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면 하게 되는 일들
새로운 동네로 이사로 오면 가장 먼저 뭘 하시나요? 저 같은 경우는 출퇴근길 교통편 정보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집이란 모름지기 생활하는 공간이니 근처에 편의시설이 뭐가 있는지 살펴보고요. 슈퍼나 마트는 가까이에 있는지, 편의점은 있는지 또 카페는 어느 집이 맛있고 떡볶이 가게는 있는지 등등요. 온라인몰 배송도 이용하겠지만 아무래도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다 보면 돈을 얼마 쓰는지 감도 없고 내가 원하는 물건이 없는 경우도 있어 오프라인 슈퍼도 선호한답니다.
그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뭘 가장 먼저 하시나요?
저는 새로운 동네에 오면 가장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파악하는데 이번에 이사 와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럼 저의 이사 후 루틴을 소개할게요.
1. 슈퍼마켓 탐방
보통 동네마다 동네의 터줏대감 같은 슈퍼마켓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과거의 명성을 지키는 로컬 슈퍼마켓들이 존재하지만 요새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나 이마트 에브리데이 등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슈퍼마켓형 점포들이 대세를 이룬다. 이사 온 동네에는 전통적인 슈퍼마켓과 대기업 슈퍼마켓형 점포 둘 다 있길래 둘 다 가보기로 했다.
먼저 동네에 들어오는 초입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있길래 가봤다. 지하로 내려가서 저기 안쪽에 위치했지만 그래도 대기업 이름 달고 하니까 깔끔한 편이었다. 앱으로 포인트 적립도 된다. 하지만 포인트는 참말로 짜다는 것에 주의.
그리고 다음날. 쓰레기통에 사용할 큰 비닐봉지가 마침 똑 떨어져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홈플러스 슈퍼 말고 건너편에 있는 동네 마트를 구경할 겸 가보기로 했다. 여기도 지하에 위치해 있는데 들어가는 입구부터 지저분하고 어두운 것이 으스스하다.
그리고 슈퍼에 들어서는 순간 90년대로 회귀했다. 어머나, 지금은 2020년대인데 아직도 90년대 풍경이 남아있구나. 홈플러스랑 파는 물건은 똑같겠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정말 좋게 말해서 레트로 그 자체다. 한 마디로 마치 필터링을 끼운 듯한 거친 90년대 텔레비전 자료화면 같이 어두컴컴하단 뜻이다. 레트로는 레트로고 나는 앞으로 조명이 밝고 분위기가 깔끔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가게 되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2. 도서관
내가 사랑하는 인프라 중 하나는 바로 도서관이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으나 서울 지역은 관내마다 도서관이 여러 개 있고 잘되어 있는 편이다. 보통 관내라 함은 한 구(강남구, 종로구 같은 구)를 말하는데 도서관 규모는 큰 곳도 작은 곳도 있을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강남구는 도서관 친환경적이다. 강남구 관내에 있는 도서관 몇 군데를 가봤는데 책도 많고 깔끔하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 도서관에서 책 대여/반납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문화 프로그램도 많이 하고 있었다.
이사하는 사이 5월 한 달을 도서관에 못 갔는데 그 사이에 이금희 전 아나운서 강연 소식이 올라와 있었고 이미 접수인원을 꽉 채운 상태였다. 혹시 몰라 대기를 걸어놨는데 다행히 참여가능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강남이라는 지역 특성상 세수가 잘 확보되어 있는 데다가 학구열이 치열해서 다른 지역에 비해 도서관이 더 잘 운영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이사 온 지 2주일쯤 된 일요일 오후, 도서관 탐방을 위해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두 블록 정도 직진한 다음 좌회전해서 조금만 걸어가면 되는 아주 단순한 경로지만 처음 가보는 길이니 다시 한번 지도를 확인한다. 낮에 걷기엔 살짝 더웠다.
도서관 앞에 도착했다. 건물이 크지는 않았지만 건물 전체가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입장하니 우와... 도서관이 아니라 북카페 같아! 북카페와 다른 점은 책을 팔지 않는다는 것과 음료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것을 무료로 누릴 수 있다는 것 또한 다른 점이기도 하다. 1층 로비를 지나 2층으로 걸어 올라간다. 엘리베이터도 있지만 계단을 이용해 도서관 이곳저곳을 눈에 담는다.
2층엔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책들이 모여있는 서가가 있었고 한편엔 LP감상실도 있었다. 문학과 음악과의 관계도 떼려야 뗼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목적지는 성인서가가 있는 3층이라 다시 한 층 더 올라가 본다. 올해 3월에 개관한 새 도서관이라 아직까지 새집증후군 냄새가 조금 나지만 서가는 널찍하고 텅텅 비어있으며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라 책을 읽지 않아도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서가를 한 바퀴 둘러본다. 전통적 도서관은 보통 서가와 열람실이 따로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서가 중간중간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되어있고 카페처럼 일렬로 되어 있는 좌석배치도 신선하다. 원래 책만 슥 빌리고 가려고 했는데 이런 공간을 누리지 못하고 그냥 가기엔 조금 아쉬워서 빌릴까 말까 고민하던 책을 앉아서 읽었다. 자주 와야겠다. 살고 있는 집은 별로지만 동네는 마음에 들려고 한다.
3. 공원 등 자연환경
집 뒤로 바로 양재천이 있다. (올해 비가 많이 온다는데 넘칠까 봐 무섭다. 제발 그러지만 않기를.) 25년간 살았던 집 근처에도 바로 안양천이 있었고 그리고 독립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던 곳도 양재천이 가까웠던 곳이라 삶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었다. 지난 2년간 독립하면서 살았던 동네는 천변이 없어서 좀 아쉬웠는데 이번에 이사하면서 다시 양재천 근처로 이사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삿날부터 3일 내내 비가 와서 도통 양재천에 제대로 나가보지 못했다. 그 뒤로는 출퇴근에 월말이라 야근하느라 출근길에만 양재천 위쪽 산책로를 종종 거리며 걸어갔을 뿐 양재천에 내려가 보질 못했다. 이번 주말에는 꼭 가봐야지.
이사 온 지 꼬박 일주일이 지난 금요일 저녁,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행거 배송기사님이 다음날인 토요일에 설치를 하러 오겠다는 전화였다.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올 줄 몰랐다. 나는 토요일 아침마다 바이올린 레슨 받으러 가는 데다 오후에 가스레인지 연결 신청까지 해놨는데 배송기사님의 전화 한 통에 스케줄이 다 꼬여버렸다.
그렇다고 이걸 다음으로 미루면 또 짐 정리를 못하고 물건이 반송될 될 수도 있어서 일단 알겠다고 하고 다른 스케줄을 바꾸기로 했다. 다행히 바이올린 오후 2시가 비어있길래 레슨시간을 급하게 변경하고 마침 엄마가 오후에 집에 온다고 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했다.
바쁘다 바빠. 옷정리도 마무리하고 가스설치도 무사히 끝내고 그 와중에 후딱 바이올린 레슨도 다녀오는 그야말로 미친 스케줄을 소화했다. 이렇게 난리난리를 치며 예정된 모든 일정을 다 소화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나서도 또 치우고 쓰레기 버리고 어쩌고 나니 저녁 7시. 그래도 양재천에 나가야겠다. 오늘마저 안 나가면 양재천 산책은 계속 뒤로 미루게 될 것 같아 많이 걷지 않더라도 오늘만큼은 꼭 나가야겠어를 외치며 밖으로 나왔다.
좋다. 칠월의 밤이라면 이 시간에도 덥겠지만 아직 유월의 밤은 선선하다. 걸어도 땀이 안 나. 너무 어두워질 때 혼자 다니면 좀 그래서 오늘은 가볍게 조금만 걸어갔다 오기로 했다. 하늘엔 아직 해가 지고 난 뒤의 잔상이 남아있다. 약한 분홍빛과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들. 발걸음이 가볍다. 새 동네에 적응해야 되는 부담도 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돼 가겠지 하면서 이 공기와 바람을 즐기자 다짐하며 신나게 걷고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는 자주 걷고 혹시나 자전거를 사게 된다면 자전거도 열심히 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