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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an 14. 2024

눈이 내리는 도시를 건너

BGM  <12월>, 루싸이트토끼

2014년 12월 14일의 기록.



     올해의 마지막 패밀리데이(2시간 빨리 퇴근하는 날)다. 이번주도 유독 힘들었다. 마음을 많이 다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화를 내고야 말았다. 어느 날인가는 오전 휴가를 내고 다른 회사의 1차 면접을 보고 커피숍에 들렀다 영화를 보고 사무실로 복귀했는데 1차 면접 통과소식을 들었다. 그런 한 주였다. 


     주말엔 오랜만에 영화메이트 JS와 만나기로 했다. 마침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같이 볼래? 했더니 흔쾌히 오케이 했다. 그런데 영화시간표를 검색해 보니 시간대가 죄다 아침 아니면 저녁이었고 그나마 맞는 시간대는 만나자마자 영화를 봐야 해서 점심을 놓치게 되는 일정이었다. 혹시 몰라 금요일도 찾아보니 다행히 8 시대에 있다. 게다가 최근에 이벤트로 받은 할인쿠폰도 있고 할인되는 신용카드도 있어서 오천 원에 관람가능.


     문제는 평일 저녁이다 보니 저녁 먹고 영화 보고 나면 수다 떨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패밀리데이 덕분에 일찍 퇴근할 수 있었고 어차피 영화는 JS가 일하는 상암에서 하니까 퇴근하자마자 바로 가면 괜찮겠다 싶었다. 수다를 떨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은 줄어들겠지만 대신 농도 깊은 수다를 떨면 된다면서.


     퇴근하기 전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퇴근하려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눈발이 거세졌다. 꽤나 올 듯싶었다. 찾아보니 회사 앞에서 상암동까지 가는 좌석버스가 있었는데 마침 버스가 금방 와서 올라탔다. 이렇게 눈雪이 오는 날에는 뭘 들어야 좋을까 고민하다 윈터플레이 1집을 틀었다. 그래, 답은 재즈였어, 재즈였다구.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내 앞 좌석에 젊은 여자애가 탔는데 탈 때부터 계속 통화 중이더니 계속 끊임없이 통화를 했다. 버스 안에는 라디오도 틀어져 있지 않아서 매우 조용했는데 오직 그 통화소리만이 버스 내의 조용한 공기를 여러 줄기로 갈라버렸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한강을 건넜다가 다시 건너와서 올림픽대로에 진입했기에 함부로 자리를 옮길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참기로 했다. 차창에는 서리가 끼어 밖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여의도에서 계속 근무했다면 이렇게 일찍 퇴근해 보는 건 경험해보지 못했겠지, 와 같은 생각들을 하며 멍하니 차창을 바라보았다.


     창 밖도 잘 보이지 않는 데다 버스 내부는 매우 조용했다. 게다가 평상시에 자주 타는 일반버스가 아니라 고속버스 같이 생긴 좌석버스를 타고 있자니 꼭 여행을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윈터플레이 노래가 모두 끝나고 십이월이라는 노래제목 때문에 떠오른 루싸이트토끼의 노래를 들었다. 좋다. 잘 어울린다. 귀에 쏙쏙 들어와. 


     그렇게 한참 노래를 들으며 다시 한강을 건너 마포로 진입하니 곧 내려야 하는데 눈目이 슬슬 감겨오려고 한다. 잠은 이렇게 얄궂다. 잠이 들면 안 되는 순간에 다가오는 잠이 제일 달콤하다. 내려오는 눈꺼풀을 움켜잡고 있다가 버스에서 내린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나는 항상 연말엔 친구들에게 직접 쓴 자그마한 카드를 선물하곤 하는데 오늘 만날 친구에게는 그걸 준비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어차피 시간도 남았겠다 마침 버스정류장 앞에 각종 가게들이 입점한 몰mall이 보였다. 문구를 파는 곳을 찾아 한 바퀴 돌고 카드와 볼펜을 샀다. 카페에 들어가기는 시간이 어중간해 아직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 음식점 앞의 대기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카드를 쓴다. 


     JS와 올해 여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차가 막혀서 첫 영화인 '프랭크'를 놓치고 하는 수 없이 의림지에 가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늦은 점심을 배불리 먹고 양푼이 팥빙수를 파는 카페에 갔는데 2층 좌석을 넓은 창들이 액자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구름과 하늘과 산을 바라보며 멍 때리다가 또 이야기를 하며 하릴없이 오후를 보냈었다. 그때는 더웠는데 지금은 추워진 데다 눈도 온다. 이제 곧 친구가 퇴근하면 우리는 만나서 또 수다를 떨고 영화를 보겠지. 






12월 이 맘 때쯤
귓가에 울려 퍼지는 캐롤을
나도 몰래 흥얼거리네

거리를 가득 매운 행복한 웃음소리들
난 홀로 시린 손을 부비며 걸어
몇 해 전 차가운 내 손 따뜻이
꼭 잡아주던 너의 손
이젠 다신 느낄 수가 없지만

여전히 이렇게 겨울이 오면
눈물이 날 만큼 추워
니가 그리워질 때면

거리를 가득 매운 행복한 웃음소리들
난 홀로 시린 손을 부비며 걸어
몇 해 전 차가운 내 손 따뜻이
꼭 잡아주던 너의 손
이젠 다신 느낄 수가 없지만

여전히 이렇게 겨울이 오면
눈물이 날 만큼 추워
니가 그리워질 때면

거리를 가득 매운 행복한 웃음소리들
난 홀로 시린 손을 부비며 걸어
몇 해 전 차가운 내 손 따뜻이
꼭 잡아주던 너의 손
이젠 다신 느낄 수가 없지만

여전히 이렇게 겨울이 오면
눈물이 날 만큼 추워
니가 그리워질 때면

두 눈을 감고 점점 흩어가는
네 모습을 맞춰가
다시 눈뜨면 콧등위로 새하얀 흰 눈이
네 모습처럼 소복히 쌓여 

  

<12월>, 루싸이트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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