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고 10년 만, 자격증 시험 보러 모교에 가다
2011년 6월 19일의 기록.
우리는 유치원 >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교 > 사회로 나아간다. 이렇듯 사회화의 단계가 하나씩 바뀌는 것은 내가 마주하는 세상의 면적이 더 커지고 넓어지는 것이었다.
중학교 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느끼지 못했던, 중학생이 되면서 소위 도덕책에 나올법한 '또래집단'이 형성되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나는 또래집단에 끼지 못하고 소외되었다. ‘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었고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싫어하는구나’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야 또래집단에 속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최근 대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를 졸업한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이 동네에 여전히 살고 있었다. 오며 가며 항상 보는 모교이기에 학교에 굳이 들어가 볼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일본어 자격시험인 JPT 시험 응시를 위해 나의 모교인 OO중학교 건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거의 십여 년만이다. 내가 시험을 본 교실은 3학년 3반이었다. 나는 중학교 1, 2학년 때는 모두 3반이었고 3학년 때만 4반이었다. 내가 공부했던 3학년 4반에서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살짝 아쉬웠다. 하지만 3반이건 4반이건 간에 교실은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십여 년 적의 흔적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더 이상 가루 날리는 분필도, 분필을 잘못 그으면 벅벅- 소리가 나는 초록빛의 칠판도 없었다. 책상도, 의자도, 벽에 있었던 낙서도, 사물함도, 미술시간에 만들었을 법한 그림과 작품들도 전부 다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그린 학생들은 바뀌었을지언정 여전히 십여 년 전과 똑같은 걸 만들고 있었다. 점묘화라든지 스테인드 글라스와 같은 것들.
교실 앞 안쪽에 커다랗게 서 있었던 시청각 도구 TV도 아직은 그대로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봄날의 쉬는 시간 10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교실 앞 왼쪽 구석에 비스듬하게 놓인 TV를 놓은 이 가구 뒤쪽에 나와 나를 왕따 시켰던 주동자 친구인 K와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잊어버릴 수가 없는 교실의 장치였다. 그렇지만 선풍기는 왠지 그대로인 거 같았고, 당시에는 없던 에어컨이 천장 위에 달려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당시 담임 선생님은 국어 담당이었는데 그 국어시간의 일이었다. 우리 반 바로 앞 복도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수업시간 중에 어느 학생이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다들 수업을 하다 말고 '화장실에 들어간 게 누구야? 누군지 봤어?'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거기서 내가 ‘나올 때 누군지 보면 되잖아요'라는 요망한 소리를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결국 그 화장실에서 누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매년 봄마다 했던 환경미화의 흔적도, 책상과 의자에 했던 각종 낙서들도 사라졌다. 사물함도 새 걸로 바뀌었고 책상과 의자도 새 걸로 바뀌어버려서(더 이상 예전의 그 나무 책상과 의자가 아니다) 그 당시의 것이 남아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시험이 끝난 뒤 아래층에 내려가서 2학년 3반 교실도 둘러보고, 다시 한층 내려와서 1학년 3반 교실과 1학년 1반 쪽으로 가서 돌아보고 내려왔다.
사실 복도 저어 쪽 끝에 있는 음악실이라던가, 도서실이나 이런 건 아직까지 그대로 있을까 궁금해서 더 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괜히 학교 안을 돌아다니다 거동이 수상한 자로 의심받아 시험 점수가 무효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조용히 나오기로 했다. 1층 뒤쪽으로는 여전히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고(잠겨 있었지만) 거기로 나가면 매점이 있었고 그쪽 공터에서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했던 기억도 있다.
그때의 나는 십여 년 후의 내가 이렇게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해 다시 학교에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럼 지금으로부터 십 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