따가운 햇살이, 통 넓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좋다.


오늘은 6월 21일, 하지였다. 일 년 중 낮이 제일 긴 날. 이제 아주 서서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밤이 낮을 야금야금 먹어치울 것이다. 하늘엔 보름달을 향해가는 중이라 상현달보다는 조금 더 둥근, 하지만 아직 보름달에는 가닿지 못한 달이 떠있었다. 길 건너편에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아파트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하늘 위에서 여길 내려다보면 직사각형 도미노들을 세워놓은 것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고층 건물이 자리한 그 위치는, 1995년 6월에 무너진 삼풍백화점이 있던 자리였다. 날짜를 쓰고 보니 공교롭게 그때도 6월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매일 일기를 썼기 때문에 1995년의 일기장을 꺼내어 본다.


아, 6월 29일의 일기가 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사건에 대해 일기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틀이 지난 7월 1일 자 일기에, 엄마가 나에게 써 준 일기가 있다. 아마 한 달에 한 번씩 엄마가 일기를 써주는 숙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가 써 준 1995년 7월 1일 일기. 며칠 전에 무너진 삼풍백화점 이야기가 주다.


엄마는 텔레비전에 삼풍백화점이 나올 때마다 한번 가보고 싶었다고 했다. 아마 가까이 살았으면 한 번쯤은 가봤으리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엄마는 동네 슈퍼나 시장 밖에 가지 못했다고. 당시 삼풍백화점은 명품 브랜드가 즐비하고 고급 백화점이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했다. 우리 집은 그런 백화점에 다닐 만한 형편은 아니었다.

엄마는 또 말했다. 저녁거리를 사러 갔던 엄마들이 돌아오지 않는 집은 얼마나 슬프겠냐고... 백화점의 높은 분들은 그 돈 벌어서 어디다 쓰려고 그랬을까? 라며. 그래서 엄마는 무너지지 않으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하니 OO이(나)도 무슨 일을 빨리빨리 하려만 들지 말고 느긋하고 천천하게 기초를 잘 쌓자는 교훈까지 잔잔하게 남겨주셨다.


그때 엄마의 나이가 지금의 딱 내 나이였는데, 엄마는 집안일을 돌보고 일까지 다니며 열 살과 일곱 살짜리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니 아직도 혼자인 내가 엄마의 눈엔 이상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옛 삼풍백화점 위치에서 눈을 돌려보니 오른편에 내가 면접 봤던 회사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2015년에 이 근처로 면접 보러 왔다는 기억만 있었지 회사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는데 보니까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1차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헤드헌터를 통해 제안을 받아 이 회사도 면접을 보게 되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매출 규모가 더 커서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교통편이 좀 애매한 위치였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필기시험을 잘 보지 못했고 면접을 보면서도 여긴 안 되겠구나 싶었는데 실제로 불합격했다. 그 사이에 1차 면접을 본 곳에서 최종면접을 보자고 했는데 최종면접 후 같이 일하게 될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라고 했다. 나는 거의 합격임을 확신했는데, 최종면접은 합격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전형은 아니었던 듯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슬슬 새로운 자리를 알아보려 한다. 그러다 어제 저녁에 갑자기 든 생각. 사서라는 직업은 어떨까? 그래서 이것저것 검색을 해봤다.


원래 2학기에 방통대를 등록해서 뭔가를 공부해볼까 했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확실하게 성과가 나는 것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학과를 수강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고민하고 있었다. 알아보니 사서가 되려면 사서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거나 평생교육원 등에서 수업을 들어 학점을 채워서 사서자격증을 얻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얼마 전에 한 친구한테 오랜만에 연락이 왔었다. 나에게 잘 지내냐고 물으면서, 자기가 최근에 이사를 해서 OO역을 자주 지나다니는데 내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 했다. OO역은 내가 25년간 살았던 동네에 있는 지하철역이었다. 그녀는 그 역을 지나가며 내가 여전히 거기 살고 있겠거니 싶어 연락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작년에 다른 동네로 이사 와서 아쉽다는 말과 함께 코로나가 끝나면 그녀의 집에 초대해달라 했다.


그런 그녀의 직업은 사서교사였다. 이렇게 가까이에 현직자가 있었다니! 그래서 오늘 낮에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그녀에게 얻은 답도 내가 인터넷에서 찾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현직자에게 직접 물어보고 대답을 들으니 뭔가 마음이 놓였다.


30대에 무경력으로 전직을 한다는 것은 어느 분야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항상 되뇌는 말이 있다. 60살까지 일한다고 치면 아직 25년이나 남았다. 지금 일한 10년보다 더 긴 시간을 일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인생을 하나의 긴 선으로 본다면 결코 늦은 게 아니라고. 내가 얼마나 그걸 원하는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는지 그것도 꽤 중요할 거라고.


이 길엔 사람이 드문드문 있어 좋았다. 그리고 교대역에서 법원을 따라 올라올 때는 언덕진 길이지만 나는 반대로 내려왔기 때문에 완만한 내리막길이었다. 왼편엔 높고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줄을 서있고 오른편엔 작은 상가들과 법원임을 알리는, 그렇지만 시간이 늦어 굳게 닫힌 철문들만 있어 조용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도 있었고 내 앞을 지나가는 남자아이는 학원 갔다 집에 가는 길인데 혼자 집에 가서 심심한 건지 아니면 또 다른 학원을 가야 해서 짜증이 난 건지 도무지 똑바로 걷지를 않고 정신 사납게 지그재그로 길을 걸었다가 뒤로 돌았다가 빙빙 돌기도 하며 계속 걸어갔다.


그렇게 언덕배기를 쭉 걸어 내려오니 어느새 교대 역이 보였다. 약 1km 정도의 거리. 꽉 차게 불렀던 배도 좀 꺼진 거 같고, 면접 보고 돌아가던 몇 년 전 그날의 기억도 떠올랐다. 또 새로운 길을 준비하기 시작한 나의 현재와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도무지 모르겠는 미래의 길 또한 이렇게 쭉 펼쳐져 있길, 다음번에 또 이 길을 걷게 된다면 그때는 누군가와 함께 걸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도 함께 떠올리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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