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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y 28. 2022

전화 외국어 수업을 시작하다 (하)

돈으로 맺어진 사이지만 누구보다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

'전화 외국어 수업을 시작하다(상)'에서 이어집니다.




     이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화 외국어 수업을 하는 선생님들은 수강생들의 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들을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수업의 형태를 빌려서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굳이 해외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작은 방 한구석에서 해외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비행기를 타고서도 5시간이나 떨어진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의 속마음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수업 상 어떤 질문을 하면 내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내 경험을 토대로 말을 해야 한다. 마치 여행지에서 한번 만나고 말 사람들에게 오히려 나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게 되는 것처럼. 가까운 사이-가족이나 친구-인 사람들은 나를 너무 잘 알고 나의 질문을 같이 심각하게 생각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속내를 비출 수 없을 때도 많다. 그래서 나를 잘 모르는 타인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해 버리기도 한다.


     그 사람들은 나의 원래 성격이나 나를 둘러싼 환경을 모른다. 오로지 문자 그대로, 그 문제에 대한 답이나 의견만 제시해주고 대답을 해주는데 부담이 없다. 왜? 다시 만나지 못할 확률이 높은, 대체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관계의 사람이니까. 대답을 하는 데 있어 엄청난 책임감과 부채감, 사명을 띠고 답을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언어가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고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곤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내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인 한국어로는 이러쿵저러쿵 나의 속내를 최대한 100%에 가깝게 말할 수 있지만 외국어를 사용할 땐 그렇지 못하다. 내가 한국어로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말할 만큼의 외국어 수준이 되기는 어렵다.                    


     그리고 외국어와 한국어의 의미가 완전히 일치하는 표현이 없는 경우도 많기에 우리말 문장을 그대로 외국어로 번역하면 외국어 화자 입장에서는 이상한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외국어로 말할 때는 그 나라 언어에서 표현하는 방식으로, 또 좀 더 쉬운 단어로, 가벼운 표현으로, 깔끔하게 객관적인 사실만 말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이용하는 전화영어 업체의 경우 매번 다음 수업과 선생님을 예약하는 방식이라 선생님을 바꿀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선생님이 있다면 주로 그 선생님이 수업 가능한 시간대를 예약해서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 바뀌는 경우가 많아서 한 번 만나고 또 안 만날 사람이라는 생각도 많기에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화권은 스몰토크가 익숙해서 그런지 수업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캐주얼하게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심지어 전에 어떤 선생님은 10분짜리 수업을 하는데 수업 시작하면서 던진 스몰토크 질문 때문에 10분 중에 수업과 관련 없는 스몰토크로 장장 5분을 허비(?) 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에 반해 전화 일본어 수업은 선생님 한 명을 지정해서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다 보니 그 선생님과의 합이 중요하다. 전화영어 수업과 확연하게 다른 점은 일본어 선생님들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하지 않거나 딱 필요한 수준으로만 하는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전화영어 수업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그렇다. 내가 어떤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면 주로 소오데스네(그렇군요)하며 맞장구를 잘 쳐주고 내 말에 공감해준다.






     처음엔 외국어 공부 실력 향상을 위해 시작한 전화 외국어 수업이었다. 근 1년간 수업을 지속해본 결과, 처음 이 수업을 시작한 목적인 외국어 실력 향상이 이루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전화 외국어 수업을 통해 뜻하지 않게 내 삶을 여러모로 되돌아보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주어진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과거에 어떤 일들을 했는지,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 있었다. 그것도 나의 미래와 함께하는 사람과 하는 대화가 아니라 오늘 만나고 다음번엔 다시 만날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과 하는 대화 속에서 말이다.                                


    나와 전화 외국어 수업을 이끄는 선생님(튜터), 우리의 관계는 단지 얼마간의 수강료로 업체와 계약을 맺은 고작 그 정도 사이지만 또 생각보다 끈끈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전화 외국어 수업을 통해 이걸 해보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알 수도 없었던 감정과 경험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관계의 확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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