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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ul 09. 2023

애니메이션 <존재의 집>을 보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무너질 때





2022년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중 단편 <존재의 집>, 정유미 감독 편을 보고 남기는 글.






    올해(2022년)는 거의 전면 오프라인영화제였지만 일부 온라인 상영도 남아있었다. 나는 오프라인 현장에도 갔지만 온라인 상영작 중 마음에 드는 것도 몇 개 골라 보기로 했다. 온라인 상영의 좋은 점은 단편들 중에 내가 원하는 것만 골라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편의 경우, 극장에서는 여러 편을 묶여서 한 번에 상영하는데 내가 그중에 두 개만 골라 보고 싶어도 나머지 것들까지 억지로 봐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정유미 감독님 작품은 그동안 자주 영화제에서 만났다. 흑백 애니메이션이 특징인데 색이 넘쳐나는 세상에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이라 그런지 꽤 인상에 남았다. 그래서 이번 작품도 줄거리만 보고는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감독님을 믿고 선택했다.


     저녁 늦은 시간. 밥을 일찍 먹었더니 배가 고프길래 뭘 좀 먹으면서 영화를 볼까 싶었다. 며칠 전 신림동 백순대 밀키트를 사서 조리해 놓고 계속 조금씩 나눠서 먹고 있었는데 그게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그래서 백순대를 데워 쟁반에 받쳐 들고 와서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영화제 온라인 상영을 진행하는 웨이브wavve에 접속해서 나만을 위한 영화 상영을 시작했다.



     화면에 집이 하나 보인다.
  그런데  집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린다.



     나는 빽순대를 빨간 소스에 찍고서는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화면을 보고 있었다. 뭐지? 뭘 말하고자 하는 거지? 집은 계속 부서져 내렸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사람이 없었다. 왜, 그런 말 있잖은가? 집에는 사람이 살아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집이 빨리 무너진다나 뭐라나. 그런 걸 말하고 싶은 걸까? 벽이고 가구고 뭐고 집과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무너져서 사라져 버린다.


     만화 <허니와 클로버>에서 봤던 대사  줄이 떠오른다. 마야마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상대인 리카를 그녀의 고향인 홋카이도에 즉흥적으로 데려간다. 마야마와 리카는 리카가 전에 살았던 () 찾는다. 그곳에서 리카가  남편 하라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홋카이도에 있는 그녀의 집은   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아서 철거를 해야 했는데 하라다가 그곳에 같이 가줘서 고마웠다고.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집마저 무너져서 세상에 없어졌으니 이제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면서. 그리고 그때와 같은 자리,  집터에 미래의 남자 친구가  마야마와 함께 다시 갔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태어나서 아파트에서만 살아왔기에 주택 형태의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떠올랐다. 아빠의 큰형이 살던  나에겐 큰아버지네가 살았던  오래된 집이. 오래전에 지은 집이라고는 들었는데 6.25 시절인지 일제강점기인지 하여간  오래전에 마당에 파둔 땅굴이  안에 었던 신기한 집이었다. 땅굴은  속이라 그런지 여름에  시원했던 기억이 난다.


       집도 이제는 없어진  오래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집이 있던 동네가 개발구역에 들어가게 되면서 집은 헐리고 보상을 받았다.  집은 아빠가 고등학생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나에게는 친할아버지) 남긴 거의 유일한 재산이라고 했다.


     엄마 말로는 원래 아빠네 집이 기와로  부잣집이었다는데, 할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기와집을 날리고  집으로 들어간 것이라 했다. 보상금으로 8천만 원이 나와서 아빠를 포함한 여섯 형제가 1천만 원씩 갖고 살아계신 친할머니에게 2천만 원을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형제 중 집안 형편이 어려운 고모 한 분이 자기가 앞으로는 어머니(나에게는 친할머니)를 모시겠다면서 대신 다른 형제들한테 돈을 좀 달라고 했다. 아빠의 형인 작은 아버지가 돈을 건네었기에 아빠는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형도 그렇게 하니까 돌아가신 아버지에게서 받았을 유일한 유산인 그 돈을 고모에게 주었다. 그 자리엔 엄마가 없었는데 엄마에게 의논도 하지 않고서 그냥 고모에게 줘버린 것이다.


     알고 보니 작은 아버지는 고모한테 빚을   있어서 어차피 갚아야 돈이 있어서 준거라고 했다. 그렇게 아빠는 고등학생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재산이었던 집에서 나온 유산   받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결론 또한  뻔하. 요즘 딸이 대세네, 딸이 있어야 합네 하지만 딸이라고 해서  부모한테 잘하는 것도 아니다. 고모는 여태까지 그래왔듯 돈만  챙겨가고 결국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내가 7,8살 즈음 재건축이 확정된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기억도 난다. 그곳은 5층짜리 아파트 건물이 오밀조밀하게 늘어서있던 아파트 단지였는데 재건축이 확정되면서 하나둘씩 이사를 갔다. 우리 집은  단지에서 전세로  번을 옮겨 다니면서 살았는데 재건축 기한이 다가올수록 동네는 폐허가 되어갔다.


     그동안은 아파트 단지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아무리 콘크리트로 지어진 곳이었어도 따뜻함이 있었다. 그런데 재건축 기한이 다가오자 유리가 깨져있는 집들이 허다하고 사람들도 다니지 않아 동네는 삭막하고 무서운 분위기를 풍겼다. 어렸을 때였지만 이상하게 그때의 세기말 같았던 느낌이 기억난다. 얼마 뒤 우리 집도 다른 곳을 구해 이사를 했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 어른이 되고 나서 내가 살았던  동네에 가본 적이 있었다. 이번엔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서.  자리엔 뭐가 있었고 저쪽은 네가 다녔던 초등학교라는  엄마한테 여러 가지를 전해 들었다.


     옛날에 내가 살았던 아파트 자리에는 아주 아주 높은 건물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있었다.  아파트가 들어선 것도 벌써 20년이 넘었으니까 재건축한  자체도 오래전 이야기다. 그래서 동네엔 옛것을 추억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세월이 흘러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거리에 있던  재래시장과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정도밖에 없었다.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집을 보며 그때 부서졌을 내가 살았던 아파트가 떠올랐다. 애니메이션에선 굉장히 낭만적이게 집이 하나씩, 천천히 무너져 내렸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았을 거다. 폭탄을 설치해 폭삭 가라앉거나 포크레인 같은 걸로 마구잡이로 때려 부쉈겠지.


     거실이, 방이, 부엌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뒤편에 있던 욕실이 나타난다. 거의 다 부서진 이 집에서 이제 남아있는 욕실만이 유일하게 부서질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렇게 집이 다 무너지면 그걸로 끝인 건가?


     난 여전히 빽순대를 소스에 찍어 먹으며 조금은 덜 집중한 채로 화면을 봤다 접시를 봤다 하고 있었다. 그때 욕실벽이 보이기 시작했고 욕조엔 커튼이 쳐져 있었다. 엥, 설마 욕조에 사람이 있으려나? 그런데 서서히 다른 것들이 무너져내리는 가운데, 정말로 욕조에 사람이 앉아있다. 그것도 매우 지쳐 보이는 사람 한 명이.


     하지만 그녀의 안식처였던 그 작은 욕조마저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물이 흘렀고 그것도 다 없어지고 그녀밖에 남지 않는다.


     나는 욕조가 나타난 순간부터 빽순대가 담긴 쟁반을 옆으로 밀어 두고 화면을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제발 저 욕조만은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결국 다른 것들과 똑같이 무너졌고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일어나서 화면 밖으로 나갔다.


     누군가는 영화나 드라마가 현실과 너무 똑같으면 잔인하니까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가 판타지를 그리고 있는 거라고 했었다. 현실도 팍팍한데 잠시 숨 좀 돌리려고 본 영화에서마저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면 괴로울 테니까. 하지만 어떨 때는 너무 행복하기만 한 엔딩이거나 현실에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터무니없는 엔딩이라면 그걸 보고 오히려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면서 무너지기도 한다.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결국 세상의 어려움으로부터 나를 지키려고 했던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게 아닐까. 집이 무너진다는 것, 이것이 물리적 의미의 집이 무너진다는 뜻이 아닌 걸로 이해되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거의 모든 것이 다 무너진 다음 욕조 안에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던 욕조마저 무너지자 마음이 더 불편해지고 이런 상황이 짠하면서 한편으로 짜증도 났다.


     나도 살아오면서 이렇게 집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절망을 느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지금의  봐봐라?

더운 여름에 냉방비 걱정  하고 
시원한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방에 편하게 앉아서 
온라인으로 영화 보면서
신림동 빽순대 먹고 있잖아.

무너지는 순간들이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잖아.



    내가 힘들었던 시절과 그때의 감정들이 떠올랐지만 극복하고  살고 있다는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이 있어도 잘해 나갈 거라는 , 집은 또다시 지으면 된다는  나도 모르게 살아오면서 체득한 것일까.


     작품이 끝난 뒤로도 한참을 멍해있다가 '옆으로 밀쳐둔 나머지 빽순대도 먹어야겠다' 하며 다시 쟁반을 앞으로 당겨와 우걱우걱 남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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