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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an 02. 2022

친절한 듯 보이지만 하나도 안 친절한 친절 (하)

주위에 널린 기계적인 친절함 : 건강검진센터 편 

'친절한 듯 보이지만 하나도 안 친절한 친절 (상)'(https://brunch.co.kr/@lifewanderer/167)에서 이어집니다.




     콜센터의 친절함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던 중, 일 년에 한 번 하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건강검진센터에 갔다. 법적으로 사무직은 2년에 한 번만 건강검진을 받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의료업종을 영위하고 있어서 그런지 복지 차원에서 사무직에게도 1년에 한 번씩 약 30만 원가량의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지원을 해줘서 매년 검사를 받고 있다. 회사와 제휴를 맺은 병원이나 건강검진센터 중 내가 의료기관을 선택해서 검진을 받으면 된다. 


    피검사와 같은 기본적인 검진 내용은 똑같지만 CT나 MRI를 찍는다던지 하는 세부적인 검진 내용은 다를 수 있다. 매년 같은 곳에서 검진을 받으면 작년과 결과를 비교해 볼 수 있어서 편하긴 한데 다른 곳에 가면 새로운 느낌도 들고 또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게 발견되기도 하니까 새로운 곳으로 가보기도 한다. 올해는 우리 회사 근처에 있고 직원들이 많이 검사받으러 간다는 곳으로 예약을 해봤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잘 몰라서 건물 지하로 갔는데 사람이 없다. 입구에 멀뚱멀뚱하게 서 있으니 지나가시던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무슨 일로 왔냐고 묻는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왔다고 하니 그제야 카운터에 앉아있는 직원이 일어서서 혹시 지하로 오라고 안내를 받았냐고 물어본다. 그건 아니라고 하니 여기가 아니라 건물 위쪽에 몇 층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알려준다.


     위로 올라가니 그제야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과 건강검진센터용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아침 일곱 시 반이라는 이른 시각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나도 안내를 받고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여긴 직원들이 친절하긴 한데 그 친절함을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정해진 멘트를 친절한 톤으로 말하고 있는 느낌. 게임의 NPC 같은 느낌이다. 기분이 이상하게 좋지 않다.


     아마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안내 멘트를 말해줘도 잘 안 들린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면 또 똑같은 대답을 한다. 정해진 대답. 묻기를 포기한다. 뭐, 여기서 다음은 어디로 가세요 같은 것들이겠지. 여태까지 여러 건강검진센터를 가봤고 그곳들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지만 여기가 유독 심한 거 같다.


     검진센터는 병원만큼은 아니지만 긴장되는 곳이긴 한다. 아무래도 여기서 뭔가가 발견되어서 건강이 좋네, 안 좋네 할 테니까. 초음파 보는 직원이 자꾸 추가 질문을 하는 걸로 봐선 뭔가 보이는 듯한데 내가 한마디 물어봤더니 정확한 결과는 나중에 결과지 나갈 때 확인하라고, 말을 할 듯 말 듯하며 결국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작년에 특히 여러 군데에서 이상이 발견되면서 이제 노화에 한 단계 접어든다는 느낌에 절망했었기 때문이다.


     ‘서비스’는 균일한 품질을 제공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건 사람이 하는 일인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다르고 또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도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물건을 제공하는 것은 품질을 균일하게 할 수 있어서 좀 더 확실하다. 


     내가 독서모임인 트레바리를 하면서 느꼈던 것도 그 점이었다. 분명 좋은 서비스이고, 좋은 모임인데 모임을 이끄는 클럽장에 따라 분위기가 꽤 달라졌다. (물론 클럽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도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트레바리에서 강조하는 가치가 있는데 그 가치를 더 잘 전달하면서 인간적인 면도 함께 가지고 있는 클럽장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고 뭔가 미묘하게 부족한 느낌으로 그걸 전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다행히 내가 갔던 첫 모임에서 그걸 잘 전달하는 클럽장을 만나서 모임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고 그래서 한동안 모임을 지속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서라는 직업도 단순히 책을 분류하고 책을 고르고 배치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했다. 실제로 사서 업무를 해본 분들이 쓴 책을 읽어보고 또 인터넷에 있는 사서 모임 카페에 가입해서 사람들이 남긴 글도 읽어보았다. 그분들은 사서는 대민 업무의 비중이 커서 방문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가 꽤 많다고 했다. 그래서 본인이 책 읽는 걸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사서란 직업을 선택한다면 업무에 잘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이 꽤 인상적이었다. 사서도 그러할진대 특히나 콜센터같이 주로 불만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스트레스를 받고 일이 고될 것이다.


     상담원 입장에서 가장 빨리 다음 콜을 받을 수 있는 것, 건강검진센터에서 빨리 다음 검사자를 받는 것은 그 단계에서 정해진 대로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 하고 다음 단계로 그들을 넘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친절한 척’하는 멘트와 톤에서 위화감이 느껴져서 오히려 '친절하지 않다'는 느낌만 강하게 들었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정해진 멘트가 흘러넘치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정해지지 않은 말에서 진심을 느낀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나도 모르게 상황에 맞게 나오는 말, 그게 그 사람의 진심일 테니까. 


     건강검진센터 지하에서 만났던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처럼 자기 일이 아닌데도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봐주는, 정해진 멘트에 갇히지 않고 눈앞에서 곤란에 빠져있는 사람을 보고 도와주려는 의도되지 않은 친절함을, 그저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진심을 나는 바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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