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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y 21. 2022

전화 외국어 수업을 시작하다 (상)

외국어 공부를 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새로운 시도를 해보다

     나는 외국어 공부에 흥미가 많아 꾸준히 혼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언어들은 이미 오랜 시간 공부했거나 학원을 다녀서 기초는 다져진 상태이기 때문에 혼자서 공부를 해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혼자 공부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하며 의심이 드는 시기가 온다.


     특히 회화 같은 경우는 말을 주고받는 연습을 하는 게 필요하다 보니 혼자서 공부를 하는 방식으로는 좀 아쉬웠다. 회화 학원을 다니면 좋겠지만 요즘은 코로나도 그렇고 학원에 내가 원하는 단계의 수업도 개설되어 있어야 하는 데다 학원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 등도 고려해야 돼서 학원에 가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전화 외국어 수업을 알아보게 되었다. 전에 회화 학원에 다녀본 적은 있었지만 전화로 하는 수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현재 나는 4개 국어-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이 중 영어와 일본어는 한국어처럼 100% 편하게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내 의사를 어느 정도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중국어와 프랑스어는 쉬운 단계에서의 읽기와 내용 해석은 가능하지만 말은 잘하지 못한다.                                              


     사실 나한테 지금 직접적으로 실력 증진이 필요한 건 영어랑 일본어이다. 영어는 어딜 가든, 무슨 직업을 갖든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일본어는 내가 일본계 회사에 재직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써먹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는데 어느 정도 어려움이 없지만 더 잘하고 싶고, 일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영어와 일본어만 전화 외국어 수업을 받아보기로 했다.


      영어도 그렇고 일본어도 전화 외국어 수업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많았다. 이곳저곳 검색을 해보고 가격대를 기준으로 몇 군데로 추렸다. 대부분의 업체가 비슷한 커리큘럼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수업시간은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30분 정도로(혹은 그 이상) 구성된 곳이 많았고 교재를 이용해 진도를 나가거나 프리토킹 수업의 경우 교재가 없이 수강생과의 대화만으로도 수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화상영어 수업도 있지만 얼굴까지 보는 건 부담스러워서 전화(음성) 수업을 선택했다. 그렇다 보니 '목소리'가 참 중요했다. 요즘은 목소리보단 소위 ‘비주얼’의 시대인지라 목소리의 중요성은 간과하기 쉽다. 그런데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상대방을 판단하는 요소는 아주 정직하게도 목소리밖에 없었다.             

    

     목소리에서 수업에 대한 열의나 상대방의 성격-밝음 혹은 차분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게 꾸며낸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전화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은 직업적으로 리액션이 좋다. 그래야 학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수업에 집중하게 해서 말을 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그날도 게시판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어떤 분께서 드라마 영상에서 음성을 추출해서 마치 라디오 드라마처럼 음성으로 드라마를 들을 수 있게 음원을 만들어 올려놓은걸 발견했다. 음성으로 드라마를 본다는 건 상상도 못 했었는데 하도 드라마를 많이 돌려보다 보니 별게 다 있구나 하며 별 기대 없이 음원파일을 다운로드하였다. 그런데 영상은 틀어놓으면 화면을 보고 있어야 해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는데 음성파일은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하기가 좋다는 사실을 깨달아 종종 틀어놓고 듣곤 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영상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볼 때는 얼굴, 제스처, 목소리 등이 종합된 연기를 보기 때문에 다른 부분이 좀 부족해도 또 다른 면으로 부족한 부분이 채워졌다. 하지만 음성파일로 드라마를 듣다 보니 이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는 요소는 오직 목소리밖에 없었다. 목소리만으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만큼 정직하게 연기를 보여주는 요소가 어디 있겠냐 싶었다.


     그리고 수업이라는 명목 상 학생인지 직장인인지를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수강자가 학생인지 직장인인지에 따라 언어를 공부하려는 목적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에 맞춰 수업을 진행해주기 때문이다. 학생이라면 회사생활에 관련된 내용은 답을 할 수 없으니 질문을 해도 학교생활 중심으로 하게 되고, 회사원이라면 회사에서 쓸만한 표현을 알려주거나 회사생활에서 느끼는 점이나 경험을 말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어느 날은 수업 질문 중에 살면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 순간은 엄청 많지만 최근에 자꾸 후회가 드는 지점은 나는 왜 사서라는 길을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는가에 대한 고찰과 의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 가는걸 그렇게 좋아했는데 사서라는 직업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어서 그 점이 아쉽다고 했다. 이걸 좀 더 빨리 깨달았으면 삶이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이제 나이도 먹었고 사서는 관련 학과를 졸업해서 자격증을 취득해야 취업이 가능한 편이어서 이제는 어려울 것 같다고, 그래서 좀 아쉽다고 말했다.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것을 저 멀리 태평양 바다 건너에 있는 필리핀의 어느 작은 도시의 방구석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눈앞에 두고 스피커와 헤드폰을 껴고 전화를 받고 있을, 영어를 공용어로 갖고 태어나 영어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에게 술술 털어놓고 있었다.


      이 때는 한창 '사서'라는 직업에 꽂혀있을 때였다. 게다가 하필이면 사서교육원에 원서를 넣었지만 떨어져서 내가 하고 싶다고 해도 사서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그 얘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엄마는 걱정할 것이 뻔했고 친구들과는 이제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다들 가족을 꾸리고 자기의 삶을 꾸려나가느라 정신이 없어서 예전처럼 자주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요즘의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잘 모른다. 예전만큼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아니다. 정정하겠다. 아마 친구들은 그 고민을 남편이나 자신의 가족 구성원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테니 그냥 나만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 테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그저 별 연락이 없다면 잘 살고 있겠거니 하고, 가끔 연락을 해도 잘 지내냐는 피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마는 나다.



'전화 외국어 수업을 시작하다(하)'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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