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자이언트펭 TV> EP.169 졸업식 에피소드를 보며 울었다
(해당 방송분은 2021년 1월분으로, 그 당시 시점에서 쓰인 글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tJKouGkXqM
매주 금요일 8시, 남극에서 온 대스타 펭귄 펭수가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펭 TV> 에는 그 주의 영상이 올라온다. 대 코로나 시대를 맞아 사람들을 직접 만나기 어려우니 온라인을 통해 만나는 에피소드였다.
먼저 펭귄이라는 정체성에 맞게 대학교 수의학과의 온라인 강의에 난입해서는 수업 듣는 척(?)하며 학생들과 대화하고 교수님을 놀리는 등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다음으로는 회사의 사내 회의에 들어가서 벌인 난상토론은 보면서 깔깔 웃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인 첫 방송을 함께한 일산초등학교 5학년 1반 친구들과 근원이가 나왔을 때 그리고 담임선생님과 몇 명의 친구들이 더 나오고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 흘러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이 에피소드의 제목이 '이 노래에 눈물나면 할미할비 인증'이라는데 그야말로 인증을 제대로 해버린 거다.
첫 방송이 2021년 기준 2년 전으로, 벌써 그 친구들이 졸업할 때가 되었다. 그때 같이 촬영한 친구들이 4학년이거나 6학년이었다면 아직도 초등학생이거나 이미 졸업을 했을 텐데 5학년으로부터 딱 2년이 흐른 시점에 다시 만났기 때문에 바로 그 친구들이 졸업할 시점이 된 거다.
첫 방송 당시 듣보잡이었던 펭수는 이육대(EBS 아이돌 육상대회)를 통해 서서히 알려지면서 일약 국민대스타가 되었고 6학년 아이들은 한 번뿐인 초등학교 졸업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라는 새로운 세계, 더 어려워 보이는 세계, 좀 더 어른의 세계로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곳으로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초등학교의 졸업식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생각이 났다. 내가 입학할 땐 국민학교였지만 학교를 다니는 중간에 명칭이 바뀌어서 초등학교로 졸업한 세대 중 한 명이다. 중학교에 가면 수학이 많이 어려워진다고 해서 친가의 친척 언니에게 과외를 받게 되었다. 우리 집은 외가랑은 교류가 잦았지만 외갓집에는 다 내 또래 아이들 밖에 없었다. 반면에 친가랑은 교류가 별로 없었지만 우리 아빠가 막내였던지라 사촌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데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사촌들이 몇 명 있었다.
우리 엄마 입장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과외를 부탁하는 것보다 아는 사람에게 부탁도 하고 동시에 그 고모네 집이 좀 어렵게 살았던지라 사촌언니의 용돈도 줄 겸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과외 선생님으로 그 언니를 고른 거 같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보고 평소엔 거의 보지도, 만나지도 않았던 친가의 친척언니에게 과외를 받게 된 것이다.
6학년 겨울방학에서 중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는 약 두어 달의 겨울방학 동안 과외를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집과 고모네와의 관계가 특별히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 친척언니 덕분에 중학교의 첫 수학시간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중학교는 다른 초등학교에서 배정받아 온 친구들도 있었고 초등학교에 비해 배우는 과목이 늘어났으며 수업시간도 7교시까지 있어서 초등학교 때보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더 늦었다. 중학교 가서 느낀 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 길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열어볼 수 없는 플로피디스켓에 그 당시에 썼던 일기가 있을 텐데... 어디다 뒀더라? 책상 서랍을 뒤져보니 나왔다.
펭수와 하루동안 수업을 함께 한 일산초등학교 5학년 1반 아이들에게도 그런 세계가 펼쳐지겠지. 중학교는 초등학교와는 달리 학교 안에 매점이 있어서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 간식을 먹기 위해 전교생이 몰리는지라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보통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사춘기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확실히 학급 내의 분위기도 초등학교 때와는 달랐다. 남자아이들끼리는 그들만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고 여자아이들의 경우 두루두루 반 아이들과 어울렸던 초등학생 때와 달리 무리가 갈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중학교 1학년 때는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교에서 올라온 때를 벗지 못하고 순수한 편이었고 나는 반에서 아주 친하게 지내던, 영혼을 나누던 단짝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나보다 더 성숙하고 생각이 어른스러운 친구여서 평생의 친구로 생각했는데 1학년을 마치고 가정 사정 상 홀랑 전학을 가버렸다. 일이 안 풀려서 이사를 간 게 아니라 집안이 잘 되려고 이사를 간 거긴 했지만 평생 갈 뻔한 친구를 잃어버린 나는 쓸쓸해졌다. 아마 그 애가 전학을 가지 않았더라면 나와는 꽤 오랫동안 친한 친구로 지낼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을 맞이했다. 다행히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한 명과 같은 반이 되었지만 나는 새롭게 맞이한 중학교 2학년 교실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겉돌았다. 특히 1학년 때 같은 반이어서 친했다고 생각했던 그 친구의 주도 하에 같이 놀던 친구들 사이에서 은따를 당해 한 달여의 시간을 교실에서 혼자 끙끙댔다.
혼자 지낸 기간이 고작 한 달이었는데도 교실 안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나날이었다. 한 달이 다 되어가던 오월의 어느 날, 주동자였던 애가 오히려 다른 애들에게 밉보여서 친구들이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와 무리를 형성했다. 그 이후로 나머지 2학년의 시간은 그 친구들과 교환일기도 쓰고 같이 연예인도 좋아하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노래방도 가고 탁구도 치면서 즐겁게 보냈다. 아마 일산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그런 세계가 펼쳐질 것을 알기에 과거의 그 노래에다 내 경험을 더해 눈물이 났을지 모를 일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다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넘어가는 것. 이런 식으로 한 곳을 졸업하고 상위 학교로 넘어갈 때마다 느끼는 변화가 다르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갈 때가 교과목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시기적으로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게 공부도, 교우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앨범을 정리하기 위해 옛날 사진을 다 꺼내놓고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다가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봤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추억도 없지만 6학년 담임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졸업식날 같이 사진을 찍었던 담임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리고 반에서 특별히 친한 애들이 없어 반 친구들과 찍은 사진은 없었고 그나마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두 명과 아마도 엄마의 부추김으로 운동장과 교문 앞에서 반 억지로 찍은 사진도 보인다.
나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3학년 때 전학을 왔고 그로부터 그 동네에서 장장 25년을 살면서 지하철역 바로 옆에 있는 그 학교를 수없이 지나다녔다. 아무리 내가 졸업한 학교라지만 지하철 타러 지나다니면서 맨날 보는 곳이니까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만 생각해 보니 지금은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어도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내서 옛 동네를 찾아가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 학교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펭수가 015B(공일오비)의 <이젠 안녕>을 불러줬는데 공일오비 이름은 들어봤지만 노래는 잘 몰랐고 이 노래도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다. 하지만 가사가 지금의 상황과 너무 딱 맞아떨어져서 다시 눈물이 났다. 정작 졸업하는 당사자인 아이들은 노래를 듣고도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이 노래에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 자이언트펭 TV는 역시 나 같은 어른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도 이 노래를 들었다면 백 퍼센트 울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또 모르지.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의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나를 상상했을 때의 이야기니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하지만 반드시 어느 단계에서는 '그것'을 넘어서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성장소설로 유명한 고전소설 <데미안>의 그 유명한 문구를 30대가 한참 지나고 난 지금에서야 나는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 중
졸업식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는 행위다.
우리는 태어난 자가 되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모든 분의 졸업을 축하하며
새로운 날들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