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갉아먹는 우울감에서 빠져나오기
(2021년 시점에서 쓰인 글입니다.)
최근 들어 가장 정도가 심한 우울감이 온 거 같다. 재택근무를 너무 오래 해서 그런가? 그런데다 독립해서 혼자 지내니까 집에 계속 혼자 있어서 그런가? 물론 주 2회는 본가 근처에서 배우는 운동 때문에 본가에 가고 또 주말 이틀 중 한 번은 본가에 가지만 그것과는 다른 것일까?
며칠 전에 온 택배를 뜯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귀찮아서 계속 문 앞에 내버려 뒀다. 오늘 추가로 온 택배가 있어서 겨우 현관문을 열고 택배상자를 질질 끌고 들어와 밀린 택배를 뜯기로 했다. 우울감엔 뭐든 좋으니 작은 일부터 하라고, 어느 유튜브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택배를 뜯으려면 커터칼이 필요했다. 서재에서 커터칼을 가지고 나오는데 순간 못된 생각이 들었다. 만약 칼로 스스로를 긋는다면? 엄청 아프겠지? 엄청 아프다는 정도 이상이겠지만 해 본 적이 없으니 이 정도로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그리고 아마 뉴스에 나오겠지?
아니다.
이런 사건은 너무 흔해서 뉴스에 나올 건덕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원한관계 없음.
남자친구 없음.
부모님과의 사이 그다지 나쁘지 않음.
외부 침입 흔적 없음.
스스로 우울감에 빠져 한 행동으로 추정.
끝.
수사할 것도 없다. 그 정도의 뻔한 삶, 뻔한 실행동기인 것이다. 나는 현관에서 무기력하게 택배를 뜯고 택배 박스를 하나하나 분해하고 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하나하나 뜯어내는 것으로 택배 뜯기를 마무리했다. 무엇이 되었든 일단 한 가지 일을 끝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입맛도 없고 밥통에 밥도 없다. 밥은 할 수 있지만 반찬이 없다.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다. 지금은 괜찮겠지만 분명 이대로 굶는다면 밤 10시쯤 배가 고파올 것이다. 라면은 먹기 싫었다. 짜파게티도 땡기지 않는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우동면이 생각났다. 우동 끓여 먹는 건 더운데...
유튜브에 우동면 요리라고 검색하니 볶음 우동이 나온다. 마침 재료도 다 있다.
양파
파
양배추
당근
마늘
굴소스
마침 지난주에 굴소스도 샀다. 참기름은 없었지만 요리를 시작한다. 썰다 보니 재료가 많아진다. 도대체 양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감이 안 잡혀서 자른 재료를 다 때려 넣고 볶기 시작하니 작은 프라이팬이 넘칠 듯 꽉 찼다. 분명 1인분이라 소스도 1인분만 만들었는데 소스가 모자라게 생겼다.
하는 수 없이 급하게 소스 1인분을 더 만들고 있었는데 아뿔싸... 고춧가루를 반 숟가락만 넣어야 하는데 손목 스냅의 실수로 인해 양념통에서 고춧가루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한 숟가락이 되어버렸다. 엄청 짜고 맵겠지?
막상 해놓고 보니 맛은 있었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한방이 부족했다. 요즘 내가 만드는 요리에는 이 ‘결정적인’ 무언가가 부족하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닌데 엄마가 만들어준 것처럼 막 ‘맛있지도' 않다.
이럴 때일수록 술은 안 먹는 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먹을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이게 알코올 중독자들이 생각하는 루트인가) 대신 일반 맥주 말고 알코올 도수가 조금 낮은 타이거 레몬 라들러를 꺼냈다.
생리 때문인가? 아니면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가? 엄마가 어제 자꾸 말했던 애를 낳아야 하는데 어쩌고.. 그것 때문인가? 아니면 이제 곧 월말인데 다음 주 내내 팀장님이 휴가를 가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한 달에 한번 있는 본사와의 회의를 내가 주관하게 생겨서 그런 걸까?
회의 자체가 크게 어려운 건 아니다. 나도 계속 참석해 왔고 옆에서 보면서 에이 이 정도면 나도 하겠는데,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으니까. 사무직인 다른 부서는 다들 재택근무하는데 우리 팀만 아니 나만 이런저런 일 때문에 계속 출근해야 되는 상황이 마음 한편에 쌓이면서 불만의 씨앗이 된 것일 수도 있다.
왜 자꾸 작년에 세상을 등진 박지선 언니가 생각나는 걸까? 내가 만약 그런 상태로 발견한다면 엄마는 아마 돌아버리겠지. 얘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겠지. 이미 동생이 비슷한 모습을 보인 전력이 있어서 엄마는 그 상황을 나에게 담담한 척하며 말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 내게 남은 생이 너무 어마어마해 보인다. 오래 사는 게 결코 좋은 게 아니란 생각을 한다. 젊고 건강할 때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나란 생각도 든다. 그건 내가 자식이 없어서 그런 걸까? 부모님 말고 제2의 가족, 내 가족이 없어서 이딴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런 거겠지?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하면 그 무게에 짓눌려버린다. 그러니까 그냥 눈앞의 하루하루, 지금 현재를 살아야 한다. 하지만 공기업 이직을 위해 NCS 공부를 하거나 경영학원론을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니 앞날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아마 이런 상태에서 결혼한다고 하면 또 다른 문제가 분명 생길 거다. 진짜 운이 좋아서 나를 많이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다행이겠지만 분명 한국 사회에서 자라온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때는 차라리 결혼하지 말걸, 이라고 생각할게 아주 뻔하다. 그래서 정답은 없는 거다.
다음날은 토요일이라 본가에 가기로 했었다. 배가 아파서 갈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가져올 것도 있고 해서 일단 갔다. 배가 아프다고 했더니 아빠가 소화제를 줘서 먹었지만 여전히 아팠다. 그래서 엄마가 만들어놓은 맛있는 갈비를 먹을 수 없었다. 본가엔 내 책이나 교재 같은 게 없으니까 가도 딱히 할 건 없다. 그래서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있었다.
누워서 생각했다. 평상시에 유산균 잘 먹고 있는데 배가 이렇게 요상하게 아플 리가 없는데. 이건 분명 어제의 우울감이 다음날의 나에게 복통을 가져다준 것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복통. 장이 꼬이는 느낌. 결국 커터칼과 같이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다른 방식으로 내가 나를 해치고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딱히 살아서 뭘 해야겠다는 건 없었지만 맛있는 엄마표 갈비를 먹지 못하는 건 너무너무 속상했다. 그리고 배가 아프니 뭘 해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저 이 통증이 빨리 없어지기만을 바랄 뿐.
소화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내 몸에 쌓인 화를 밖으로 끌어내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괜찮아질 수 있다. 어제도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이었겠지만 본가에 와서 빈둥거리다 자각이 든 거다.
부모님께는 분명 내일이면 나아질 거라고 단언하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혹시 몰라 소화제를 받아오긴 했다. 여전히 통증이 살짝 있었지만 오전보다는 확실히 가라앉았다.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이건 분명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라는 걸.
단, 내가 내 생각을 고쳐먹을 때에만.
내가 나를 갉아먹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짓누르지 않는다면,
나를 몰아세우지 않는다면,
그러면,
분명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다음날, 내가 예언했던 것처럼 장을 꼬이게 하는 듯한 통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렇게 닥쳐오는 우울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고민하고 결국 글을 발행하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답은 이미 이 글에 나와 있었다. 이 글을 처음 쓸 당시의 나에게는 그게 '엄마의 맛있는 갈비'였다. 당신에게도 그런 것에 준하는 것이면 된다. 그건 소중한 사람이 건네는 하지만 아주 작아서 스쳐 지나가는 한 마디가 될 수도 있고 친구와 만나 삼겹살에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 자체일 수도 있다. 그저, 아주 작은 것이어도 그 '무언가'가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