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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같은 팀 동료와의 관계에 대해 (하)

팀장님이 자꾸 뭘 묻는데 전 할말하않 하겠습니다

by 세니seny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도 그렇고 오늘 올해의 목표를 세우기 위해 만난 면담시간에 만난 팀장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슬쩍 물어본다. 나와 동료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서. 물론 나한테는 걔 이야기하고, 걔한텐 내 이야기를 하면서 슬쩍 떠보는 거... 내가 모르겠어? (ㅎㅎ)


대놓고 팀의 weakness에 ‘팀원 개인별 역량 차이’라는 항목을 기재하셨는데 나는 그게 그 뜻인지 몰랐다. 저번엔 에둘러서 말하셨지만 오늘은 팀장님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생각하셨는지 나에게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까지 함부로, 여기 브런치에 쓰는 것처럼 모든 걸 다 말할 수는 없었다.

얘는... 원래부터 그랬어요.

옛날에 다른 상사가 있을 때 저랑 그 상사랑 둘이 그런 얘길 한 적이 있었죠. 쟤는 너무 자기 일만 하려고 한다고.

전에 저한테 일이 좀 몰리는 시기에 상사가 같이 일 좀 나눠서 하자고 했는데 그 말에 정말 네, 아니도 같은 대답조차도 아무런 대꾸도 안 하길래 자기는 도울 생각이 1도 없음을 간접적으로 표시하는구나 싶어서 그냥 제 일이니까 제가 하겠다고 했고 그때부터 저는 쟤를 믿지 않았어요.

위와 같은 솔직한 속내를 팀장님한테 마구 지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 애가 업무지식 자체가 부족한 건 아닐 거예요. 어쩌면 이론적인 건 저보다 더 많이 알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원급과 똑같이 1을 말하면 그것만 듣고, 자기에게 쏙 필요한 정보만 듣고 일하려는 것도 역량의 차이라고 한다면 그건 맞는 거 같아요.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사실 이번에 자꾸 업무 얘기하는 것도 다 눈치 까고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너도 좀 당해봐라 이런 느낌. 자기만 일을 너무 편하게 하려는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니 그게 다 보이는 나는 짜증이 나서 원래 내가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잘 모르는 내용이면 눈치껏 메꾸던가 자기 시간을 써서 업무에 참여를 해야지, 그렇지 않고 너무나 당당하게 자기는 모른다,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막내사원과 같은 처지도 아니고 일한 짬이 몇 년이 더 있고 월급을 더 받는데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건 역량부족 아니야? 자기 시간은 안 쓰고 필요한 것만 얌체같이 알아내려고 하는데 그게 되겠어? 주변 돌아가는 것도 알아야 업무도 이해가 되는 건데. 옛 상사가 지적한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이었는데 말이지.


누구든 본인 업무하기 편하게 나온 자료 가지고 우아하게 일 안 하고 싶겠어?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편하게 일이 돌아가겠느냐고.


조직이라는 곳의 특성상 직급도, 경력도 비슷한 사람이 둘이 있다면 위로 올라갈수록 자꾸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나는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 전에 알아서 내가 먼저 나가야겠다를 시전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2년, 3년 시간이 흘렀고 팀장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된 상황까지 온 것이다.


요즘엔 그냥 다 그만둬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서로 이런 미묘한 관계나 신경전도 너무너무 불편해. 만약 이 회사에 들어올 때 처음 면접을 봤던 팀장님(현 본부장님)이 기존에 일하고 있는 직원과의 관계를 고려해 그녀와 직급도 경력도 성별도 나이도 똑같은 나를 안 뽑았다면? 나는 나대로 어디 다른 데로 흘러가서 잘 살고 있겠지?


요새 트렌드가 수평적인 조직이네 어쩌고 해도 한국에서는 조직은 조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상하관계, 수직관계가 어느 정도 가미될 수밖에 없다고. 왜냐면 여기는 한국이고 나이나 서열을 아예 무시할 수 없다.


팀장님이 묻는 질문보다 나는 이미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에 대해 말을 보탤 수도 있었지만 말을 아끼고 적당히 끊어서 그 정도로만 대답했다. 내가 진짜로 해야 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누가 봐도 해야 되는 건데 안 하는 것에 대해서만.


얼마 전에 베프 SH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아르바이트로 입사해서 정직원이 되어 첫 번째 회사가 된 그곳을 10년 넘게 다니다 최근에 퇴사해서 프리랜서가 되었다. 그런데 프리랜서를 시작하게 되면서 아는 인맥 안에서 일거리를 소개받다 보니 전부터 같은 회사에서 불편한 관계로 일해오던 대학 선배 언니와 같은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 선배라는 분은 나랑 비슷하게 워라밸을 주장하는 사람에다 묘하게 본인 맡은 일'만' 하려고 하는 나의 동료 느낌까지 섞인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워라밸을 중시하지만 그래도 회사 사정 상 일을 해야 한다면 하는 타입인데 그분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반면에 내 친구는 나보다 워라밸 개념이 없고 팀으로 같이 일하면 서로 도와야 한다는 주의인지라 공감하면서 이야길 나눴었다.


자기가 원래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농땡이를 쳐서 다른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는 거면 당연히 도와줄 수 없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정말로 일 자체가 양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던지 한 명한테 일이 몰리는 구조라면 그럴 땐 도와주면 얼마나 고마워. 그리고 반대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거고. 꼭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저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나 마음을 결정하는 행동인 건데.


가끔 팀장님이랑 동료 둘이 나누는 대화가 다 들리진 않지만 중간중간 들려오는 이야기만 들었을 땐 자료가 아주 잘 주어져 있으면 즉 밥상이 이쁘게 잘 차려져 있으면 그것만 쏙 떠먹으려고 한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 (이건 내가 팀장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한 비유) 하지만 옛날에도 상사 앞에서 적극적으로 동료를 욕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이 참 불편하다는 것 그리고 이건 그녀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건 조직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일하기 싫은 내가 조직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사람을 뽑을 때는 나이와 경력이 비슷한 사람은 가능한 동료로 뽑지 않는 것이 최선일 거라는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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