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니seny Dec 17. 2022

여름날이 시작되었고 테니스를 그만두었다

여름밤과 야외 테니스장의 풍경

     나는 코로나 덕분에(?) 등산과 테니스에 발을 들인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가만 보니 등산에 관해서는 몇 차례 글을 남긴 적이 있었지만 테니스에 관해선 여태 글을 남긴 적이 없었다. 등산도 그렇고 테니스도 코로나 때문에 내가 평소에 하던 수영을 할 수 없어서 선택한 운동이기에 코로나가 끝나면 자연스레 그만둘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컴컴한 터널에 진입해서 주욱 달려 반대편 출구에 다가갈수록 저 앞쪽에서 빛이 한줄기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코로나라고 이름 붙여진, 이 어둡고 긴 터널을 3년간 지나 마침내 저 앞에 출구의 빛이 보이는 듯한 지금까지도 두 운동 모두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운동 자체는 몸만 있으면 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레슨을 받고 용품도 구입해야 한다. 나는 두 운동 모두 용품 구입에 돈을 썼다. 가장 큰 결심이었던 등산화를 샀고(한번 사면 10년은 신는다니까), 작으면서도 기능에 충실한 등산용 백팩도 샀으며 그 외 자잘하게 등산 양말, 여름에 입을 얇은 기능성 티셔츠와 바람막이 점퍼도 구입했다. 다행히 등산스틱이나 장갑 등 그 외 필요한 것들은 전부 집에 있어서 사지 않았다.


     테니스의 경우, 처음엔 테니스장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라켓을 사용하다가 3개월 정도 지나고 테니스 라켓을 구입했고 그다음으로는 테니스화를 그리고 테니스 칠 때 입을 반팔 운동복과 하얀색 테니스 스커트를, 또 내가 다니는 테니스장이 야외에 있는 관계로 겨울에 운동할 때 입을 점퍼와 운동복도 구입했다.


      운동 모두 비슷하게 용품 구입을 했고 레슨비도 냈고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사실 테니스보다는 등산에  애정이 간다. 테니스에는 아직까지도 정이  붙었는데 그건  실력이 형편없어서 재미가 없기 때문인 듯하다.


     등산은 실력이랄  없다. 페이스 조절하면서  올라가고, 내려오면 된다. 그런데 테니스는 그렇지 않다. 자세를  잡아야 하고 그에 맞게 라켓을 휘두르며 공을 맞춰야 한다. 테니스공이 라켓의 정중앙에  맞으면 ‘하고 맑은 소리가 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만 대부분은 약하게 맞거나 라켓 테두리에 맞아 ‘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곤 한다.


     테니스 레슨을 시작한 지는 무려 일 년반이 넘었는데(물론 그동안 발가락 부러져서 쉬기도 하고 야근하느라 많이 빠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포핸드와 백핸드를 겨우겨우 쳐내고 있다. 난 기본적으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가 부족해서 공을 세게 쳐내지 못하고 있다. 모든 운동은 어느 정도의 순간적인 파워를 전제로 하는데 일단 공이 잘 안 맞으니 재미가 없고 그러니 자연스레 관심이 멀어진다.


     그래서 앞으로도 테니스를 할지 말지 계속 고민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포기하면 그동안 낸 레슨비와 용품 구입하느라 쓴 돈이 모두 매몰비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왠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쉽게 그만두지 못하겠다. 게다가 산까지 이동해야 하는 등산과 달리 테니스장은 본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운동하러 멀리 이동해야 한다는 심리적 저항감이 덜한 점도 매력적이었다.


      지금까지의 패턴을 보면 나는 혼자 하는 운동을 선호하는 거 같다. 같이 하는 운동도 재미있는데 문제는 짝이나 무리를 지어야 가능한 운동의 경우, 적당한 상대를 만나 같이 즐겁게 운동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나마 테니스는 같이 레슨 받는 엄마와 운동 메이트가 되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지만 나보다 엄마가 애매하게 잘하는, 둘 다 고만고만한 수준으로 어설픈 사람들 둘이 같이 치고 있는 정도다.


     나는 그동안 자전거, 수영, 발레, 요가  혼자 하는 운동을 주로 좋아했고 해왔다. 테니스도, 골프도, 당구도  재밌어 보이고 시작하려면 시작은 얼마든지   있을 듯하다. 하지만 게임을 한다던지  깊숙이 발을 들이게 되면 결국 혼자 하기 어려운 운동인지라 처음에 진입할 때의 심리적 장벽이 크다. 결국 이것도 사람들하고 어울리는어려움을 겪는  성격을 대변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어느새 여름 초입에 들어섰고 장마철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낮에 비가 한창 쏟아지다가 저녁이 되자 그쳤기에 레슨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여전히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회사 캔틴에는 창문이 있다. 나는 졸릴 때마다 캔틴에 가서  안으로 얼음을 굴리면서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보곤 한다. 나는 지금까지 창문 프레임을 액자 삼아서 바깥의 다양한 풍경을 봐왔다. 날이 맑은 날에 흰구름이 움직이는 것도 봤고 오늘같이 흐린 날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서 움직이는 것도 봤다.


     그런데 특히 오늘처럼 이렇게 흐린 날의 구름이 평상시 맑은 날 구름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빠르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학적으로 먹구름은 흰구름보다 움직이는 속도가 빠른 걸까? 아님 흰구름은 하늘이랑 색깔이 비슷해서 움직이는 게 눈에 잘 안 띄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먹구름은 흰구름보다 더 고도가 낮게 형성되어있어서 움직이는 게 잘 보여서 그런 걸까?


     테니스 코치 선생님은 항상 블루투스 스피커로 크게 노래를 틀어놓는다. 나보단 나이가 많고 우리 엄마보단 나이가 어린 코치 선생님은 아마 우리 막내 외삼촌뻘쯤 될까. 선생님은 자신이 젊은 시절을 보낸 90년대 노래들을 주로 틀어놓는다. 요즘 예능을 보면 90년대 혹은 2000년대를 회상하는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시대에 스타였던 사람들이나 당시 유행했던 패션이나 노래가 방송의 소재로 많이 사용된다는 거다.


     이러한 현상의 이유는 그 당시 문화를 향유했던 30, 40대가 지금 사회생활의 정점을 찍고 있어서 즉 현재 방송국에서 활발하게 작품을 만드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곧 그런 시절도 지나가겠지? 몇십 년 뒤에 내가 보는 KBS 가요무대에는 그때도 지금과 같은 패티김, 이미자 등 원로 선배 가수의 노래가 나올까? 아님 그 당시 기준으로는 지금이 꽤 흘러간 과거일 테니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나오려나? 가요무대 느낌에 맞게 편곡되어 방탄소년단이 노래를 부르는 상상을 하니 좀 웃겼다.


     밤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들은 마치 이국적인 휴양지 리조트의 밤을 연상시켰다. 코치 선생님이 틀어놓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이소라의 <청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사를 들으며 나에게 남편  사람이 있다면 불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제 전화영어 수업시간엔 거짓말을 살짝 했다. 수업 도중에 선생님이 이성에게 'ask out' 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어디까지나 수업의 일환으로 묻는 질문이기에 없다고 하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니까 수업을 위해 '있다'라고 했다. 나는 외국어 회화 수업을 할 때 학습을 위해 살짝의 거짓말을 하는 것은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용하고 있다.


     한국에선 이성한테 영화 보러 가자고 하는 게 데이트하자는 거라고, 그래서 영화 보러 가자고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 말을 문자로 했는지 전화로 했는지까지 꼼꼼하게도 물어본다. 문자로 했다고 하니 또 다른 'ask out' 해 본 건 없녜. 없어, 없다고. 방금 이것도 구라 친 건데. 데이트한 지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이어서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코나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길다> 흘러나왔는데 앞서 들었던 이소라의 <청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당시의 가수들  룰라나 투투의 노래도 좋아하지만 지금만큼은 신나는 룰라나 투투의 노래가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코나의 노래는  여름밤의 풍경과도  어우러지는 노래였다. 언젠가 열대의 풍경을 간직한 동남아의  한가운데서  노래를 들어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일 년 열두 달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유월이 끝나가고, 본격적인 여름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니스 레슨은 잠정적으로 그만 두기로 했다. 즉흥적인 결정은 아니었지만 7 내내 비도 왔고 마침 최근에 레슨비도 올라서 살짝 부담이 되기도 했었다. 대신 엄마랑 가끔 배드민턴을 치기로 했는데 테니스를 배워서 그런지 괜히  쳐지는 느낌이 든다. 비싼 레슨비 내고 얻은  이건가? 아마 지금은 모를거다. 이 경험이 언제 어디서 미래의 나와 만나게 될지.


매거진의 이전글 생일날, 처음으로 휴가를 내보다 (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