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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ul 29. 2023

혼잣말하며 울고 <홍김동전>을 보며 울다

혼자를 위로하는 법

     째깍째깍.

     퇴근을 10분 앞둔 시각.


     나랑 동갑이면서 연차도 비슷한 동료 직원이 잠깐 이야기 좀 하잔다. 5분이면 된단다. 과연 이 이야기가 5분 안에 끝날까? 싶었지만 뭐라 둘러대기도 애매해서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회의실에 들어갔다.






     동료는 그동안 나에게 뭔가  말이 있어서 마음속으로 준비를    같았다. 나는 그녀와 사적인 친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같이 일해온 세월이 7년이나 되기에 어떤 일이 발생했을  그녀의 마음속 프로세스와 그에 르는 행동패턴을  알고 있다. 그녀는 그동안 나한테 스트레스를 드러내진 않았겠지만 분명  오랜 시간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녀는 사내연애를 해서 결혼했는데 지금은 남편이 직장을 옮겼다. 하지만 남편도 우리 회사에서 나랑 같이 근무한 적이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있으므로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이런 얘기 저런 얘길 했겠지. 그렇게 기나긴 고민의 시간을 거쳐 '5분이면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자고 나를 불러낸 것일 거다.


       튀기는 갈등이 있었던  아니었다. 하지만   동안 속에 뭔가가 쌓였던 동료는 일방적으로 자기 말을 다다다다 쏟아내기 시작했다. 반면 이런 상황을 대비하지 못한 나는 아무것도 준비한  없어 그냥 즉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질문에 대한 답을 했지만 우리 둘의 대화는 결론에 다다르지 못했다.


     5분이면 된다고 했는데 가만 보니 시간이  흘렀단 느낌이 들었다. 내일 얘기해도 되는 건데 하필이면 나의 퇴근시간을 얼마 남겨두지도 않았는데 얘기하자고   뭐람. 그녀가 처음에 말했던 5분은 이미 진작에 지난  같아서 시계를 봤더니 10분을 훨씬 지나 있었다. ,  퇴근시간이 10분도 넘게 지난 것이다.


     우리 회사는 시차출퇴근제(선택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사무직의 경우 5개의 근무시간대 중 하나를 골라 근무하면 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늦게 출근하는 사람이 이득인 게 보통 여섯 시 정도 되면 사무실에 사람들이 거의 없다. 물론 그래도 일하겠지만 안 해도 아무도 모르잖아? 10시에 출근한 너는 7시에 퇴근할 테니 다섯 시 반이 아직도 한창 일할 시간이고 퇴근시간도 한참 남았지만 난 아니거든? 만약에 너한테 6시 50분에 이야기하자고 해서 7시 넘어서 퇴근하면 좋겠니? 상식적으로 퇴근 시간 10분 전엔 붙잡지 말았어야지. 그 얘기를 꼭 오늘 할 거라고 마음을 먹었다면 좀 더 이른 시간에 했었야지.


     결국 이야기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퇴근을 했다. 게다가 그녀와의 대화 때문에 빡친 상태인데 퇴근 후에 엄마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약속을 취소할 순 없어서 엄마를 만나 같이 쇼핑몰을 구경하고 저녁 먹고 집에 돌아왔다. 난 맨날 점심 먹으러 손쉽게 돌아다니는 곳인데 엄마는 여기에 한 30년 전에 와보고 이제야 온다면서 감격스러워했다. 엄마가 쇼핑몰을 걸으며 본인의 인생 역정 서스펜스 스릴러 대하 서사시를 풀어내기 시작하는 바람에 오늘 퇴근하기 전에 사무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그에 비하면 내 이야기는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였으니까.


      엄마와 헤어져 혼자 사는 집에 돌아온 나는 그제야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짜증 나는 기분. 그래서 미친년 같지만 혼잣말로 화를 풀기 시작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내가 왜 기분이 나빴고 과거에 동료와 나 사이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으며 그게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사실 업무적으로 내가 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지 않은 이유는 과거부터 이어져  그녀와 나의 업무 실타래 사이에 숨어 있었다.


       , 나한테 일이  몰리는 시기가 있었다. 나는 내 일이니까 내가 최대한 하려고 했다. 먼저 도와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내가 너무 짠해 보였는지 위에서 일을  나눠서 하라고  건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둘을 두고 같이 일하던 상사가  일을  나눠서 같이 하자고 했다.


     상사는 이런 경우 항상 본인이 손해를 보고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동료는 이런 말을 듣고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요같은 말조차도.  침묵은  ' 나한테  배정된 일만  거예요. 남의  하기 싫어요'라는 뜻이었다.


     왜 그런지 그 이유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그녀는 내 업무를 하다가 지금 하는 업무로 이동했다. 그러다 보니 무슨 일만 생기면 동료한테 '과거에 네가 그 업무 해봤으니 알지 않아? 좀 도와줘'와 같은 말을 평소에 많이 들었기 때문일 거다. 나도 그런 상황이라면 싫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 이런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내가 오히려 조마조마했다. 그런 건 나라도 싫을 테니까.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혼자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해내는  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리거나    사람만이   있는 일이 아니라 나눠서   있는 일이라면  번쯤 도와준다면  고마워서라도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서로 도울  있지 않을까?


    내가 처음부터 도와달라고  것도 아니고 맨날 일을 못해서 도와달라한 것도 아니고.  명한테 일이 너무 몰릴  약간씩이라도 짐을 들어주는 , 이런  팀워크 아닐까? 처음에  말을 꺼낸 상사는 이도저도 못하고 있었다. 이분도 심성이 착해서 강하게 말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 그럼  일의 원인인(?) 내가 사태를 정리하는 수밖에 없겠군.



   제가 혼자 하겠습니다.
  어차피 각자 해서 주셔도
 제가 편집해야 돼서
 더 복잡해지거든요.



      그렇게 해서 스스로 바쁜 시기를 이겨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그동안 그녀에게 쌓여왔던 것들이 많았다. 자료   알면 내가 보내주는 파일 보고 하면  텐데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도록 자료를 주길 원했다. 무슨 사원응애 애기도 아니고 나랑 직급도 경력도 똑같은데 말이야.


    전에는 이런 걸로 갈등 생기는 게 싫어서 그냥 해주고 말았는데 생각해 보니 짜증나는 거다. 나는 분명  데이터를 맞게 작성했고 가뜩이나 마감이라 바빠 죽겠는데 그녀 때문에 만든 칸에 잘못된 숫자가 들어가 있는 거까지 내가 컨펌을 해야 하나? 그런 얄미운 것들이 하나둘 쌓여가다 보니 내가  일이 분명히 있었지만 방관했다. 그래, 너도   먹어봐라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속사포로 쏟아내고 있자니 어느 순간 가슴속에서부터 울음이 차올랐다. 너무 밝은 곳에서 울고 있는 내가 이상해서 불을 다 꺼버렸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이렇게 울음이 나와도 시원하게 울 수 없었다. 분명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고 당연히 걱정할 테니까.


     그런데 지금은 혼자 사니까 맘껏 울 수 있다. 운다고 해결되는 거 아무것도 없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답답함이나 풀기 위해 막 엉엉 울기나 하자. 그런데 막상 불을 꺼놓고 울 분위기를 조성해 놓았더니 또 눈물이 쏙 들어가네. 결국 눈물 좀 흘리다가 코에 코가 꽉 들어찬 정도에서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서 정신줄부여잡고  하고, 씻고 나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머리를 말리면서 유튜브를 봤는데 며칠 전부터 보고 있는 KBS에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인 <홍김동전> 추천 동영상에 떴다. 숙언니가 나오는 방송인지라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숙언니가 나와도 관심없었다.


     그런데 KBS 유튜브 채널의 거지 같고 이상한 편집에도 불구하고 알고리즘의 장난인지 우연히 뜬 방송들이 다 너무너무 재밌는 거다. 나는 예능 버라이어티나 코미디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예능 프로그램이나 다 좋아하지도 않는다. 프로그램에 대해 궁금해져서 좀 더 찾아보니 시청률이 매우 낮았지만 나처럼 재밌다고 느끼는 소수의 마니아들이 있었다.


     출연자들의 합이 좋은 것 같다. 숙언니 제외하고는 출연진 개개인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홍김동전>을 보고 나서는 나머지 출연진들도 굉장히 친밀하게 느껴지고 개인적인 관심도 갔다. 아무튼 이번 편은 연세대 축제에 간 멤버들이 여러 가지 미션을 수행하는데 그중에 학생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코너가 있었다.



KBS2 <홍김동전> 2022년 10월 9일 방송분.



     댄스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학생과 숙언니가 이상형이라는 남학생에 이어 산부인과 의사인 숙언니의 친언니가 자기가 태어날 때 병원에서 받아줬다고 하는 부산에서 온 학생이 등장했다. 아이고 어리고 너무 귀여워. 그냥 봐도 어리고 젊어.


     소원이 뭐냐고 물으니 참 소박했고 예상치 못한 소원이었다. 숙언니가 안아주면서 다 행복해질 거라고, 잘될 거라고 해달라는 것이었다. <홍김동전>은 매주 방송 테마는 다르지만 이 방송의 기본 모토는 동전을 던져서 앞/뒤가 나오는 것에 따라 미션을 실행하거나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것으로, 그야말로 500원짜리 동전에 운을 맡기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이 소원도 500원짜리 동전을 던져서 학이 그려져 있는 앞면이 나와야만 이뤄줄 수 있었다. 다행히 조세호가 던진 동전이 앞면이 나와서 이 학생은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숙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와서 학생을 안아주며 말해준 문장들이 그 별 것 아닌 것 같은 너무나 평범한 문장들이 내 마음을 후벼 팠다.



세상에 태어나줘서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너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으니까
뭐든지 할 수 있고
너는 앞으로 행복할 일만 남았어.

 

     그러자 숙언니를 껴안으면서 울먹이는 학생처럼 나 또한 갑자기 울음이 속에서 올라왔다. 이거 그냥 예능인데, 나 분명 방금 전까지 깔깔대며 웃고 있었는데 울먹울먹 하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으앙-



     아무래도 아까 제대로 다 울지 못했나 보다. 눈물 버튼을 눌린 것처럼 울음이 터져버렸다. 포옹을 풀고 난 숙언니 코도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 이 신비한 감정은 나만 느낀 건 아닐 것이다.


      이상 젊고, 어리고, 앞날이 창창스무 살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런 절대적인 지지를 듣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괜찮겠지?  부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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