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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으로부터 8년 뒤, 현재에서 만난 우리는

과거의 미래가 현재가 돼버린 2022년에서 다시 만나다

by 세니seny

<엄마 없이 외삼촌댁에서 하룻밤 보내기> 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2022년 현재.


외삼촌은 내년 상반기에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인 현재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맞이하게 되셨다. 그전에 서울에서 받아야 할 교육이 있어서 1주일 정도 머문다고 하셨다.


엄마의 바로 손아래동생인 외삼촌은 엄마와 사이가 좋은 편이다. 엄마가 대체적으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긴 하다. 월요일부터 교육이라 일요일 저녁에 서울에 올라가는데 저녁이라도 한 끼 먹자고 하셨단다. 나는 엄마랑 일요일마다 등산을 다니니까 등산 끝나고 나면 늦은 오후가 되고 삼촌도 마침 그 시간쯤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고 해서 거기서 만나서 밥을 먹기로 했다.


주말이라 차가 막힐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삼촌이 생각보다 터미널에 빨리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렸다. 나와 엄마는 북한산 등산을 마치고 부랴부랴 버스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서 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터미널은 어찌나 큰지 한참 걸어간 끝에 터미널에서 한 시간이나 나와 엄마를 기다린 삼촌과 만날 수 있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는 식당이 많지만 친구들끼리 밥 먹으러 온 게 아니라서 메뉴 선택은 신중해야 했다. 이 중에 내가 가장 젊은 피이기 때문에 이분들을 적당히 좋은 곳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약간의 부담이 있었다. 어른들을 모시고 다닐 때는 무조건 한식이다. 내가 여기를 자주 다니는 편이 아니다 보니 길이나 식당도 잘 모르는 데다 어디에 맛집이 있다고 해도 길을 못 찾으면 낭패다.


그래서 근처에 돌아다니다 괜찮은 집이 있으면 그냥 들어가서 먹기로 했다. 그렇게 걷다가 곰탕집을 발견해서 괜찮겠거니 하고 들어갔다. 메뉴가 곰탕 딱 한 개밖에 없어서 그런지 음식도 빨리 나오고 맛도 괜찮았다.


나랑 등산한 엄마도 그렇지만 삼촌도 배가 고팠는지 다들 국밥 한 그릇을 싹 비웠다. 식당이라 오래 앉아있기는 눈치 보여서 카페에 가기로 했다. 아까 오는 길에 스타벅스를 봐서 거기로 갔는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래도 다행히 자리를 잡아서 엄마랑 삼촌은 자리에 앉아 계시라고 하고 내가 주문을 해오기로 했다. 팀장님이 준 생일쿠폰을 요긴하게 써먹었다. 다들 커피를 안 마시는 분들이라 주스와 차를 시켜서 자리로 돌아왔다.


엄마와 삼촌이 하는 얘기를 들으며 나도 가끔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삼촌이 8년 전 내가 군산에 놀러 가서 하룻밤 신세를 졌던 그날, 당신이 8년 뒤에 정년퇴직이라고 걱정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왜 그렇게 먼 미래를 이야기하지? 싶었는데 세상에 마상에 그 8년 뒤의 미래가 현재가 된 것이다. 8년 전엔 아무 생각 없이 전국 팔도 방방곡곡을 열심히 놀러 다니던 내가, 8년 뒤엔 내가 30대 중반이 된다는 사실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한 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지하철역에서 헤어졌다.


엄마랑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 버스에 막 탑승해서 자리에 앉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엄만가? 하며 봤더니 외삼촌이다. 무슨 일이지? 오늘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고, 잘 들어가라고 전화하신 건가? 싶어 받았다. 그랬더니 오늘 목적지로 가는 곳이 있는데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이 OO역 맞냐고, 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전화하신 거였다. 나도 잘 몰라서 네이버 지도를 켜서 확인하고 답을 드렸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아까 터미널 하차 대합실에서 우리를 발견한 삼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을 때 깜짝 놀랐다. 외삼촌의 모습이 마치 외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보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30대고 엄마도 60대고 삼촌도 이제 만 60세니까 다들 나이가 먹은 건데 이상하게도 나는 아직도 어린이인 것만 같고 내 기억 속에 있는 친척들은 내가 어렸을 때의 젊은 모습, 30~40대 인 것만 같다. 그들은 분명 나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어른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 나이가 되었다.


삼촌이 젊었을 때는 딱히 할아버지랑 닮았다는 생각을 못했다. 엄마에게는 남자형제가 3명이라 나에게는 외삼촌이 세 분 계신데 이제 보니 특히 이 외삼촌이 할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았다. 특히 키도 훌쩍 크고 마른 모습이. 삼촌을 보니 마음이 찌르르했다. 내가 삼촌과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엄마가 삼촌과 관계를 잘 유지해서일 테지만 이런 관계에서 느끼는 따뜻함도 점점 드물어져 가는 세상인지라 이렇게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요즘은 이직이 흔해졌고 평생직장이란 개념도 옅어졌다. 그럼에도 오직 한 직장에서 33년간 근무하면서 교대근무 하느라 밤낮이 뒤바뀌고 그 와중에 아이 셋을 키워서 독립시키고 그 와중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달려가서 도와 드리느라 고생이 많았던 우리 삼촌이다.


자식이니까 당연히 효도와 봉양의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까이 살아도 안 하는 자식들도 많다. 그런 삼촌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삼촌!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삼촌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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