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참지 못하고 욱했나
2014년 11월 29일의 일기.
고난의 11월이었다. 11월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의 초입으로 막 들어서는 달이다. 이번 달만 지나면 일 년의 마지막 달이 온다는 것과 점점 빨리 떨어지는 어둠을 보며 또 겨울이 오는구나 싶어 싱숭생숭하다. 그리고 공식적인 공휴일이 하루도 없어 휴가를 내지 않는 이상 주말 제외하고 쉬는 날이 없다는 점 또한 11월의 특징이다.
월초부터 계속되었던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나으려나 싶다가도 약을 올리듯이 다시 찾아왔다. 그래서 설사와 변비를 반복하다 배에 가스가 많이 차서 힘들었다. 배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가 앓고 있는 이 증상이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친절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어야 했는데 아픈 지 4주가 다 된 내일에서야 드디어 가게 되었다. 12월이 되면 무언가 좀 일단락될까? 연말이라 마감 준비도 해야 하고 중간감사에 더더욱 복잡한 일들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서럽다.
어제의 일은 비단 어제의 일 때문에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여태까지 쌓이고 쌓였던 게 폭발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흔히 사람은 어려운 위기상황에 닥쳐봐야 진면모가 나온다고 하는데 난 그 점에서는 빵점이다.
좋은 상황에서는 서로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어렵거나 곤란한 상황이 되면 나는 이성을 잃고 헤맨다. 그게 바로 이 결과다. 그래서 물론 전무님한테도 화가 났지만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던 것 같다. 그 화살을 누구에게 돌리겠어? 아무리 남 탓 해봤자 그 사람은 변하지 않을 건데. 혼자 드라마 에피소드 한 편 찍었다.
보나 마나 전무님의 뻔한 소리가 이어질 거 같아 고개 푹 숙이고 듣는 척이나 해야겠다 하고 있었다. 이미 그때부터 내 표정은 좋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다 똑같은 레퍼토리 듣는 것도 지겨워져서 그냥 할 말 해야겠다, 하고 고개를 쳐들고 말을 했을 뿐인데 그게 전무님껜 공격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그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고 내 위 직속 사수인 부장님도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주의를 줬지만 난 또 그렇게 해버렸다. 난 그것밖에 안 되나 보다.
아무튼 말하고 나서 반응을 보니 아차 싶었다. 실수했구나. 안 그래도 요새 예민한 사람인데 내가 또 거기다 하나를 더했구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자 직원들한테 하는 것처럼 나에게 쌍욕을 하진 않았다. 대신 앞으로 나보고 결재 들어오지 말란다. 잘됐지, 뭐. 들어갈 때마다 이거 태클 걸고, 저거 태클 걸고 하는 통에 일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