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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뒤늦게 코로나에 걸린 이야기 (하)

아파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현실... 이 죽일 놈의 월마감

by 세니se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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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내내 방에서 끙끙 앓다가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바로 병원부터 가보기로 했다.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처음 병원에 가보는 거다. 아직은 이곳이 낯선 동네인 데다 몸이 잔뜩 아픈 상태여서 괜히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병원에서도 간이키트로 검사를 했는데 어제랑 똑같이 바로 두 줄이 떴다. 처음 방문한 낯선 병원의 선생님은 나이가 있으신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다. 친절하게 검사 결과를 보여주시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잘해주셨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도 조금 가셨다.


그리고 회사에도 코로나 확진을 받았으니 출근은 못하겠다는 연락과 함께 출근한 직원에게 노트북을 보내달라고 연락했다. 일하기 싫었지만 월마감이라 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부여잡고 일을 했다. 약을 먹으면 잠깐 나아지는 거 같다가도 약빨이 떨어질 때쯤 열이 오르는 느낌에 힘들었다. 몸 상태는 어제와 별다를 바가 없이 좋지 않았다.


약을 먹고 나면 일시적으로 괜찮다. 그런데 3,4시간 정도 지나고 약발이 떨어지면 다시 열이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문도 열어놓고 환기시키고 에어컨도 송풍으로 잔잔하게 틀어놨다. 열 때문에 집중도 잘 안 되는 와중에 바쁜 날이라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람. 속상해.


다음날인 화요일. 오늘이 업무 상 최고조로 바쁜 날이다. 어제보다 컨디션이 아주 쪼끔 나아진 거 같은 대신에 오늘부터는 목구멍이 쑤시도록 아팠다. 말하기가 괴로웠다.


게다가 마감도 딱딱 숫자가 맞아떨어져서 끝나면 깔끔했을 텐데... 여러 가지로 꼬이고 숫자도 안 맞고 말도 아니었다. 이 정도로 마감 꼬이는 일도 드문데 팀장님이 계신 마지막 마감이라 그런가. 몸도 안 좋으니 그냥 다 안 하고 싶었다. 퇴사하는 팀장님도 괜히 밉고.


셋째 날인 수요일. 그제와 어제 이틀 동안 약을 먹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괜찮은 게 아니었다는 걸 이제야 느꼈다. 이게 괜찮은 거였어. 확실히 열이 많이 내려서 정신이 멀쩡해졌다. 전에는 뭐랄까 영혼이 1그램 정도 몸 밖으로 탈출해 있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몸과 영혼이 잘 붙어있는 느낌.

대신 목구멍은 여전히 아프고 일은 오전 내내 더 꼬여서 난리 났는데... 그 와중에 막내가 굳이 이 바쁜 시기에 만들지 않아도 될 사고를 소소하게 일으켜서 사람을 힘들게 했다. 막내야, 너 서른두 살이야. 회사 전화를 누가 그딴 식으로 받아?


넷째 날인 목요일. 확실히 열은 내렸다. 일단 정신이 멀쩡하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었다. 목도 아프긴 했지만 많이 가라앉았다. 대신 코가 가득해서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내 목소리가 아닌 느낌.


격리권고기간은 5일이라 월요일 아침에 진단받았으므로 금요일까지 재택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퇴사하는 팀장님이 하필이면 내일(금요일)까지 출근이다. 코로나 때문에 얼굴도 못 보고 퇴사하나 했는데 겸사겸사 할 말도 있고 하니 컨디션 괜찮으면 사무실에 나오라고 하셨다. 내가 사무실 가는 건 문제가 아닌데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그게 문제지.


아무튼 코로나에 걸렸어도 1도 꿀 빨지 못한, 재택 근무자의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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