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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Aug 14. 2023

경찰서 교통조사계를 방문하다

교통사고 접수를 위해 경찰서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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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는 정신이 없기도 했고 상대방 차량이 없으니까 신고가 되는 건가? 하다가 도로에 계속 서있을 순 없으니까 일단 견인해 달라고 하고 이동한 거였다. 보험접수를 하거나 경찰에 신고를 해놓으면 상관없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상대방 차주가 뺑소니로 신고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럼...
나 범죄자 되는 거임...? 



      다시 보험사에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경찰에 접수를 하란다. 그리고 만약에 오토바이 차주도 경찰에 신고를 해서 만나게 되면 그때 보험사에 사고 접수(보상)를 하면 된다고 했다.


     경찰청 대표번호 182로 전화했다. 한참 기다리니 상담원이 나왔고 이러저러해서 교통사고 접수를 하고 싶다 했더니 사고 위치가 어디쯤이었냐고 묻는다. 사고 위치가 서초구와 강남구 사이에 걸친 곳이라 애매하긴 한데 아마 주소 상으로는 서초구일 거라 했다. 그랬더니 직원분이 서초경찰서로 전화를 돌려줬다.


     그런데 정작 전화를 받은 서초경찰서에선 자기네 관할이 아니라 강남경찰서 관할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전화번호 알려주고 그쪽으로 전화해 보란다. 전화를 끊기 전, 전화로도 사고 접수가 가능한 거냐고 물어보니 아마 방문해야 될 거라고 했다.


     강남경찰서라고 알려준 번호로 전화했더니 당연히 안 받는다. 강남경찰서가 우리나라에서 민원 접수건수도 많고 제일 바쁜 경찰서라고 알려져 있어서 그런 걸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강남경찰서가 회사 근처에 걸어갈만한 거리에 있어서 월요일에 출근해서 접수하기로 했다.


     주말 내내 찜찜한 기분을 안고 있다 월요일을 맞이했다. 출근해서 점심시간에 경찰서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이걸 처리하기에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거 같고 마침 아침나절에 시간 여유가 좀 있길래 후딱 다녀오기로 했다. 


     팀장님한테 솔직하게 경찰서에 좀 다녀와도 되겠냐고 물으니 당연히 무슨 일이냐고 물으신다. 점심시간에 몰래 가면 말 안 하고 가도 되는 일인데 하는 수 없이 주절주절 상황 설명을 했다. 그랬더니 이런 일이 있으면 어차피 마음이 무거워서 회사일도 잘 안 되는 법이라며 얼른 다녀오라고 해주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사 앞에 바로 강남경찰서가 있어 갔다. (작은 규모의 파출소는 접수가 안된다고 들었다.)


     경찰서에 들어서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정상적인,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라면 경찰서에 올 일이 거의 없을 건데 나는 약간의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7,8년 전쯤 운전면허 갱신하러 오고 두 번째로 오는 경찰서인데 입구에서부터 위압감이 든다. 교통사고 접수 하려면 어디로 가야 되냐고 물어보니 단독 건물인 교통조사계 건물로 가라고 알려준다.



난생처음 들어가 보는 교통조사계 건물. 다리가 후덜덜. (@강남경찰서, 2022.07)



     교통조사계라고 쓰인 문으로 들어갔다. 앞에 안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랬더니 형사로 추정되는  분이 들어오시더니 무슨 일로 왔냐고 묻는다. 교통사고 접수하러 왔다고 하니 서류   주고 쓰란다. 그러면서 블랙박스 있냐고 물어봐서 지금은 없다고 했더니 일단 서류 작성을 하라고 했다. 각종 항목을 기입하고 주절주절 진술서를 쓴다. 내가 가입한 게 종합보험인지, 책임보험인지 차종이 뭔지 .



쓰기 전에 한 컷. 주절주절 사고내용에 대해 자세히 묘사했다. (@강남경찰서, 2022.07)


     다 작성하고 나서 어떻게 해야 되냐고 쭈뼛거리며 물어보니 저쪽으로 가라고 안내해 준다. 한 조사관에게 서류를 내미니 블랙박스 있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지금 차가 없다고 하니 블랙박스에서 어떻게 영상을 추출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그런데 내가 리더기가 없어서 직접 가져오면 해주시냐고 물어보니 스틱형 리더기를 주시면서 이걸 빌려줄 테니 여기에다가 갖고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설명이 시작되었다. 민사 쪽은 경찰이 책임지는 부분이 아니다, 우리는 형사 쪽을 담당한다, 말하자면 누가 벌을 받냐 아니냐 이걸 따진다 등. 그런데 이런 게 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고 법 관련 용어도 어렵고...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니 다시 설명이 시작된다. 내가 사고 난 곳이 관할이 애매한 지역이라 그 근처에 있는 강남구랑 서초구 CCTV를 모두 확인하고... 그런데 가만히 듣다 보니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할 것이며... 그런데 여기서 굳이 따지자면... 어쩌고 저쩌고... 듣다가 이상해서 되물었다. 



제가 가해차량인데요?



     그랬더니 경찰관은 잉? 하는 표정을 짓더니 나를 피해자로 둔 설명모드에서 가해자로 설정한 모드로 180도 전환했다. 이런 것도 편향의 일종일까? 내가 체구가 작은 여자고 사고는 안 일으키게 생긴 인상이라 판단해서 진술서를 자세히 읽어 보지도 않고는 내가 피해자라서 신고하러 온 걸로 착각한 거 같았다. 아니면 보통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오는 사람들은 대개 피해자들이니까 그랬던 걸까.


     가해자 모드용 설명은 짧았다. 자진신고만 하고 끝나는 걸 원하는 거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럼 자진신고철에 파일링되고 오늘은 끝이었다. 추후에 만약 그 오토바이 운전자가 뺑소니라고 씩씩대면서 경찰에 신고를 하면 그때 담당조사관이 배정되고 나한테 연락이 올 거라 했다. 그러면 가해자가 자진신고를 해뒀다 하면 최소한의 도리는 한 걸로 본다고.


    갑자기 무슨 CCTV로 가해차량을 특정해서 형사처벌이 어쩌고 하는데 무서웠다. 나는 오토바이 두대 중 한 대를 특정해서 그네들한테 연락해 가지고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었다고 말해주고 내가 처벌받는다는 걸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피해자 입장일 때보다는 설명이 금방 끝났다. 수사과정 확인서에 '이의제기 없음'이라 쓰고 여기저기 내 지장을 찍었다. 30분도 안 걸려서 끝났다. 이럴 거면 팀장님한테 말 안 하고 점심시간에 몰래 다녀올걸 그랬나 보다.


     앞으론 더 조심해야지. 엄마가 너 신고 안 하면 앞으로 지나가는 오토바이 볼 때마다 생각이 나서 찜찜할 거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사고는 토요일에 있었고 다음날인 일요일, 본가에 가기 위해 운전을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정말 지나가는 오토바이 볼 때마다 움찔움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왠지 억울해져서 한마디 하고 싶어 진다. 



제발...
길 한편에 
오토바이 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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