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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Feb 04. 2023

지도를 좋아하던 소녀는 커서 무엇이 되었을까?

보편적이지 않은 내 인생의 지도 그려나가기

     돌이켜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도 보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땐 사회 교과서와 함께 ‘사회과부도’라는 책이 있었다. 사회 교과서의 부록 같은 느낌인데 사회 과목에 관련된 보충자료와 지도가 실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서울 근교인 광명시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서울로 이사를 왔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자주 가지 않는 편이기도 했고 서울은 서울 자체에서 거의 모든 것들이 해결되니 여행이 아니고서야 다른 지역을 방문할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사회과부도의 지도를 보면 가보지 못한 곳들을 가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방구석에서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었다.                                                                         


     사회과부도에는 지도뿐만이 아니라 각 지역의 특징이나 특산품에 관한 설명도 있었기 때문에 그걸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공부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충청북도는 유일하게 바다와 면하지 않는 내륙지방이며 지리산은 3개도에 걸쳐있고 울산은 특별시이고 부산 위에 위치한다는 등 우리나라의 지명과 위치와 그들의 관계를 익히게 되었다. 


     어느 날, 아빠가 커다란 두루마리를 들고 퇴근하셨다. 풀어보니 하나는 세계전도였고, 하나는 국내전도였다. 사실 내가 지도 보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있는지를 알고 사 오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빠는 본래 본인이 좋아하는 물건을 자녀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 오는 편이다. 그 말인즉슨 아빠가 지도 모으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아무리 봐도 그 마음을 담아 사 오신 듯했다.                                                     


     하지만 아빠를 닮은 나도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지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신기했다. 나는 그 뜻밖의 선물이 마음에 들었다. 사회과부도는 A4용지 크기의 교과서였으니까 전도의 경우는 크기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고, 크게 보자면 전체가 아닌 부분만 보여서 아쉬웠는데 전도는 한눈에 들어와서 좋았다. 

             

     게다가 아빠가 국내전도뿐만 아니라 기존에 보지 못했던 세계전도까지 사다 주셨다. 나는 이제 국내를 벗어나 세계지도를 보기 시작했다. 그곳엔 많은 나라와 도시들이 있었고 그중에 나는 사회과부도에 나온 세계 각 나라의 수도 목록과 지도를 대조하며 보기 시작했다. 


     그때는 감히 해외여행을 하겠다는 생각도, 내가 이렇게 해외여행을 자주 다닐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심심할 때 벽에 붙여놓은 지도를 보고 ‘이런 나라도 있구나’, ‘이 나라와 저 나라는 국경이 붙어있구나’, ‘이름이 정말 특이하네’ 등의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이 두 개의 지도가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엄마가 지도를 버리라고 했고 집안 내 권력자인 엄마의 말을 따라 지도를 버리고 말아서 현재는 갖고 있지 않다. 사진이라도 남겨둘걸.


     지도는 좋아하지만 방향치인 아빠와 달리 나는 지도도 좋아하고 길도 잘 찾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일상생활에서 별 무리 없이 길을 잘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매일 다니는 학교나 직장이 아닌 새로운 곳을 방문할 때엔 꼭 미리 길을 봐둔다. 이제는 옛날과 달리 종이 지도와 사회과부도가 아닌 인터넷 지도 어플을 활용한다.          


     스마트폰으로 바꾼 뒤에는 지도 어플을 아주 잘 쓰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당연하게 여행지에서도 길을 잘 찾을 것이라 장담했다. 국내여행은 물론이고 특히 해외여행을 위한 사전 조사는 꼼꼼히 했고 가이드북의 지도를 보며 거리와 위치를 확인하는 등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여행지에선 생각했던 것보다 의외로 또 자주 길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마도 해외는 좌/우측통행도, 언어도, 건물도, 구획도 모두 서울과는 다른 데다 여행 중에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변수라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낯선 길 한가운데서 답답하고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가이드북의 지도와 내가 여태까지 걸어온 건물들을 떠올리며 온 신경을 집중했고 무사히 길을 찾아 나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다. 


     길을 헤매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가장 효율적인 루트가 정해져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헤매면서 결국 도착한 곳은 더욱 아름다웠으며, 도중에 헤매다 들어선 정말로 낯선 길 끝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그 길들은 아마 다시는 갈 수 없는 길일 것이다. 여행에서는 그런 순간조차 소중하게 느낀다. 지금 나의 상태를 여행지에서 길 찾기에 비유하자면 나는 나의 삶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헤매는 중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전혀 효율적이지 못한 일을 몇 년째 지속하고 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어떤 길로 삶의 방향을 바꿀 것인가 고민하면서 여러 책을 읽고 업무와 상관없는 자격증 공부를 하는 삶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시험에 들게 했고,
이렇게 길을 헤매면서도
결국 어딘가에는 도착할 것이다. 



     일상이라는 익숙한 생활을 탈피해 예측 불가능하고 가망 없는 여행길에 올라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보편적이지 않은 나만의 지도를 그려나가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작든 크든 울퉁불퉁하든 세모든 직선이든 간에 나만의 삶의 지도 한 부분이 그렇게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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