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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Apr 15. 2022

혼자 산다는 사실을 들킬 뻔한 순간

출근길에서 팀장님과 같은 버스를 타고 말았다 

     2022년의 첫 번째 공식 출근인 월요일이 밝았다. 나는 원래 8시 30분 ~ 17시 30분 시간제로 일하고 있어서 8시 반 출근이지만 이번 주는 일이 있어서 9시 반에 출근하기로 했다. 새해 첫날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이 시간대에 출근하다 보니 조금 여유 있게 집에서 나와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9시에 출근하는 사람들과 겹치는 시간이어서 버스정류장에도 사람이 많았고 버스를 탔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다음에 환승하는 버스에는 사람이 더 많았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이 출근하는 시간대를 피해서 다니다 보니 버스를 타면 한산했고 무조건 앉아서 갔다. 그런 시간에만 다니다 보니 출퇴근 시간에 사람이 몰린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은 앉아서 가는 걸 걱정할게 아니라 이 버스를 못 탈지도 모른다는 걸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겨우겨우 끼여서 타서 자리를 잡고 서서 가고 있었는데 조금 가다가 내 앞에 앉은 분이 내려서 그 자리에 홀랑 앉았다. 내가 내릴 때까지도 버스에 사람은 크게 줄지 않았다. 중간에 한번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면 또 우르르 타서 그 자리를 메꿨다.


     항상 길도 덜 막히고 버스에 사람도 별로 없는 여유로운 출근길을 보냈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사람이 바글바글한 출근길을 지나 회사에 오니 참 낯설고 벌써부터 기 빨리는 기분이었다. 그동안은 내가 이러고 사람들한테 치이면서 출근했었구나, 란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게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닌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잔인한 사실이 생각난다.


     아무튼 버스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와 일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니 원래 9시 반이 출근시간이신 팀장님이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서로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팀장님이 다른 사람들 모두 다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아래와 같이 물으셨다.



팀장님 : OO 씨(나), 혹시 오늘 000번 버스 타지 않았어? 

나 : (동공 지진과 함께 갈라지는 목소리..) 녜????

팀장님 : 아니, 이~상하게 오늘 아침에 내가 타고 오는 버스에서 본거 같아서 말이야. 집이 그쪽 방향이 아니지 않아?

나 : 아하하... 아마 저 맞을 거예요. 아침에 어딜 좀 다녀오느라...



     아뿔싸... 내가 지금 독립해서 혼자 지내고 있다는 사실은 회사 내 아무도 모른다. (관련 글 링크 : https://brunch.co.kr/@lifewanderer/180)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몰래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사람이 많아서 바글댔던 그 버스에 팀장님이 타고 계셨던 것. 버스 앞쪽에 있던 나는 팀장님을 못 봤지만 그 버스의 어디에 타 계셨는지 모를 팀장님은 나를 본 모양이었다.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나를 봤던 것 자체를 부정할 순 없었다.


     다행히 오늘은 평소 출근시간보다 늦게 왔기에 그렇게 둘러댔다. 팀장님이 더 이상 뭘 묻진 않으셨다. 그런데 도대체 팀장님은 그 버스를 어디서 탄 거지?라고 한참을 생각했다. 네이버 지도를 띄워놓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봤다.


     나의 출근길 코스를 그려봤다. 집에서 회사까지 한 번에 오는 버스가 없어서 중간에 버스를 한번 갈아탄다. 그런데 내가 그 갈아타는 그 버스들이 알고 보니 전부 다 팀장님댁 방향에서 오는 버스였다. 그러니 팀장님은 이미 그 버스에 타 있었고 나중에 탄 나를 발견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다. 팀장님댁에서 회사까지 오는 버스가 무려 3대나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그 시간에, 딱 그 노선을 타신 겁니까, 팀장님?


     그 주에는 하는 수 없이 팀장님을 피해(?) 아침마다 평소 출근하는 버스-버스 노선이 아니라 다른 출근 루트를 찾아 버스-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했다. 원래 하던 대로 도저히 버스-버스를 탈 마음이 나지 않았다. 물론 그 시간에 버스에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언제 어디서 팀장님과 같은 버스를 탈지 알 수 없었으므로 불안했으니까.


     팀장님한테 독립한 사실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여태까지 8시 또는 8시 반에 출근했을 때 팀장님과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건 단지 내가 9시 반에 맞춰 출근했기 때문에 발생한 불상사(?)였다. 이 불상사를 피하는 것은 절대 출근시간을 뒤로 늦추면 안 된다는 것과 내가 얼른 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 딱 두 가지뿐인 것 같다. 참 스릴 넘치는 출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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