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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r 04. 2022

독립 후 혼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하)

직접 만든 식사 그리고 불꽃놀이로 하루를 마무리하다

'독립 후 혼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상)'(https://brunch.co.kr/@lifewanderer/230)에서 이어집니다.




    책을 다 보고 나니 어느새 날이 슬슬 어두워져 오고 있었다. 저녁을 직접 만들어서 먹기로 했는데 크리스마스 날이니 만큼 특별한 걸 해 먹기로 했다. 아래는 내가 정한 메뉴다.



샐러드 : 루꼴라 샐러드 (슈퍼에서 사옴 ㅎㅎ)
스파게티 : 로제 스파게티 (직접 만들기)
감바스 : 밀키트로 준비 완료
후식 : 케이크 (파리크라상에서 사옴 ㅎㅎ)



     샐러드는 슈퍼에서 사 온 거라 씻어서 그릇에 담으면 끝. 그리고 스파게티 재료 준비를 시작한다. 먼저 물을 끓여서 면을 삶아낼 준비를 한다. 그 사이에 양파와 버섯을 꺼내서 씻고 알맞게 크기를 자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스파게티 면을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 감바스 밀키트를 뜯는다. 밀키트지만 그래도 조리하기 전에 몇 가지는 직접 해야 한다. 먼저 바게트를 꺼내서 사선으로 자른 다음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린다. 그리고 팬에 올려서 살짝 굽는다. 그 사이에 다 끓은 스파게티 면을 꺼내서 체에 밭쳐둔다. 

 

     프라이팬 두 개를 가스레인지에 세팅한다. 하나는 감바스를, 하난 스파게티를 할 거다. 둘 다 시작은 똑같다. 올리브유와 마늘을 넣고 볶는다. 감바스는 새우와 나머지 재료-브로콜리, 고추 등-를 넣고 볶는다. 집에 토마토소스 밖에 없지만 우유와 치즈를 넣어서 로제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올리브유와 마늘을 넣고 볶다가 버섯과 양파를 넣고 볶으면서 토마토소스를 투하한다. 거기에 우유와 체다치즈를 섞어가면서 맛을 본다. 


     소스 색깔만 보면 로제 느낌이 났지만 이상하게 토마토소스 맛이 난다. 우유를 좀 더 첨가하고 치즈를 추가로 넣어봤지만 밖에서 파는 꾸덕하고 진한 로제 소스 맛은 아니다. 망했다. 역시 생크림이 있어야 했나. 그 사이 감바스에는 시즈닝을 넣고 볶다가 적당히 익은 것 같아 불을 끈다. 스파게티 소스는 어쩔 수 없다 싶어 포기하고 체에 밭쳐 둔 면을 꺼내서 팬에 넣고 소스와 함께 버무려낸다. 그리고 불을 끈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준비해본 크리스마스 저녁식사. (@집, 2021.12.25)


     그릇에 담아 세팅한다. 독립해서 사니 좋은 점은 내 맘대로 집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엔 집에 큰 크리스마스 트리를 놓고 싶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하다 보니 트리 대신 유리에 붙여서 만드는 전구 트리를 설치하기로 타협했다. 대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도록 테이블에 크리스마스 느낌이 나는 테이블보를 둘렀고 거기에 음식을 세팅했다. 샐러드, 감바스와 바게트 그리고 메인 요리인 스파게티까지. 딱 하나 아쉬운 건 여기에 어울리는 커트러리가 없다는 것. 내년 크리스마스엔 미리 구비해둬야겠다.


     스파게티는 나쁘지 않지만 간이 좀 심심했다. 대신 밀키트로 만든 감바스의 간이 아주 짭조름해서 중간중간 감바스를 집어 먹으면 간이 맞았다. 맛은 조금 부족하지만 나를 위해서 이리저리 손을 움직여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먹는 행위가 주는 위안이 있음을, 요리를 해 먹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샐러드는 포장된 걸 사 왔고 감바스는 밀키트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요리한 건 스파게티 하나긴 해도 재료를 뜯고, 씻고, 면을 삶고 만드는 과정을 거치니 음식 준비가 거의 1시간 정도 걸렸다. 그런데 먹는 건 15분도 안 걸렸다. 스파게티는 오늘도 면 조절에 실패해서 2인분이나 더 만들어버려서 나머지는 다음 주에 먹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자, 이제 다 먹었으니 치워야 할 일만 남았다. 프라이팬에 물을 부어서 팔팔 끓이고 그 사이에 설거지를 시작한다. 팬까지 싹 치우고 생각난 김에 다음 주에 아침 식사로 가져갈 사과를 2개 깎는다. 사과 껍질과 설거지통 아래 음식물 쓰레기 망까지 싹 비운다. 분리수거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리고 온다. 부엌일은 이것으로 끝이다.


    그리고 나갈 채비를 한다. 추운 이 밤에 대체 어딜 가냐고 묻겠지만 나는 불꽃놀이를 보러 나가야 했다. 어제 저녁에 갑자기 밖에서 땅을 울리는 듯한 쾅, 쾅, 소리가 들렸다. 오늘 비가 온다고 했었나? 천둥번개 소리인가? 했는데 아무리 봐도 아니었다.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어서 베란다와 거실 창을 이리저리 보다 보니 반대편 건물의 창문에 불꽃놀이가 비쳤다. 서울시에서 하는 불꽃놀이가 겨울에도 했었나? 하며 찾아보니 근처에 있는 하얏트 호텔에서 12/24, 12/25, 12/31일에 투숙객들을 위해 이벤트로 불꽃놀이를 하는 모양이었고 그게 집 가까이에서 하다 보니 소리가 들렸던 거였다. 이거다. 이걸 보러 가야겠다. 집 근처에 있는 육교에서 보면 딱 잘 보이겠어.


     그래서 단단히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선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가서 기다렸다. 원래 시작 시간은 8:30부터라고 되어 있었지만 어제도 8:40이 넘어서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8:40이 지나도 시작하지 않길래 투숙객도 아닌 주제에 호텔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8:50부터 한다고 한다. 단단히 채비하고 왔지만 무릎까지 오는 패딩이어서 무릎 아래쪽과 운동화를 신은 발이 시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좀 더 기다리자 드디어 불꽃놀이가 시작했다.


2021년 크리스마스날의 불꽃놀이 관람 (2021.12.25)


2021년 크리스마스날의 불꽃놀이 동영상 (2021.12.25)


     어제 집에서 들을 땐 집을 울릴 만큼 큰 소리였고 꽤 거슬리는 소리였는데 오늘은 막상 더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데도 그 소리가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눈앞에 불꽃놀이가 실제로 펼쳐지는 모습과 함께 보고 있으니 소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제 소리만 들었을 때는 밤하늘을 다 덮을 거라 상상했는데 그 정돈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공짜로, 크리스마스에, 생각지도 못했던 불꽃놀이 관람이라니.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불꽃놀이는 2018년, 라트비아Latvia의 수도 리가Riga에서 봤던 불꽃놀이었다. 그날에 대해서도 참 할 말이 많지만 아무튼 그 날 봤던 불꽃놀이는 그날 하루의 고생을 다 보상해주는, 선물 같은 불꽃놀이였는데 오늘도 비슷했다. 다만 그때는 8월이라 지금과 달리 한여름이었고 혼자 유럽 여행 중이었으며 숙소도 혼자 썼기 때문에 낯선 라트비아어가 흐르는 가운데 현지인들 틈에 껴서 혼자서 불꽃놀이를 봤었다. 


     오늘은 올겨울 지금까지 중 가장 날씨가 추운 크리스마스 날이고, 오늘의 불꽃놀이도 역시나 혼자다. 나에게 불꽃놀이란 혼자서 밖에 볼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분명 누군가와 본 적도 있었지만 오래전 일이다 보니 그 기억들은 많이 흐려졌을 뿐이다. 쓸데없는 감상은 뒤로 하고 미리 준비해온 셀카봉에 핸드폰을 고정시켜서 영상카메라 렌즈가 아닌 내 눈으로 불꽃들이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 귀로 직접 들었다. 그리고 약 10여분의 짧은 불꽃놀이는 끝났다.


     독립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나의 크리스마스를 축하해주듯 펼쳐진 불꽃놀이. 하얏트 호텔 관계자분들, 고맙습니다. 언젠가는 호텔에도 묵으러 갈게요.







평소와 다름없이 청소를 하고
마음에 쏙 드는 BGM에 맞춰 책을 읽다가 <Me Before You>를 읽으며 엉엉 울고


손으로 조물딱 조물딱 요리를 만들어 먹고
차가운 겨울 공기를 뚫고 밖으로 나가 밤하늘에 펼쳐진 불꽃놀이를 본


혼자서 보냈지만 아주 멋진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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