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떠날 때 그리워할 만한 풍경을 발견하고 말았다
이사 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집에 오는 버스를 타러 길을 건넜다. 나는 코엑스 쪽 광장을 좋아해서ㅡ정확히는 삼성역 4번 출구 쪽 언덕길을 싫어하는 것ㅡ일부러 한 정거장 전이라도 그쪽으로 버스를 타러 다녔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언덕 쪽 버스정류장으로 가야 일반버스든 마을버스든 그중에 빨리 오는 걸 아무거나 타고 집으로 빨리 갈 수 있었다.
거기는 일반버스와 마을버스 정류장이 붙어있는데 코엑스 대로변 쪽은 마을버스랑 일반버스랑 정류장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빨리 돌아가기 위해 앞으로는 싫어라도 언덕 쪽 지하철 출구로 나가는 걸로 정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퇴근길 루틴이 정해진다.
기다려서 버스를 탔다. 그런데 무심결에 바라본 차창 너머로(늦게 퇴근했더니 버스에 사람이 없어서 자리에 앉았다) 롯데타워가 보이네? 어? 이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건데?
내가 잠실에 사는 건 아니지만 잠실이 옆동네이고 롯데타워가 워낙 높다 보니 여기서도 보이는 거다. 그러고 보면 전에 살던 곳에선 항상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퇴근했는데 이젠 롯데타워를 바라보며 출퇴근하겠네. 하하하.
그렇게 몇 정거장 안 가서 버스에서 내렸다. 바로 집 앞까지 가는 버스나 지하철은 없어서 항상 조금씩은 걸어야 한다. 그래서 씩씩하게 집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
이사 오면서 집의 위치, 구조, 기타 조건 등 다 변한 게 맞다. 물리적인 집은 바뀌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내 집이 되어야 한다. 이걸 일치시키지 않으면 내가 힘들다. 퇴근길을 자꾸 이전에 살던 곳과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전엔 남산타워가 보였는데
여긴 롯데타워가 보이네?
전엔 언덕이 있었는데
여긴 평지네?
전에 살던 동네는 교통의 요지다 보니 외지인이 많고 힙쟁이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과 가까웠다. 하지만 여기는 전형적인 1990년대 아파트 단지가 늘어선 동네 느낌이 팍팍 든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엔 흔히 말하는 아파트 밀집 지역에 살 법한 노인도, 장보고 돌아가는 엄마들도, 중고딩 학생들도 많이 돌아다닌다. 나는 이렇게 퇴근길에서 하나둘씩 틀린 그림 찾기를 시작하며 새 동네에 스며드는 중이다.
'퇴근길'이라 함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버스-지하철 또는 버스-버스를 이용하는 여정에서 이제는 버스-도보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이니까 사는 곳이 바뀌었다고 해서 퇴근길이라는 속성이 변한 건 아니다. 다만 최종 교통수단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는 그 풍경과 주변이 바뀌었기에 모두 틀린 그림 찾기 게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낯설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 같은 풍경을 지닌 거리를 한참 걸어 아파트 단지 초입에 들어섰다. 그런데 평일 저녁답지 않게 뭔가 복작복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라? 웬 타코야끼 트럭이 세워져 있지? 벌써 문을 닫은 가게도 많았지만 그 옆으로 옥수수 트럭, 반찬가게 트럭 등이 아직까지 장사를 하고 있었다. 저번에 부동산 잔금 치르는 날에도 장터 같은 게 열리더니 그런 건가 보구나. 아직도 서울에서 이런 걸 하는 데가 있었네.
아파트 초입에 서있던 타코야끼 트럭을 보는 순간 느꼈다. 이건 분명, 내가 이 동네를 떠나게 될 때 그리워하게 될 풍경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