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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r 10. 2023

소설 <스토너>를 읽고 떠오르는 내 인생의 한 장면

자네, 전공을 잘못 선택한 거 아냐?라는 영문과 노교수님의 말

     소설 <스토너> 읽었다. 


이 책은 윌리엄 스토너라는 영문과 노교수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까지 이르는 그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이다. 농가에서 태어난 스토너는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돕고 살다가 어쩌다 농과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착실히 수업을 듣다가 2학년 때 영문과 수업을 듣게 되고 거기서 만난 아처 슬론 교수에 의해 영문학 공부를 지속하게 되며 종국에는 젊은 나이에 교수 자리를 얻게 된다. 

대학시절 친구라고 부를 만한 데이비드와 고든이라는 동료가 있었지만 데이비드는 유럽에서 벌어진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하여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는다. 그래도 고든은 같은 학교에서 학장으로 근무하게 되고 거의 유일하게 스토너를 이해해 주는 사람으로 남는다. 스토너는 젊은 시절 만난 이디스와 결혼에 골인하지만 첫날밤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그녀와의 관계는 평생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딸 그레이스가 태어나지만 아이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아주 어렸을 때뿐이었다. 아이가 커 가면서 엄마인 이디스가 딸과 아빠인 스토너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스토너는 중년이 되어서야 제자인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면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 마음을 부정하려 하지만 그 둘의 관계는 불륜으로 이어진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기에 캐서린이 그를 떠나고 나중에 그녀는 작가가 된다.

스토너는 교수로서 크게 성공하지도 크게 실패하지도 않았지만 중간에 워커라는 돌아이 같은 학생의 등장과 이상하게 그를 두둔하는 학장 로맥스에 의해 이미지에 크게 타격을 입고 하마터면 대학에서도 쫓겨날 뻔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학생들과 교직원들로부터 이상한 시선을 받고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된다.

말년이 되어 은퇴할 시기가 되었다. 딸 그레이스는 엄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고를 쳐서 또래보다 일찍 결혼했지만 불행하다. 부인인 이디스는 여전히 신경질적이고 무관심하다. 은퇴를 앞두고 스토너는 결국 쓰러졌고 어둡고 조용한 집 안에 누워 그동안의 삶을 떠올려보며 죽음을 맞이한다. 


     줄거리만 보면 그냥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스토너라는 인물에게 일어난 일들이 잔잔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고 흡입력이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 나의 삶의 페이지에서 있었던 (본인 한정) 여러 일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꾸 읽어보라고 추천해보고 싶어지는 소설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 때문일까? 요즘 계속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직을 하겠답시고 마음만 먹고 있다가 그것에 대한 첫 신호탄으로 증명사진을 찍었던 게 2021년 4월의 일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2023년으로 해가 바뀌었으므로 이제 작년도 아니고 재작년의 일이며 1년도 아니고 무려 2년 전의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아무런 시도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2021년에 책과 사서에 대한 관심으로 평생교육원 문헌정보학과에 지원했다. 하지만 이곳은 대학교 학점 때문에 탈락했고 학점 상 앞으로 또 지원해도 떨어질 일만 남아서 더 이상 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그 해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NCS를 조금 공부하고 공공기관에 필기시험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확실한 목표와 의지가 없으니 잘 되지 않았다.


     2021년 봄, 이직 준비를 위한 증명사진 찍으면서 다진 결의는 다음과 같았다 : 빠르면 2021년 올해 아니면 늦어도 내년(2022)에는 여길 탈출 해야지. 그런데 결과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보다  많은 직원들이 심지어 나보다 오래 다닐 것 같았던 사람들이 죄 이직하면서 퇴사를 했다는 것이다. 나만 이게 뭐야.


     스스로 정했던 기한, 그것도 최대로 정했던 2022 말이 이미 와버렸다. 아마 다른 글에도  예정이지만 나는 내가 정한 것은 대체적으로(?) 이루는 편이고-물론 그래서 이룰  있는  같은 것만 목록에 적는다는 단점이 지만-기한을 여유롭게 잡아서라도 결국 내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았다.


     이미 스스로 정한 기한은 만료됐기에 나에 6개월을 주기로 다. 정말 내년만큼은...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 여기서 일하고 있으면 계속 바닥을 드러내는 느낌이다. 남들이 보기엔 가만히 회사 잘 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몰라도 나는 회사와 유리되어 있는 느낌이다. 육신이 여기 앉아있을지 언정 영혼은 바깥을 떠도는 느낌.


     그럼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아무리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사실 명확하게 떠오르는 건 내가 책이나 도서관을 좋아한다는 것과 그것과 관련된 일이라면 뭔가 잘 해낼 거 같다는 느낌 정도뿐이다. 


      출판편집자가 생각나서 검색해 봤는데 근무 환경이 꽤 열악하다. 일은 많이 하는데 돈은 조금 받는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고생하고 나면 나중에 프리랜서로 독립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을 검색하다 출판편집자로 일했던 분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그분은 원래 출판편집자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대만에 살고 있으면서 대만에서 한국어도 가르치고 번역 일감도 받아서 번역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분 같은 생활을 꿈꾸는 거면 좀 고생하더라도 출판편집자의 길도 괜찮아 보인다.


     출판편집자는 1인 다역을 맡아 여러 가지 일에 만능해야 한다(고 한다). 재밌을 것 같으면서도 과연 내가 1인 다역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심이 든다. 읽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 결국 책 상품인지라 내가 좋아하는 마음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팔릴 만한 포인트를 잘 짚어줘야 한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꼭 그것의 소구 포인트를 알고 홍보를 잘할 수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리고 출판 쪽이 사양산업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서울출판예비학교나 한겨레 출판학교에라도 다녀보면서 업무를 간접경험 해볼까 했는데...


     그러다 갑자기 얼마 전 읽은 소설 <스토너>처럼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갔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경영학부 소속 경영학과 학생이었다. 하지만 대학교 입학 원서를 낼 때 영문과에 지원할 정도로 영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문과에서 일반 어문계열보다는 경영학 전공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부모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경영학 전공으로 입학했다. 


     대학교에는 복수전공이나 부전공 제도가 있어 본인이 입학한 학과 외에 다른 학문의 공부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개인적인 관심사가 있는 영문과를 부전공하기 위해 2학년 때부터 하나둘 영문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특히 대학교 3학년 때는 영문과 수업을 본 전공인 경영학과 수업과 비슷한 비율로 많이 들었다.


     대학교 3학년이던 시절, 영문과의 박익두 교수님 수업을 1,2학기 연달아서 들었다. 경영학과에 수업을 들으러 오는 타과생은 워낙 많기 때문에 전혀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영문과 수업에도 타과생이 들어오긴 하는데 주로 1학년 수업이나 수업명이 특이한 수업에 뭣도 모르고 수강신청을 해서 들어오곤 했다.


     즉 2,3,4학년 용으로 개설된, 진지한 강의명을 가진 영문과 전공수업에서 타과생은 발견하기 어려운 존재였다는 말과 같다. 나는 경영학과 학생으로서 부전공을 위해 영문과 전공수업을 들락날락했다. 의무감으로 공부하는 경영학과 수업보다 개인적인 관심에 의해 시간을 내서 영문과 수업을 들어서 그런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능한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영문과 3, 4학년 전공수업에 타과생 한 명이 그것도 매번 앞자리에 앉아있는 데다 지난 학기에 이어 연속적으로 다음 학기에도 본인의 수업을 들으니 노교수님은 신기하셨던 모양이다. 나랑 개인적으로 전혀 대화를 나눈 적 없던 그 교수님이 어느 날 다음과 같이 한마디를 건네셨다.



학생,
  전공을 잘못 선택한 거 아니야?



    그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던 나는 일기장이나 어딘가에 그날의 기억을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말을 들었던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아니에요'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아니에요’라고 해놓고 속으로 할 말이 많았지만
이 많은 속사정을 다 말할 수 없어서 그냥 그렇게 말했던가. 

아니면,

‘아니에요’라고 부정을 해야 
내가 경영학과를 전공으로 한 선택 즉 이 선택을 한 나를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던가.



     여기서 만약에 ‘맞아요, 저 전공을 잘못 선택한 거 같아요’라고 말한다면 그 뒤의 후폭풍은 누가, 어떻게 감당할까? 그렇다고 전과를 할 거야, 어쩔 거야. 물론 영문학을 메인으로 전공하고 남들처럼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했다면 애초에 취업할 때 선택지가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경영학 전공에 영문학 부전공이었으니까 학교를 졸업하면서 일자리를 고민할 때 수많은 선택지 중 당장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회계를 선택했다. 만약 영문학 전공에 경영학을 부전공했다면 회계 쪽으로 지원해도 서류 통과가 잘 안 됐을 것 같다. 타과 전공하면서 경영학을 복수 전공한 수많은 지원자들과 너무 비슷한 데다 애초에 이미 전공자들이 넘쳐나니까. 그렇다고 책과 관련 있는 업종인 출판사, 서점 등에 입사했다면? 어문계열 전공을 살릴 만한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교수님의  말이 복선이 되어버려서 나는 이 복선을 회수하기 위해 사회생활이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는 걸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내 친동생은 현재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신분이 불안정하고 일하는 사무실 환경이 좋진 않지만 본인이 하고 있는 '일' 자체는 굉장히 만족한다고 했다. 그래서  고생을 하면서도 버틸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반대의 상황에 놓여있다. 일하는 환경이나 급여 수준은 나쁘지 않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흥미를 갖고 주도적으로 해 낼 내 일을 찾고 있는 것이다. 동생처럼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다면 힘들어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아직도 ‘그걸’ 못 찾았다는 거지. 그래서 괴롭다.



만약 내 삶을
   소설 <스토너>와 같은 형태로 쓴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담기게 될까?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복도를 지나가다
저쪽 교실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바이올린 하는 애들이 너무 멋져 보여서 엄마를 졸라서 
그다음 해인 초등학교 6학년 1년간 정말 열심히 바이올린을 켰던 것.

그다음으로는 중학교 2학년 때 한 달여간 왕따 아닌 왕따를 당했던 이야기가 꽤 큰 분량을 차지할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급 우울감에 빠졌을 때...
그 당시엔 놀토가 없었기에 토요일에도 수업을 했다. 
토요일 오전수업을 마치고 반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텅 빈 교실에서 
지금도 베스트프렌드인 SH와 교실 한편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할 테고...

... (중략)

그리고 대학교 교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 이야기와
취준시절의 우울한 이야기와
잘 적응하지 못했던 사회초년생 시절의 이야기와
첫 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스스로 갭이어를 선언하고 놀았던 9개월간의 이야기
30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진 친구들과 서서히 멀어지고
그리고 또 다른 이직을 준비하고...



     일단 지금까지 나온 줄거리는 여기까지다.

     이제  앞으로의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는 작가인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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