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의 기록 : 서울 시내 여행 2일 차
<서울탐방 제9탄 : 서울시내 중심가 여행하기 (3)>편에서 이어집니다.
다시 부지런히 걸어 혜화역으로 그리고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한다. 이곳은 대학로 만남의 장소이자 대학로라고 하면 떠올리는 상징적인 장소다. 어릴 적, 온라인 해리포터 카페의 오프라인 모임 때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났던 기억과 몇 년 전 소개팅남과 갔던 학림다방이 아직도 건재해 내 눈에 띈다. 나는 왜 아직도 혼자인 걸까. 이러다 평생 혼자인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종종 사로잡힌다. 마로니에 공원 한편에 특이한 건물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예전에 서울대학교가 대학로에 있던 시절 본관으로 쓰던 건물이라 했다.
최근에 찐친 JS를 만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때는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말이 나온 거라 내용이 두서없었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말이 하고 싶었던 거다. 나는 혼자니까 시간이 넘쳐난다. 그래서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여행도 가고, 바이올린도 배우고, 책도 읽는 건데 이런 나를 보고 남들은 '네가 그러니까 연애를 못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당연히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릴 거다. 무조건 내가 하고 있는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틈 사이로 누군가를 만나겠다는 게 아닌데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혼자 지내니까 시간 활용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좋다. 좋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 아쉬운 마음이 바로 외로움인 걸까. 내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죄책감마저 들 때도 있다. 이 시간에 누구라도 만나서 그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던지 아님 다른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써야 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만약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직업)이 마음에 들어서 잘해보고 싶은 데다 은퇴할 때까지 계속 다닐 수 있는, 일자리가 보장된 곳이라면 나머지 시간에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걸 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생각이 없으므로 남는 시간에 어떤 일을 할지 찾아보고 그것을 위한 준비를 착착 해 나가야 한다.
대학로 골목을 지나 이화마을에 왔다. 평일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한창때에 비해 인기가 없어져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다. 이건 마치 내가 베스트셀러 책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을 때 바로 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차라리 유명해지기 전에 보던가 그게 아니라면 베스트셀러 거품이 좀 빠진 한참 뒤에 천천히 본다.
나의 이런 특징은 유명한 여행지나 관광지의 맛집이 스테디셀러가 된 이후 혹은 대세에서 벗어났을 때 가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어느 일이나 그렇듯 장단은 있다. 장점은 사람 없이 여유롭게 볼 수 있다는 거고 단점은 정점에 올라있을 때 그 특유의 분위기를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식당 같은 경우는 맛이 변하기도 한다.
이화마을에서 자연스럽게 낙산공원으로 넘어왔다. 언덕길은 좀 있지만 등산 다니는 나에게 이 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나저나 제1전망대에서 2,3 전망대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시야는 아쉬웠지만 여기서도 남산타워가 보였다. 남산타워라는 게 서울 살면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거였어? 사는 동네가 바뀌니까 이런 것 마저 달라진다.
버스를 타고 다시 안국역으로 이동한다. 저녁을 먹을까 했지만 아직도 대부분 식당의 브레이크타임이 풀리는 다섯 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풍경이 멋진 카페에 가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차가 서서히 막히기 시작한다. 버스 타고 가는 길에 보니 저어기 지평선 너머에 둥근 해가 넘어가고 있다. 동그랗다. 주황색에 가까운 빨강.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 이 건물이 맞나? 싶은 건물로 들어선다.
공간이 특이한 카페 ‘텅’에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카페가 양쪽으로 공간이 나뉘어 있다. 오른편은 오픈된 주방과 테이블들이 있고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도 약간의 좌석이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왼편으로 들어가니 이쪽도 좌석과 사람들이 한가득 있었다. 사람이 좀 덜 붐비면 좋을 거 같은데 이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엄청 복작복작하다.
안주는 양이 너무 많아 보여서 진토닉만 한 잔 시켰다. 주방 있는 오른쪽 공간의 넓은 테이블에 자리 잡고 주문 넣었다. 다행히 주문 기다리고 있는데 혼자 앉기 좋은 창가 자리가 비어서 앉았다. 창문 정면에 남산타워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작년이 아니고 재작년이었나, 그때도 남산타워 뷰가 보이는 방에 갇혀서 휴가를 보냈었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여러 각도에서 남산타워를 봤다.
메뉴가 나와서 받아왔는데 생각보다 도수가 셌다. 내가 요즘 술을 안 마셔서 그런가?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애 두 명은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지 여행지 이곳저곳을 얘기하며 아주 신나 보였다. 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더랬지. 지금은 여행 같이 갔던 그 친구랑 연락도 끊고 살지만. 부럽다. 얘들아, 늬들은 꼭 오래오래 친구로 잘 지냈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아무래도 오늘 서울 시내 여행코스가 젊은 애들이 많이 가는 핫 플레이스가 아닌 궁궐과 낙산공원 같은 장소여서 더더욱 그랬겠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분들도 근심걱정은 있겠지만 인생의 큰 과제인 취업, 결혼, 자녀 양육을 어느 정도 마치고 이제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는데서 오는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나는 그들처럼 인생의 과제를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시간만을 사는 거 같아서 불안한 게 아닐까.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앞으로 어떤 쪽으로 일(직업)을 변경해야 하나, 만약 퇴사를 한다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이었는데 1박 2일로는 택도 없었다. 빌 게이츠만 해도 생각주간으로 일주일을 보낸다는데 나는 고작 1박 2일로 게다가 타지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을 여행지로 삼고 관광객처럼 이곳저곳 다 둘러보면서 생각주간까지 갖는다는 것은 욕심이었던 것 같다.
이틀 동안 서울을 여행자처럼 돌아다녔다. 나는 MBTI 검사를 하면 XXX'J'로 계획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찐 P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이번 여행은 내 기준으로 꽤나 P처럼 돌아다닌 여행이었다. 원래 세운 계획들이 있었지만 계속 하나둘씩 빼먹거나 코스가 바뀌었으니까. 그래도 P처럼 움직인 덕에 예상치 못한 풍경들과 마주쳐서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