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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D-day : 팀장님 퇴사하는 날 (상)

팀장님의 퇴사가 유독 서운하게 느껴지는 이유

by 세니seny

마감을 막 마치고 난 금요일이자 팀장님이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


아마 팀장님이 퇴사하는 게 아니라면 나는 오늘까지 쭉 재택근무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격리권고일 마지막 날임에도 출근을 한 이유는 팀장님이 직접 얼굴 보고 해 줄 얘기도 있으니 나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팀장님이 마지막 날인데도 불구하고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너무 바쁘신 바람에 따로 대화를 못하고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본부장님이 잠깐 보자 하셔서 방에 들어갔는데 평상시와는 달리 왠지 모르게 방에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뭔가 팀장, 본부장 이런 직책을 맡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끼면서 회사에 다니는 거였어. 팀장님이 마지막 출근하는 날이 되자 이제야 직책을 맡는다는 것의 중압감이 느껴졌다.


맨날 '본부장님은 왜 저래?’라고 했지만 그 방 안을 짓누르고 있는 책임감, 부담감 그리고 압박감이 그 어느 때보다 고스란히 느껴졌다. 항상 웃고 계시지만 그 뒤로 숨겨진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직책 같은 걸 처음 맡아봐서 그런 건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팀장님이 입사하기 전에 같이 일했던 상사가 그만둘 때도 꽤 서운한 감정이 들었었는데 눈물까지 나지는 않았다. 인간적인 서운함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저 앞으로 업무를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그때는 아래와 같은 등식이었다.


일 > 사람.

그때는 그저 앞으로 닥쳐올 일이 더 중요했다.


이번에도 물론 '일'도 걱정된다. 하지만 그때랑은 다른 의미에서의 걱정이다. 그때는 단순히 업무처리에 대한 걱정이었다면 이번에는 나의 역할이 팀원에서 팀장으로 바뀜으로써 그에 어울리는 역량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서 오는 부담. 그리고 팀원들에게 어떻게 큰 그림을 보여주면서 여러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할지와 같은 것들이 너무 걱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까와 같이 등식을 그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일 < 사람.

이번엔 사람이 더 중요한 느낌.


그래서 팀장님의 퇴사가 더 서운하게 느껴졌나 보다.


오전에 선물전달식이 있었다. 작은 감사패와 꽃다발 그리고 화분을 드렸다. 별 얘기가 오고 가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직 마감 관련돼서 자잘한 업무가 끝나지 않아 하루 종일 바쁘게 일을 했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지났는데도 팀장님을 배웅하고 가려고 했는데(퇴사할 때 아무도 배웅 안 해주면 쓸쓸하다는 걸 알고 있는 퇴사 두 번 경험자 왈 = 나) 아무래도 퇴근을 안 하실 거 같아 내가 먼저 사무실을 나오게 되었다.


웃으면서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울먹거리는 꼴이 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정말 고생 많이 하셨고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라는 참 흔하고도 단순한 그 말 한마디가 하고 싶었을 뿐인데.


'팀장님,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하고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마스크 안에서 입을 우물거렸다. 팀장님이 본인은 이러저러할 일이 있으니 먼저 가라고 하신다. 거기서 혼자 으아아아앙하고 울어버리면 완전 사연 있는 여자가 되기 때문에 일단은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는데도 어째 한 번 튀어나온 눈물이 다시 들어갈 기미를 안 보인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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