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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Nov 12. 2022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에 나오는 재무부 풍경을 보며

드라마 속 재무부와 현실 재무팀을 비교해보았습니다

     나는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든 외국 드라마든. 그래서 사람들이 요즘 드라마 뭐봐? 할 때마다 드라마 안 봐요,라고 말하고 나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서 민망할 때가 많다. 


     드라마에 나오는 회사엔 그렇게도 실장님들이, 젊은 사장님이, 어깨는 태평양 같고 얼굴은 조각 같거나 쭉쭉빵빵 늘씬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주로 많이 나온다. 회사에도 아주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일단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닐뿐더러 내가 서있는 이곳은 엄연한 현실이므로 드라마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똥꼬 발랄 로맨스 드라마의 경우 흐름 상 무언가 에피소드가 많이 일어날 듯한 팀이 극의 주요 무대가 된다. 비서실, 마케팅팀, 홍보팀 등등. 혹은 이름만 들어서는 뭐하는 곳인지 모를, 정체 모를 특이한 부서들도 나온다. 영어와 한국어가 짬뽕돼서 새로 만들어진 부서 같은 곳들.


     드라마에 직접적으로 재무팀이나 회계팀이 나오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이런 경우 보통 드라마 분위기가 많이 딱딱하다. 거의 스릴러물 느낌도 나곤 하는데 왜냐하면 이런 부서에서 벌어지는 드라마틱할만한 일이란 보통 회장님의 비리를 밝혀내거나 사내의 비자금 조성이 들통나는 등과 같은 돈과 관련돼서 악의 축을 제거하고 비밀을 파헤치는 스토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원작 웹툰을 원작으로 드라마화된 <유미의 세포들>. 아기자기한 로맨스 드라마인데 주인공인 유미가 일하는 곳이 바로 내가 일하고 있는 재무팀이다. 처음 이 웹툰이 나왔을 때 유미의 나이가 나랑 비슷하기도 했고 또 나와 같은 재무팀에서 일한다고 하니 가상의 인물이지만 유미에게 더 공감이 많이 됐었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인기 요인은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이동건 작가님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기발한 방식으로 또 참신한 표현을 써서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 지점이 참 재밌다. 최근에 연재하는 '조조코믹스'도 마찬가지고 그전에 연재했던 '달콤한 인생'도 그렇다.


     드라마에 나오는 보통의 재무팀은 암투와 숫자가 난무하는 곳이지만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는 로맨스 장르이다 보니 배경으로 나오는 드라마 세트장의 사무실 분위기가 너무나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그래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에 나오는 재무부 풍경과 현실에서의 재무팀은 어떤지 살짝 비교를 해볼까 한다.



1. 계산기


극 중 유미(김고은 분)가 업무 중 계산기를 사용하는 모습 @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1화


위 드라마 장면의 원본인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한 장면과 내가 실제로 쓰는 계산기 한 컷.



     유미가 계산기를 두들기는 장면이 있었다. 계산기라... 입사하면 하나씩 지급되긴 하지만 실제로 많이 쓰진 않는다. 웬만한  프로그램이 해주고 엑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회사에 입사했던 2009, 나를 맨 처음 가르쳐줬던 사수님은 그랬다. 그래도 계산기는   아는  좋을 거라고


     나는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니 시험 볼 때 계산기를 써봤지만 정말 딱 필요할 때만 썼었다. 일을 시작하게 되고 사수의 말을 듣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계산기를 '두들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에게 요즘 계산기 사용의 중요성에 대해 묻는다면 사수와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계산기, 별로 안 써요.


     하지만 영수증을 일일이 확인해서 금액이 맞는지 확인할 때나 단순 계산을 해야 할 때는 계산기가 훨씬 빠를 때도 있다. 컴퓨터에도 계산기 기능이 있는데 키보드 숫자를 치는 것과 계산기 버튼을 누르는 것은 타격감과 리듬이 다르다. 눈으로는 영수증을 보면서 계산기는 보지도 않고 손가락의 감각만으로 탁탁 두들겨 숫자를 계산하고 합이 맞았을 때의 (쓸모없는) 기쁨이란. 경비 정산을 많이 하다 보니 쓸데없는 스킬만 추가되었다.



2. 야근과 주말출근



웹툰 <유미의 세포들> 초반부에 나왔던 에피소드. 야근하는 재무팀 유미와 마주친 영업부 우기.



     드라마 초반에 유미가 주말에 출근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작 웹툰에는 유미가 영업부 채우기 대리랑 '마감 때문에 일해야 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월말, 월초 야근은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일상이라고 생각하고 각오하는 게 좋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회사 규모나 마감 일정 등 회사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일반 사무직 중에 재무회계 분야가 야근이 많고 업무 양이 많은 건 어느 정도 맞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에 법인이 없거나 보고기간이 넉넉하면 모르겠는데 대부분 경영진들은 이번 달 매출이 얼마가 나왔는지, 어느 직원이 실적을 얼마큼 달성했는지, 수익성은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에 기한이 있어 스케줄이 빡빡하게 흘러가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은 ERP 등 시스템이 잘 되어있고 타 부서 협조가 잘 된다는 가정 하에 평일엔 야근을 해도 주말 출근까지 하는 일은 드물지 않나 싶다. 나는 중견기업과 본사가 외국에 있는 한국지사만 다녀봤기 때문에 한국의 일반적인 대기업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주말 출근을 해본 건 매년 연말에 마감할 때(이건 진짜로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어서) 그리고 언젠가 관계사가 늘어나면서 ERP 도입을 해서 그전에 테스트가 진행되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일정 상 정말 어쩔 수 없이 주말에 해야 돼서 테스트에 참여하려고 출근한 게 전부였었다.



3. 현금시재 관리


구글에서 '지폐계수기'로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 보통 은행에서 많이 보셨을 거다.



    이 부분은 웹툰과 드라마와는 연관이 없지만 내가 회사에 입사하고 놀랐던 부분이라 한번 끄적여본다.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이니까 요즘은 현금 시재를 관리하지 않는 곳이 더 많을 것 같다. 나의 첫 회사는 비교적 큰 규모의 회사였고 본사 말고 관계사들도 여럿 있었다. 관계사들에는 별도의 관리부서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법인의 재경부에서 그 관계사들의 회계 처리까지 도맡아서 했다. 


     내가 처음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우리 법인 포함해서 3개사였는데 다니는 동안 한두 군데가 더 늘었다. (아마 그 뒤로 더 자잘하게 늘었을지도...?) 일을 하다 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작은 법인이라도 큰 법인에서 발생하는 기본적인 비용은 똑같이 발생하기 때문에 관리하는 회사의 숫자가 늘면 결국 처리해야 할 자잘한 일들만 늘어난다.


    아무튼 당시 회사는 현금 시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은행원도 아닌데 사수가 일을 알려 주면서 현금을 세는 법까지 알려줬다. 



첫째, 지폐를 책상에 두들겨 네 각이 일치하도록 맞춘다. 

둘째, 왼손에 지폐를 끼우는데 중지와 약지 사이에 끼운 다음 검지와 중지로 지폐를 지탱한다. 
(이게 잘 지탱되어 있지 않으면 나중에 지폐를 셀 때 흩트러진다)

셋째, 왼손 엄지로는 지폐의 뒷면 가운데 부분을 잡으면서 슥 비틀어 준다.

넷째, 오른손으로 지폐 윗면을 잡는데 검지로 지폐 뒷면을 받친 채로 엄지로 지폐를 한 장씩 넘기면 된다. 



     처음엔 이 과정들이 너무나 어색했다. 평소에 이렇게 많은 양의 현금을 만질 일도 없었고 만약 지폐를 셀 일이 생겨도 하나 둘 펼쳐가면서 셌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몇 번 하다 보니 일반인들이(?) 보면 놀랄 정도로 지폐를 깔끔하게 만지게 되었다. 게다가 내 자리에는 보통 은행 창구에나 있을 법한 계수기-지폐를 넣으면 지폐가 몇 장인지 세어주는 기계-도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가서 재무팀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꼭 총무 역할을 맡게 되는 바람에 뭉뚱그려서 '그냥 회사원이에요'라고 한 적도 많았다. 


     현금 시재는 그나마 두 개 법인에만 있었는데 관리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현금 입출금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분명 돈을 잘 세서 내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월말에 정산하면 꼭 잔액이 틀어졌다. 그게 어디서 샌 건지 찾을 길이 없기 때문에 결국 내 돈으로 메꿔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메꾸면서 배우는 것이다. 몇 달간 내 생돈으로 메꾸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일 없이 잔액이 척척 잘 맞게 되었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에서 유미가 일하는 재무부는 이야기 흐름  크게 중요하지 않다. 드라마 세트장에 나오는 사무실은 아기자기해서 내가 그동안 다녔던 회사의 재무팀과는 분위기가 영 달랐다. 요즘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기업이나 스타트업이라면 사무실의 전체적인 디자인이 아기자기할 수도 있으니 이야기가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런 회사가 아닌 일반적인 사무실은 흰색과 회색의 모노톤으로 이루어져 있어 차분하고 딱딱한 분위기가 흐른다.


     내가 그동안 일해 곳들의 재무팀 분위기도 대체적으로 조용하며 서로  많이  하고 각자 일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우리 팀을  다른 부서 사람들이 절간 같다고 하는 경우도 들었는데 보수적인 분위기의 회사일 경우 분위기는 더 딱딱하다.

                                 

     나는 드라마 <김과장>의 김과장(남궁민 분)처럼 사내 비리를 파헤치고 드라마 <미생>의 안영이(강소라 분)같이 직접 CFO를 찾아가는 똑똑하고 대단한 사원이 아니다. 그저 대한국수에 다니는 유미처럼 점심에 뭐 먹을지 고민하고 야근도 하면서 평범하게 재무팀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그저 드라마에 담긴 장면을 현실의 재무팀과 한 번 비교해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서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왜 우리 회사엔...
채우기 대리나 유바비 대리는 없을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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