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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Nov 19. 2022

따뜻함이 넘치는 푸드코트 테이블

점심시간, 복작거리는 푸드코트의 한 테이블에서 벌어진 이야기



점심시간의 백화점 푸드코트란?
"자리 찾기 어려움"이다.



점심시간의 백화점 푸드코트.


     이곳은 자리를 맡아야만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나보다 사무실에서 단 몇 분 빨리 빠져나온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자리를 찾으려는 가운데 먹는 소리, 떠드는 소리,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등이 정신없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전쟁터와 다름없다.


     푸드코트에서는 실시간으로 자리가 나는데 여기서는 눈치 싸움을 통해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이것은 인원이 적을수록 유리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이면 아무 데나 낑겨 앉을 수 있다. 두 명부터는 조금 힘들어지고 같이 밥 먹으러 온 인원이 셋, 넷이 되기 시작하면 음식은 나왔는데 자리는 찾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혼자 와서 혼자 앉을자리를 찾는 거보다 세네 명이 와서 그 세네 명이 푸드코트 내에 골고루 퍼져 자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인원이 많은 게 빠른 자리 확보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뒤늦게 들었다. 다 같이 앉을자리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어쨌든 나는야 혼자 밥을 먹으러 온, 혼밥이 흔하지 않았던 약 15년 전 대학생 시절에도 구내식당에서 아무렇지 않게 밥을 잘 챙겨 먹고 다녔던 프로 혼밥러다. 오후 휴가를 냈으므로 점심을 안 먹고 일을 마친 다음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에서 나왔다. 


     내일까지 휴가를 냈으니, 내일까진 저를 찾지 말아 주세요. 오전에 개인 캐비닛 세 칸 중 한 칸을 싹 비워내서 문서창고로 보내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언제 떠날지 모를 곳이라 생각하며, 혼자 스스로 조용히 짐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뭘 먹을까 생각하며 백화점 지하를 한참 돌아다녔다.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몰라도 뭔가 뜨끈한 게 먹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국밥 말고. 면 종류를 먹고 싶었는데 우동은 또 뭔가 부족하고 (먹고 나면 금방 소화돼서 배고프니까) 그러다가 발견했다.



칼. 국. 수.



     그래, 오늘 점심은 칼국수다. 면만 먹으면 배고파질 거 같아서 호기롭게 칼국수와 보쌈고기가 같이 있는 세트메뉴를 주문했으나 칼국수 매장을 둘러싸고 있는 카운터석은 자리가 없다고 해서 푸드코트 쪽에 가서 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계속 돌아다니며 자리를 찾았지만 오늘은 진짜 자리 잡기가 어려웠다. 한 번은 애매하게 옷이 놓인 자리에 앉았다가 누가 미리 맡아놓은 자리라 해서 까이고 이러다 음식 나왔는데 자리 없는 거 아냐? 하면서 두리번거리다 눈에 들어온 자리.


     2인용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4인용으로 만들어진 자리였는데 그곳의 네 자리 중 할아버지 한분만 앉아 계셨다. 바로 그 앞자리는 짐이 있는 거 같았지만 옆 두 자리는 비어있는 거 같아 슬쩍 물어보니 비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가림막은 없지만 여기라도 앉아야겠어. 


     조금 있다 일행인 할머니가 오시고 두 분은 커피를 마시며 오후 스케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셨다. 한참 있으니 음식을 찾아가라는 진동벨이 울린다.


    일행이 없는 나에게는 자리 맡기는 필수인지라 가방을 두고 가기로 한다. 자리 맡기란 식당이나 카페에서 여기 앉을 사람이 있다는 표식을 하는 행위로 사람은 없는데 잠시 핸드폰이나 가방 등을 올려두고 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참 독특하면서도 좋은 문화이긴 한데 나는 사실 좀 불안하다. 


     암묵적으로 자리를 맡아 놓은 거라는 걸 다들 알고 있지만 이런 자리에 올려놓은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도 있다고 뉴스에 가끔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신용카드나 중요한 건 챙겨가기도 하고 절대 자리를 오래 비우지 않는다. 노트북 같은 거 두고 가는 사람들은 진짜 간댕이가 큰 거 같다. 난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그래도 난 음식만 받아서 금방 올 거니까 한국사람들을 믿고 간다. 가방을 놓고 가지 않으면 빈자리로 간주될 테고 그럼 나는 밥을 먹을 자리를 잃는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 그렇게 가방을 올려놓고 신나게 음식을 찾으러 다녀왔다.


     음식을 받아가지고 오니 오후 스케줄이 할아버지와 다른 거 같았던 할머니는 어느새 자리를 뜨셨고 내가 맨 처음에 왔을 때처럼 할아버지 혼자만 앉아 계셨다. 그런데 내가 음식이 담긴 쟁반을 내려놓으니 할아버지 왈,



사람도 없는데
가방만 덩그러니 있어서...

 내가 안 가고 앉아 있었어.



     안 그러셔도 되는데 참...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 말을 하고 자리를 뜨시는 할아버지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리고 자리에 앉았다.


     만약 그 자리에 젊은 사람이 앉아 있었더라면 혹은 반대로 내가 앉아 있었을 때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일어나서 갈 길이 먼데 굳이 음식을 가지러 간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 기다려줬을까? 


     이건 아마도 자리 맡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그리고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보다는 뭐든지-시간이든 돈이든-약간의 여유가 있는 어르신이었기에 두 가지 요소가 합쳐져서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내 가방을 봐주셨던 할아버지가 떠나고 나니 이제 네 자리 중에 나 혼자만 앉아있게 되었다. 이게 2인석 테이블이 두 개 붙어있긴 해도 4인석처럼 보이는 자리인 데다 내가 안쪽이 아닌 바깥쪽에 앉아있다 보니 사람들이 감히 여기 와서 자리 있냐고 물어볼 생각을 못하는 거 같다. 바깥쪽에 사람이 있으니 안쪽으로 들어가서 앉기도 애매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한 번 앉았더니 움직이기가 귀찮아진 나는 내 자리 확보도 했고 음식도 나왔으니 막 맛있게 먹고 있는데 누가 '저기요' 하고 말을 건다. 외국인이 아닌가 했지만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여자분인데 안쪽 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묻는다. 자리가 비었으니 앉아도 된다고 했다.


     말을 건 여자분은 우리나라 사람 같은데 발음이 꽤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했지만 왠지 모르게 외국인 같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녀는 그녀의 일행인, 누가 봐도 외국인인 남자와 자리에 앉았다. 둘은 자리에 앉자마자 영어로 대화했다. 곁눈질로 슬쩍 보니 뭔가 음식을 사 와서 둘이 나눠 먹는 거 같았다.


     식당은 워낙 시끄러워서 뭐라 하는지는 거의 안 들리기에 그냥 영어가 들리는구나, 하며 미국인 인턴이랑 밥 먹으면서 영어로 대화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싶으면서 혼자 감상에 빠져있는데…




저기요,
  밥 먹는데 죄송한데…



그 여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나 : (뭐지?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네?"

여자 : "지금 먹고 있는 게 뭐예요?"

(나의 속마음 : 한국인이라면 칼국수를 모를리는 없을 텐데? 어딘가 어색한 한국어는 교포라서 그런 걸까?)

나 : "아, 칼국수예요"

여자 : "여기(푸드코트를 가리키며)에서 주문한 거예요?"

나 : "아, 이건 여기가 아니라 푸드코트 밖에 있는 식당에서 주문한 건데 여기 가지고 와서 먹어도 돼요"

여자 : "너무 맛있어 보여서 물어봤어요"

나 : "네, 이거 진짜 맛있어요, 괜찮아요"



     실제로 이 칼국수는 이 푸드코트에선 맛집으로 통하는 곳이긴 하다. 그러더니 진짜로 주문하러 갔다. 한참 있다가 주문한 음식을 받아 들고 와서는 나에게 음식 주문했다고 말하면서 자리에 앉더라. 그래서 정말 맛있다고 한번 더 말해줬다.


     외국인인지 교포인지 한국에는 관광을 온 것인지 등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둘이 대화하느라 나에게 말을 붙일 단 한 톨의 틈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자세한 사정은 그저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배불리 잘 먹고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마스크를 다시 꼈다. 자리에서 슥 일어나서 곧바로 그릇 반납대로 향하기보단 떠나기 전에 굳이 한마디를 건네고 싶어졌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마스크 속에 있어 전혀 보이지도 않을 입은 웃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대사와 함께 나는 푸드코트를 떠났다.


     굳이 부탁하지도 않은 내 가방과 자리를 지켜주느라 출발시간이 아주 조금은 지연되었을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따뜻함을 그 할아버지가 떠나고 난 그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내가 받은 따뜻함을 조금이나마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의 어느 점심시간, 혼자 밥을 먹었지만 오늘만큼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 뜨끈한 칼국수를 배불리 먹어서 뱃속이 뜨끈한 걸 텐데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찌르르 울리면서 온 몸이 따뜻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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