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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미워하는 마음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

내가 복수하지 않아도 알아서 알아서 되리니…

by 세니seny

이전글 그리고 이 글에 나오는 동료와의 이야기.


2023년, 어느 봄날의 일기입니다.


윗글에 나온 동료와 말다툼(?)이랄까… 어떤 상황이 벌어졌고 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것들을 보태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을, 그녀에게 우다다다 말을 쏟아내고 말았다. 그녀가 보기엔 내가 갑자기 일방적으로 쏘아붙였다고 생각할 테지. 그러니 이건 말다툼이 아니고 '말 쏘기'라고 불리는 게 적절할 듯하다. 아무튼 이 말 쏘기를 시전 한 지 대략 한 달쯤이 지났다.




말을 내뱉었을 당시에는 고소하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은 역시 불편함이다. 만약 말을 안 했더라면 그걸 마음속에 쌓아두고 있어서 불편할 거고, 말을 해 버렸더니 일하면서 계속 얼굴을 봐야 하니 이건 이거대로 불편하다.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래도 이 동료의 장점 중 하나는 성격이 쿨한 편이라 이 정도로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누가 나한테 그랬더라면 나는 쿨하게는 못할 거 같다. 원래도 그랬지만 이제는 서로 더 예민하게 조심하는 중이다.


그런데 예전부터 피부가 어쩌네 하면서 원인 모를 이유로 얼굴이 붉어지곤 해서 병원에 다녔었는데 최근에 그게 심하게 도진 거 같았다. 가능하면 햇빛을 안 쐬는 게 좋다.


그래서 재택근무를 하루만 한다고 했다가 급작스럽게 그 주 내내 재택을 연장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다음 주에 더운 나라로 해외여행을 간다고 한다. 코로나가 한창 심할 때 결혼을 해서 해외로 신혼여행을 못 가는 바람에 겸사겸사 간다고 했다.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이... 이러면 안 되지만 너무너무 고소한 거 있지? 지금 햇볕도 쬐면 안 된다고 난리인 마당에 햇빛이 더 센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간다? 여행이 며칠 안 남은 시점이라 취소도 어려우니 가긴 가겠지만 화장도 못하고 최대한 햇빛 안 쐬기 위해 노력하겠지. 그냥 그런 상황이 너무 고소한 거다.


내가 그렇게 되길 바란 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친구가 법의 심판을 받을 만큼의 악행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체를 모를 무언가가 내 대신 복수를 해주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출근해서는 컨디션이 안 좋네 어쩌네 하면서 팀장님이 하는 얘기도 듣는 둥 마는 둥 집중을 못하고 있다. 그러다 사무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을 가린답시고 손들고 가리는 척을 하길래 속으로 ‘꼴값이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에 또 뭐가 났단다. 피부가 갑자기 그렇게 된 데다 눈에 뭐까지 났다고 하는데... 이쯤 되니 약간 무서워지는 거 있지?


물론 내가 얘와 말다툼(아니 말 쏘기) 하기 전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이 사람을 미워하기 전부터 이미 걔의 피부는 좋지 않았다. 그리고 눈에 갑자기 뭐가 난 것도 그게 발현될 인자가 있었는데 우연히 지금에서야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피어올라 하나의 커다란 악의 기운을 만들어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이제 그런 그녀를 보고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이 사람의 불행을 바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불행(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어려운 상황)해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도 굳이 복수를 하는 편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한테 미움을 받거나 원한을 산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들한테도 상처를 준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굳이 처단하지 않아도 똑같이 행동하다가 다른 데서 당하겠거니, 하는 세상사 흐름을 믿기 때문이다. 얘가 알게 모르게 한 행동들이 다 본인한테 부메랑처럼 돌아온 것이겠거니 하고.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결과를 바란 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미묘하게 불편한 감정을 오랜 시간 쌓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터뜨리고 나서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계속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그러고 났더니 얘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다. 아니,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저주인형 찌르기 같은 그런 거, 전혀 안 했는데요?


원래부터도 그런 증상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 심해진 거 같더란 말이지. 게다가 이제는 다른 부위까지도 아프다고 하고. 대놓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을 두고 약간 꼬시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주술사도 아니고 어떻게 이러냐고. 이제 나도 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사람을 미워하지 않지만 미워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냥 놔둔다. 그러면 그 사람이 뿌린 씨를 스스로 거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어디선가 탈이 나고 마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본인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법의 테두리에서 결코 잘못한 건 없지만 알게 모르게 저질러온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거대한 하나의 막을, 어떤 분위기를 형성해서 결국 본인의 앞길을 막게 될 테니까.


그러니 나도 나쁜 짓은 하지 말고 살아야지 그리고 조금 손해 보는 듯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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