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를 두 가지 언어로 읽으며 (1)

영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같은 책 읽기

by 세니seny

2023년 시점에 쓴 글입니다.


시작은 이랬다. 나는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외국어 공부하기를 좋아해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 두 가지를 합친 원서 읽기를 약 20여 년 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그러다 떠오른 생각.


같은 책을 다른 언어로,
동시에 읽어보는 건 어떨까?


이미 같은 방법으로 <어린왕자>를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어떤 책으로 할까? 하고 책을 찾다가 <오즈의 마법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분명히 아는 동화인데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저 원서 읽기를 위한 책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게 읽어볼수록 생각보다 곱씹을 만한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다. 정말 어린이용 동화 맞아?


영어와 일본어 두 가지 언어로 읽었는데 먼저 일본어로 읽고 그다음에 같은 분량을 영어로 읽었다.


그런데 일본어로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됐던 부분(단어나 구문)이 영어로 읽으면 영어로는 아는 단어/표현이어서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분량을 읽어도 영어가 더 빨리 읽혔다. 영어는 뜻을 몰라도 일단 단어를 소리 내어 읽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어는 뜻을 모르는 데다 한자까지 읽을 수 없다면 영어처럼 그냥 읽고 넘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도 이상하게 일본어를 읽는 게 분량이 같더라도 오래 걸렸다. 일본어 책은 세로 쓰기로 되어 있어서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는 점도 있다.


동시에 같은 책을 다른 언어로 읽었더니 소리 내어 읽은 두 언어가 내 안에서 섞이기 시작했다. 마치 바닐라맛과 초코맛이 반반씩 나오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 혓바닥으로 아이스크림 표면을 슥슥 훑으면서 두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동시에 먹어보는 것 같이. 일본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읽어낸 같은 이야기가 내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섞여서 한국어로 해석되는 것이다.


외국어 공부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를 느꼈지만 내용 자체에서도 얻은 게 많았다.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강아지 토토와 함께 작은 시골마을에서 살던 도로시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갑자기 낯선 곳에 떨어지게 된다.


첫째, 도로시와 강아지 토토를 제외한 캐릭터는 다들 하나씩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다.


- 뇌가 없는 허수아비
- 심장이 없는 양철인간
- 겁쟁이 사자

낯선 땅에 떨어진 도로시의 곁에는 토토와 뇌가 없다고 하지만 이상하게 똑똑한 허수아비, 심장은 없다고 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양철맨과 생긴 것과 달리 겁이 많지만 용기를 낼 줄 아는 사자까지 너무나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이들과 도로시는 일행이 되어 소원을 빌기 위해 마법사 오즈를 찾으러 간다.


그런데 허수아비는 뇌가 없다고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꽤 똑똑하다. 양철인간은 심장이 없다고 해서 마음이 차가울 거라 생각하지만 따뜻한 캐릭터다. 사자는 겁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자기의 등치와 겉모습을 활용해 일행들을 안심시키려 한다. 생긴 것과 다르게 겁쟁이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대응하려고 하는 태도에서 분명 용기가 느껴졌으니 결코 겁쟁이라고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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