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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Dec 10. 2022

생일날, 처음으로 휴가를 내보다 (상)

시간을 돈으로 사는 어른의 생일

     내 생일에 자발적으로 휴가를 낸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10년 넘게 회사생활을 해오면서 생일이 주말에 걸려서 쉰 적이 있었고 첫 번째 회사를 다닐 땐 마감에 애매하게 걸려서 쉴 수 없거나 혹은 생일이 평일이었는데 우연히 회사 전체 휴가 소진 날에 걸려서 쉰 적은 있었지만. 그래서 자발적으로 스스로 휴가를 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상하게 올해 생일엔 약간 무리해서라도 꼭 쉬고 싶었다. 생일이 화요일이니까 월요일부터 붙여서 주말부터 쭉 쉬려고 했는데 그건 도저히 스케줄 상 안될 거 같아서 포기하고 대신 생일 당일 하루만이라도 쉬기로 했다.






     생일이고 휴가를 냈으니까 꼭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이거 저거 생각해봤지만 딱히 끌리는 게 없었다. 날이 좋으면 근처로 드라이브라도 다녀오겠는데 요즘은 장마철이라 그런지 날이 흐리고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와서 드라이브할 맛이 나질 않았다.


      생일 전날 퇴근길, 카페에 들러 조각 케이크를 샀다. 최근에 티라미수에 꽂혀서 티라미수 케이크를 살까 했지만 맛있는 티라미수를 파는 곳은 많지 않은 거 같아 오는 길에 있던 카페에서 블루베리 케이크를 샀다. 그리고 매일 출근길에 오며 가며 보기만 했던 꽃집에 들러 나를 위한 작은 꽃다발 하나를 샀다.


     요즘 이 꽃가게 사업이 꽤나 유행하는 느낌이다. 예전엔 꽃가게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진입장벽이 있었고 꽃은 졸업식이나 생일, 이벤트 등 특별한 날에만 산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그냥 집에 툭, 하고 꽂아놓거나 가볍게 선물하기도 좋은 아이템이 된 느낌이다. 진입장벽 허들이 좀 낮아졌달까. 물론 나처럼 스스로에게 꽃을 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양재 꽃시장에서처럼 여러 개를 조합해서 사볼까 했으나 한 송이 단위로는 팔지 않는 거 같았다. 그래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작은 꽃다발을 구입했다. 그대로 화병에 꽂으면 될 거 같아서. 그렇게 조각 케이크와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생일 당일.


     생일이랍시고 거창한 거 하려고 하지 말자. 그냥 휴일이 하루 더 생겼다 생각하자. 드라마 <가을동화> 하면 꼭 언급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원빈이 송혜교에게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하며 사랑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지금 내 생일이라는 하루의 시간을 돈으로 샀다는 자각을 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번 주 바이올린 레슨 학원이 휴강이라 지지난주 토요일 레슨 이후로 연습을 1도 안 했다. 그럼 차 몰고 나간 김에 다음에 차 가지고 갈 수도 있으니까 바이올린 학원까지 차 가지고 가서 연습 좀 하고 마침 오늘 책 반납하는 날이니까 도서관 들러 책 반납하고 그리고 주유하고 집으로 오자.


     그래서 바이올린 연습을 하러 바이올린 학원에 갔다. 근처 주차장에 들어섰는데 마침 제일 안쪽에 한자리가 남아 있었다. 위치 특성상 후면 주차를 하기가 애매해 들어온 그대로 전면주차를 했다. 한 번에 차를 잘 댔다고 좋아하며 차에서 내려 학원으로 향했다. (이게 문제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지만...)


     오랜만에 하니 또 몸이 굳어버린 느낌이 든다. 그래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본다. 사람도 없고 하니 괜히 학원에 비치된 소리가 풍부하게 울리는 고가의 악기도 한번 만져준다.


     그렇게 기분 좋게 연습을 마치고 학원을 나와 차를 빼러 나왔는데... 망했다. 차를 돌릴 각도가 안 나온다. 차를 뒤로 빼자니 뒤쪽에 있는 차들이 멋대로 대놓거나 차가 커서 금방 닿을 거 같고 그렇다고 앞쪽으로 움직이자니 제일 끝자리라 벽이 있어서 차를 돌릴만한 여유공간이 없다. 혼자 몇 번을 넣었다 뺐다 했다. 물론 아주 조금씩 미세하게 움직이면 가능은 하겠지만 문제는 차를 뺀 뒤에도 후진으로 나가야 한다는 거였다. 난 못해... 어떡하지?


     그러다 떠올랐다. 근처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집의 베스트 드라이버 엄마가. 마침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된 시각이라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상황설명을 했다. 생일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차는 빼야 했으니까. 다행히 엄마가 와줘서 찬찬히 아주 조금씩 차를 몇 번이나 돌리고 후진한 뒤에야 차를 무사히 빼줬다. 


     불효녀인 나는 생일날 나를 낳느라 수고한 데다 차까지 빼준 엄마를 내려주고 쿨하게 주차장을 떠났다. 이미 생일 기념으로 가족 식사는 지난주에 했으니 오늘은 식사 예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생일날, 처음으로 휴가를 내보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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