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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동료와의 미묘한 거리감 (하)

동료와 거리를 두는 나. 내가 문제일까?

by 세니seny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재무팀의 경우 경비정산 업무의 양이 상당하다. 직원이 한두 명이면 모를까 몇십 명 혹은 몇 백 명이 돼버리면 일이 꽤 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전 직원의 영수증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같은 팀 팀원들이 그 업무를 나눠서 하는 경우가 많았고,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그런 일이 많아서 이해했다.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원래 자기 업무를 우리가 나눠서 해주는 건데 손해를 안 보려고, 모든 걸 똑같이 나누려고 해서 얄미웠었다. 그리고 본인이 경비정산 업무가 메인이면 법인카드가 연동 안 되는 문제 같은 건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 거 아냐?


맨날 내가 먼저 발견해 가지고 나도 이 업무 빨리 끝내 버리고 다른 거 해야 되니까 짜증 나서 결국 내가 하곤 했었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있었던 것이다. 그래, 쟤가 나를 일로서 대하니까 나도 딱 그렇게만 대해야지 결심했다.


그렇게 일로만 대하니 오히려 편한 점도 있었다. 어설프게 착한 마음을 가지고 일을 도와주고 나면 나는 도와줬는데 쟤는 왜 나 안 도와줘? 같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사람이니까.


그런데 애초에 서로 도와주질 않으니 그런 게 생길 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일적으론 사이가 안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럭저럭 잘 지낸 거고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도 안 드는 거였다.


이 사람이 결코 악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 직장에선 서로 다른 업무를 하고 있어도 필요할 때는 재지 않고 도움을 줬던 팀 동료들이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같은 마음으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이 사람과도 친하게 지내고, 저 사람과도 친하게 지내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회사 사람들하고 어디까지 친해져야 하는지 거리 조절을 잘 못하겠다. 그럴 바엔 아예 안 얽히는 게 아예 낫겠다 싶어서 그렇게 지낸 건데 그러다 보니 요즘 외롭긴 하다. 그래서 이직해도 별로 아쉬울 게 없기도 하고.


만약 회사에 친한 사람들이 있으면 퇴사를 결정할 때 좀 더 마음이 쓰이는 부분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미련 둘 게 없으니까. 그렇지만 진짜 힘들 때, 그냥 이야기하고 싶을 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건 아쉽다.


얼마 전 새로 들어온 인사팀 팀원도 그래 보인다.


경력사원이라고 하니 어느 회사에선가 일을 해봤을 거다. 그러면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 두는 방법과 어떻게 행동을 해야 무난히 넘어갈지와 같은 것들을 잘 알고 있겠지.

그래서 정말로 적당히 사무적으로 친절한 정도만 유지하고 있다. 보통 입사를 하면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없는 친절, 있는 친절 끌어다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다. 그것도 어찌 보면 독특하다.


필요한 서류가 있어서 아침에 물어보러 그녀의 자리에 갔었다. 거기서 정확히 벽을 느꼈다. 마음이 빠져 있는, 사무적으로'만' 친절한 태도. 다른 팀도 아니고 사람을 다루는(?) 인사팀인데 말이다.


재무팀은 '숫자'를 다루지만 인사팀은 '인간'이라는 특수한 소재를 다루는 팀이기에 직원들에게 무작정 친절하게만 대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해서 기계처럼 대하라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럴 때도 사무적인 태도를 고수해야 하는 걸까?


아마 신입사원 시절부터 그러진 않았겠지. 의욕에 차서 누구에게든 친절하게 대했을 거고 열심히 하면 보상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직장인이란 게 이런 거구나, 사회생활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며 어느 지점에선가 회의감을 느꼈겠지.


그전에 일했던 어느 곳에서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내가 알 길이 없고 나 또한 여기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지만. 이 직원은 결국 입사하고 세 달 정도 있다가 퇴사했다. 초장부터 오래 다니지 못할 싹이 보였던 거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식으로 벽을 느꼈다면 나도 뭔가를 잘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좀 외로운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오은영 박사님 상담 프로그램에 가수 위너(WINNER)가 나온 편에 회피형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 얘기 같아서 울컥했다. 결국 이 문제를 계속 파고 가다 보면 내가 중학교 때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했던 일이 꽤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전 회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 초등학교 때 왕따 당한 적이 있었는데 어쩌고 저저고~’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는 말을 했던 동료가 있었다.


지금 모습으로만 보자면 활발하고 배려가 깊고 대화거리가 풍부하며 할 말이 있을 땐 똑 부러지게 하고 나같이 겉도는 사람도 불편하지 않게 잘 챙겨주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또래집단에서 소외될 수가 있지?


나도, 그녀도 똑같이 왕따를 당했는데도 그 분과 나의 문제 대응방식이나 삶의 방식은 전혀 달라졌다는 것이 신기했다. 왕따라는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한 개인에게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건 근본적인 걸까? 그냥 타고나는 부분이 영향을 미친 걸까?


인간관계는 대체로 쌍방에 잘못이 조금씩 있기 마련인지라 나의 이런 태도가 사람들이 나랑 친해지고 싶지 않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가 이 동료와는 결국 친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 또한 마음속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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