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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일하기 싫어 아침에 당일 휴가를 내다 (상)

가구배송에서 촉발된 이 휴가의 끝은

by 세니seny

사무실 뛰쳐나온 오늘, 2023년 6월 어느 날의 일기.


어제 퇴근길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바로 그저께 저녁에 주문한 가구를 배송해 주겠다는 설치기사 아저씨의 전화였다. 어라? 보통 가구는 주문제작이라 최소 5일 정도는 걸리고 거기에 배송은 플러스 알파로 며칠 더 걸리는 걸로 알고 있는데? 누가 물건 주문해 놓고 안 받는다고 했나?


나야 물건 빨리 오면 더 좋으니까 몇 시쯤 올 거 같냐고 물었더니 대략 오후 1~3시 사이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시간대에 맞춰 휴가를 내려고 했는데 시간 참 애매하네. 혹시 사람이 집에 없으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그럼 물건은 집 앞에 놓고 갈 테니까 배송비는 계좌로 부치라고 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가만 생각해 보니까 아무리 완제품이라지만 가구인데 내가 포장을 뜯고 낑낑대며 집 안으로 옮길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배송비가 저렴한 것도 아닌데 그냥 던져두고 나 몰라라 간다고? 머리를 굴렸다. 회사에서 집까지 빠르면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그래. 이걸 핑계로 오후 반차를 내자.


어차피 가구가 와도 짐정리 해야 하는데 그러면 시간 걸리잖아. 만약 휴가를 내지 않으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해 먹고 치우고 그제야 물건 정리를 시작할 텐데. 그러고 끝나면 씻고 바로 자야지. 그리고 또 다음날 출근. 안 되겠어.


어차피 급한 업무는 끝났고 오늘도 하루 종일 일하기 싫어서 혼났는데 겸사겸사 휴가를 써야겠어. 좋아. 퇴근해서 집에 와서 물건 받아 정리 좀 해놓고 이력서도 내고 이른 저녁에 따릉이를 빌려 잠실한강공원까지 다녀와야지. 그렇다고 이 밤에 팀장님께 연락하긴 좀 그러니 내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말씀드려야지, 생각했었는데...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와있다. 가구배송 아저씨의 문자였다. 어제는 오후 1~3시 사이에 온다더니 이번엔 아침 8시에 온다고? 내가 직접 안 받는다고 했더니 그냥 자기 스케줄 편한 대로 던져놓고 갈려고 하는구나.


‘이럴 거면 그냥 하루 휴가 낸다고 할 걸 그랬나? 어쩌지?' 하고 있는데 가구 배송 아저씨한테 전화가 온다. 미안한데 본인이 착각했다면서 내 물건이 아직 실리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오늘 배송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놔 이 아저씨... 허무해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어젯밤에 휴가를 내기로 마음먹고 나니 신났었는데 이대로 반차를 취소하고 오후까지 근무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다운된다. 그래서 회사에는 뻥치고(?) 예정대로 휴가를 내기로 했다. 그러고 계속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아까랑 좀 번호가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일단 받았다.


"여보세요?"
"가구 배송인데요"
"네? 아까 오늘 배송 안 해준다고 다른 번호로 전화가 왔었는데요?"
"어? 이거는 이동식 조리대 배송 건인데요?
"아..."
"8시쯤 도착합니다"


알고 보니 어제와 오늘 아침에 가구배송 전화를 줬던 기사는 화장대 배송기사였다. 그리고 아침 8~9시 사이에 도착한다는 문자를 남기고 방금 전화를 준 기사는 부엌에 놓을 이동식 조리대 배송기사였던 것이다. 하하하. 이사 직후에 가구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네.


다행히 출근시간 직전에 물건이 와서 물건을 받아 급한 대로 부엌에 뒀다. 아무리 완제품이라고 해도 내가 이걸 포장 뜯고 할 생각을 하니 어휴... 조리대가 이럴 진대 크기도 더 큰 화장대는 어떻게 혼자 들고 옮길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설치할 것도 없으니 물건만 놔둔 기사 아저씨는 후다닥 사라지셨다. 나도 출근해야 되길래 얼른 나왔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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