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의 기록 : 이태원 편 (1) - 남산도서관
올해 2022년 3월, 처음 서울탐방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 첫 글이 바로 이태원 편이었다. 그리고 12월부터 3개월 간 서울에서 책과 함께하는 공간-도서관, 책방, 북카페든 책과 함께하는 장소라면 가능-탐방을 계획했다. 동선 상 가까운 구역에 모여있는데 곳을 가야 이동하기 편해서 몇 월에 어느 권역을 갈지 정해야 했다.
일단 내가 서울에서 정한 지역은 크게 세 곳이다. 용산(이태원) 권역, 서울 구도심(종로, 광화문 쪽) 권역 그리고 강남까지 총 세 곳. 12월이 올해 마지막 탐방이니까 올해 처음 이태원으로 시작했던 것처럼 다시 이태원으로 마무리를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이태권 권역으로 결정했다. 사실 3월 초에 이태원 탐방기(겉핥기)를 기재해 놓고도 한 번도 안 가기도 했고.
지난 10월 말에 이태원에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퇴근하면서도 한 번 들러야지 들러야지 했는데 좀처럼 갈 수가 없었다. 그쪽으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추모 분위기가 더 가시기 전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가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1. 남산도서관
[도서관 정보]
* 정식명칭 : 서울특별시교육청 남산도서관
* 위치 : 서울특별시 용산구 소월로 109 (후암동 30-84)
* 운영시간
- 일반 자료실 : 평일 9:00 ~ 22:00, 주말 9:00 ~ 17:00
- 열람실 :
하절기(3~10월) 평일 및 주말 7:00 ~ 22:00
동절기(11~2월) 평일 및 주말 : 8:00 ~ 22:00
* 휴관일 : 정기휴관일은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
그 외는 법정공휴일이나 도서관장이 정한 임시공휴일.
* 입장료 : 없음
* 특징
- 서울시 최초의 공립도서관
- 올해(2022년) 남산도서관 개관 100주년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각 도시마다 꼭 높은 곳에서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유명한 타워나 높은 건물이 있었다. 파리는 에펠탑, 도쿄는 도쿄타워 그리고 뉴욕은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과 같이.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서울 하면 딱 떠오르는 타워나 높은 건물엔 뭐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63 빌딩과 남산타워'라고 말하는 나는 나이가 좀 먹은 축에 들겠다. 왜냐면 요즘은 이 자리를 잠실의 롯데타워가 차지했기 때문이다. 롯데타워가 현재 서울에서 수치 상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해도 나이가 조금 든(?) 어른이인 나에겐 남산타워가 서울을 상징하는 '그 무엇'으로 자리 잡혀 있다. 이래서 어렸을 때의 기억이 무서운 것이다.
몇 년 전, 사계절마다 남산타워 보기를 목표로 삼은 덕에 남산타워를 자주 보러 왔었다. 그때는 운전을 막 시작한 직후여서 운전 연습 겸 차를 갖고 다니다 보니 더 편하게 오갈 수 있었다. 그런데다 용산구로 이사를 하고 나니 출퇴근 길마다 남산타워가 보이고 우리 동네가 아닌 다른 동네에 가도 남산타워가 그렇게 잘 보인다. 그래서 그동안 멀게 생각했던 남산타워와 개인적으로 가까워졌다고 느끼고 있다.
남산타워에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고, 케이블카를 타고 되고, 산 아래에 차를 댄 후 걸어 올라가도 된다. 나는 보통 남산도서관 쪽에 차를 대고 올라갔는데 정작 바로 아래에 있는 도서관에는 가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와야지 했는데 '나의 와야지 리스트'(어디선가 본 것들을 다음번에 가야지 하고 적어두는 리스트)에만 올라 있다가 드디어 온 것이다.
이제는 집에서 버스를 한 번만 타면 올 수 있다. 드라이브하기 좋은, 굽어있는 소월길을 따라 버스가 움직인다. 어제 눈이 왔었는데 오늘은 해가 나서 그런지 눈snow에 햇살이 비쳐 차창 넘어가 눈부시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허리 길을 돌아 나를 내려준다.
도서관.
이름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하는 장소다.
1층으로 입장한다. 5층까지 있는데 1층은 안내 및 갤러리 공간이라 패스하고 천천히 걸어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을 새로 단장했는지 아주 깔끔했다. 마침 올해 2022년이 남산도서관 개관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그래서 100주년을 기념해 숫자 100과 관련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서울 시내를 다니는 100번 버스와 100권짜리 만화책과 미키마우스로 유명한 디즈니도 올해가 창립 100주년이라는 사실까지! 올해를 넘기고 왔으면 100주년을 놓칠 뻔했다.
서울 시내 도서관 탐방 시리즈를 계획하면서 내가 정한 세 군데 권역 중 어느 권역부터 갈까 고민했다. 순서는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단지 올해 3월에 처음 이 시리즈를 시작한 게 이태원이라 올해의 마무리도 이태원으로 하면 좋겠다 싶어서 고른 건데 이렇게 맞아떨어질 줄은 몰랐다.
전시공간 외에는 여기저기 의자가 많이 있어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잡지를 볼 수 있는 코너 안쪽으로 노트북석이 있었다. 그리고 바깥으로 난 창으로는 두둥. 남산타워가 아주 선명하게 잘 보였다. 여기가 바로 남산타워를 잘 볼 수 있는 숨겨진 명당이었던 것이다.
3층으로 올라가기 전, 복도 저어 쪽 끝으로 가니 북카페라는 공간이 있어서 들어가 봤다. 카페 분위기로 꾸며진 휴게공간 같은 느낌이다. 남산도서관 근처의 동네서점들과 콜라보해서 그 서점에서 소개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손을 뻗어 집어낸 책에서 <사적인 서점>을 운영하고 계신 정지혜 님이 쓰신 책을 딱 골라냈다. 어쩌면 책에 나온 구절마다 전부 다 내 마음 같을까. 나도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층 구경을 마치고 3층으로 올라갔다. 각 층마다 로비에 작게 전시공간들이 있었다. 3층에는 박완서 문학에 나온 꽃들의 의미를 전시해 놓은 공간과 우리나라 작품들 중 다른 언어로 번역된 책들의 샘플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인문사회 분야 책들만 모아놓은 서가로 입장했다. 다른 도서관은 이 공간 정도가 도서관의 서가 전부인데 여기는 구획이 나뉘어 있어서 그런지 훨씬 더 책이 많고 다양한 느낌이었다. 서가를 지나다 한쪽에서 줄리언 반스의 책을 발견했는데 판형이 너무 커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펼쳐보니 글씨가 엄청나게 컸다. 알고 보니 이게 큰 글씨판형이라고 눈이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나오는 책인데 그동안 도서관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지만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 마치 영화의 배리어프리 버전 같은 건가 보다.
원서 코너도 꽤 많았고 한국문학 해외번역도서 코너도 있었다. 키릴문자가 있는 걸로 봐서 러시아어로 번역된 책 외에 영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로 번역된 책들도 있었다. 언젠가는 빌려봐야지. 그리고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의 책을 발견했는데 어쩌다 펼친 페이지에 그녀와 그녀의 아빠와의 에피소드가 짧게 실려있었다. 안 그래도 어젯밤 9시 반쯤 아빠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는 나한테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고 나도 그렇다. 우리는 서로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며 살갑게 굴지도 않는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얼른 전화를 받았더니 아빠가 오늘 눈 오는데 집에 잘 들어갔냐고 했다. 나는 오늘 밖에 나갔다 오긴 했지만 어제부터 휴가였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몇 마디 정도 대화가 더 오가고 전화를 끊었는데 통화한 시간이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고 수많은 페이지 중 딱 이 페이지를 봤다는 게 우연 같지 않게 느껴졌다. 계실 때 잘해야지.
그리고 4층으로 올라가니 이번엔 옛날 교과서 전시를 하고 있다. 농업, 축산업, 재봉에 관련된 책도 있었다. '상업실천'이라는 정말 제목만 봐도 실용적으로 보이는 과목까지. 4층엔 사회과학 쪽 서가랑 저 안쪽에 자연과학, 예술 쪽 서가가 나뉘어 있었다. 사회과학 쪽 책은 즐겨 읽진 않아서 적당히 둘러보고 나왔다.
다음 목적지로 가기 전에 잠깐 앉아서 남산도서관 둘러본 소감을 적고 가려는데 우연히 앉은 서가의 이곳 또한 남산타워가 아주 잘 보이는 명당이다. 남산타워 위쪽은 좀 잘리긴 해도 널따란 창문 너머로 남산타워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렇게 앉아서 언제까지고 마냥 바라만 봐도 좋을 것 같다. 이사 가기 전에 부지런히 놀러 와야지. 버스 타면 한 번에 올 수 있는 곳인데. (라고 썼지만 이로부터 5개월 뒤에 이사를 했고 그동안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또르르...)
<서울탐방 제10탄 : 책과 함께하는 공간 탐방기 1부> 다음글인 '서점 그래픽'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