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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Nov 26. 2023

서울탐방 제11탄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방문기

2023년 1월의 기록 : <앙드레 브라질리에 전> 관람

이전 글인 <서울탐방 제11탄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방문기>에서 이어집니다.




앙드레 브라질리에 전 입구. (2023.01, @한가람디자인미술관)


      미적감각도 없고 미술은 잘 모르는 나지만 가끔 회화 전을 보러 다닌다. 난해한 현대미술은 잘 모르겠다. 내가 이해 가능한 수준은 비교적 주제가 명확한 회화(그림)다. 인스타에 광고가 떠서 알게 된 전시지만 그림이 내 취향이라 꼭 보러 가려고 마음먹고 오랜만에 한가람미술관에 오게 되었다.


     로비에서 좀 기다리다가 도슨트 시간에 맞춰서 미리 5분 정도 전에 입장해서 기다린다. 평일 오후 2시인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역시 겨울방학이라 그런가 보다. 



아름다운 것들을 볼 때
그 순간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자 의무다.
(by 앙드레 브라질리에)



     화가 소개글 중에 있던 구절인데, 이 구절을 보자마자 벌써부터 이 화가가 좋아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도심 한복판을 걷다가 걸음을 자주 멈추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니까. 도슨트님 말로는 프랑스 사람들은 다 아는 작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알려진 편이 아니라 잘 모른다고 했다.


    화가는 프랑스의 소뮈르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그 지방에 유명한 것이 두 가지 있는데 바로 와인과 말(馬)이라고 한다. 특히 말(馬)은 주제로서 그림에서 많이 등장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화가는 93세의 현존작가로, 11살이던 1940년에 덩게르크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그린게 첫 작품이라고 한다. 대부분 내가 보러 오는 전시들은 이미 작가 사후에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신 분의 전시를 보고 있다니 느낌이 남달랐다. 살아있는 사람이 그린, 아직 화가의 붓질이 덜 말랐을지도 모를 살아있는 그림이니까.


     앙드레 브라질리에 그림의 주제는 크게 4가지로 구분되고 이번 전시회 또한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음악, 말, 자연풍경 그리고 여인. 그래서 이 주제와 색감을 중심으로 감상하면 좋을 거라고 했다. 각 섹션별로 기억에 남는 그림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려고 한다.


<섹션 1. 축제로의 초대> : 음악 


     <인사하는 오케스트라>라는 제목을 가진 그림은 오케스트라가 올라와 있는 무대가 그려져 있다. 단원들 모두 인사하려고 일어나 있는 모습이다. 나는 무대를 그리고 무대에서 '인사를 한다'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갑자기 마스크 안쪽 너머 콧등이 시큼해졌다. 목에서 무언가가 올라왔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울컥했다.


     비록 아마추어였지만 나도 그림 속의 그들과 똑같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무대에 섰었다. 내가 느꼈던 그 기분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아내인 샹딸을 그린 그림에서도 아내가 입고 있는 옷과 주변의 물체가 다 같은 색깔로 녹아들었다는 의미에서 색의 경계가 없었는데 오케스트라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엔 당연하게 경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배경색과 경계가 없어질 때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섹션 2 : 풍경이 말을 걸었다> : 자연, 말


     화가는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화가의 영향을 받아 1955년부터 말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봄부터 계절의 흐름대로 작품이 배치되어 있다. 자연 냄새를 위해 나무껍질도 바닥에 뿌려두었다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냄새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이 섹션에서 처음 소개한 그림은 <루페뉴의 저녁>이었다. 루페뉴 역시 지명인데 우리는 잘 모르는 프랑스의 소도시라고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하늘에 펼쳐져 있는 핑크와 파란색이다. 이 지역의 저녁 하늘을 대비되는 두 색깔로 표현한 것이다. 핑크빛 석양 그리고 파랑. 


     그림 오른쪽 하단에는 말이 그려져 있는데 말의 색깔도 핑크와 파랑이다. 분홍색과 파란색 털을 가진 말이 실제로 어디 있을까? 이 작품의 시간대는 해 질 녘으로 빛과 어둠이 경계에 놓인 시간이다. 그런 석양 아래에서 뛰놀고 있는 말들도 이 시간에 물들었기에 핑크와 파랑으로 칠한 거라고 했다. 맞다. 노을이 강력하면 그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노을과 같은 색에 휩싸이게 된다. 


     브라질리에는 여름을 ‘창문을 뛰어넘게’하는 계절이라고 말했다. 여름 풍경은 창문을 뛰어넘게 할 정도로 방랑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고. 이 <루페뉴의 저녁>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 아무래도 확실하게,
  이 화가를 좋아하게 될 거 같아. 



     우리 집은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저녁에 나와 동생만 있는 시간이 많았다. 동생은 어렸을 때 집에 엄마가 없어서 아쉬웠다고 했다. 동생이 나보다 3살이나 어리니 동생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엄마가 없어서 오히려 좋았다. 일하는 엄마는 힘들어 보이긴 했어도 집에 없기 때문에 나에게 덜 간섭했고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인 성향이 강했던 나에게는 그게 잘 맞았다.


     엄마가 집에서 전업주부로 있었다면 자식들에게 더 많이 신경 쓰고 더 많은 사랑을 주었으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우리 엄마의 성향 상 의도한 건 아닐 테지만 그 사랑을 한 꺼풀만 뒤집으면 집착이나 과도한 관심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차라리 엄마가 집에 없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저녁 시간에 동생과 둘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 우리 집은 남향인 데다 건물 바로 앞에 시야를 가로막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베란다에 나가면 노을이 참 잘 보였다. 그래서 나는 참 어린이답지 않게 초등학생 때부터 노을 지는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을 녘인데 나도 이런 순간을 포착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모자라지만 어떻게든 문장으로 기록해 보려 발버둥 치고 그림은 못 그리니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서라도 촬영 버튼을 눌렀지만 내가 생각한 것만큼 결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가 부러웠다. 분홍빛의 노을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림에 색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략 3,4개의 색이 모든 걸 표현한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해 질 녘 직전의 노란빛이 물든 바닷가 풍경. 말들이 달리고 있다. 나는 이런 풍경을 몇 번이나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다. 어디선가 분명 실제로 봤을 거다. 다만 화가와 달리 그리지 못했을 뿐.


<섹션 3 : 그녀> : 아내이자 뮤즈인 샹딸 그리고 여인들

강렬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미친 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화가는 자신의 뮤즈와 결혼했다고 말했다. 도슨트가 둘에 대한 이야기도 해줬는데 화가는 집안에 예술가들이 많은 집안으로 둘은 로마에서 처음 만났고 파리에서 재회했다고 한다. 둘이 가까워진 결정적 계기는 예술을 바라보는 취향이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는데 지금도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결혼 전에는 엄마와 여동생을 많이 그렸는데 결혼하고부터는 그 대상이 샹딸로 넘어갔다고 한다.


     아까 도슨트가 설명해 준 검은 옷을 입은 샹딸이 제일 우아하고 멋있다. '꽃과 여인'이란 주제는 굉장히 평범하고 진부할 수도 있는데 그런 느낌이 없다. 샹딸을 그린 거는 60,70년대 작품으로 조금 오래된 그림인데 샹딸이 젊은 시절의 모습이다.


매표소 옆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샹딸' 이미지. (@전시장 바깥 로비)


    샹딸의 시선은 약간 아래로 향해있는데 성녀처럼 보인다. 그리고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데 앉아있는 의자도 검은색이라 잘 구별이 안 간다. 앞에 놓여 있는 테이블을 보고 앉아 있는 거고 그러면 이 검은 게 의자구나 하고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즉 옷이 주변까지 연장되어 있다는 것으로 그녀의 영향력이 그녀 주위로 넓게 퍼진다는 거다. 이건 모든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테이블 위에는 꽃이 놓여있다. 그림마다 튤립, 장미, 백합 등 놓여 있는 꽃이 다른데 이게 다 꽃말이 사랑과 애정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래서 각 꽃의 꽃말을 찾아보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작품을 그린 시기와 그림에 어떤 꽃이 그려져 있는지 분석하면 그림에 대해 좀 아는 척할 수 있다는 꿀팁을 도슨트님이 전수해 주었다.


<섹션 4 : 삶의 찬가> : 4가지 주제가 종합적으로 놓인 섹션


     여러 그림이 다 좋았지만 특히 <쉼 le repos>라는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심플한 그림인데 그게 마음에 퐁 하고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느낌.    


      오늘 전시 관람객 중엔 수녀님도 계시고 스님도 계셨다. 갑분 종교 대통합. 미술관에서 종교복을 입은 종교인들을 본 건 처음이었는데 심지어 같은 전시에서 같은 시간대에 본 재밌는 날이었다. 


     전시가 끝나고 나가는 문 앞에 화가가 삐뚤빼뚤하게 거의 그리다시피 해서 한글로 '여러분 사랑하세요'라는 멘트가 적혀있었다. 이것도 살아있는 화가의 전시회이기에 가능한 이벤트겠지. 마음 한구석이 찡해졌다. 


화가가 그린(?) 삐뚤빼뚤한 손글씨. 여러분 사랑하세요.


     인스타에 뜬 그림을 봤을 때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일거란 생각은 했지만 와서 직접 보니까 더 좋았다. 게다가 나도 자연풍경 보는 거 좋아하고 음악 좋아하고 특히나 해 질 녘을 좋아하기에 그림을 보고선 반해버렸다. 제일 마음에 쏙 들었던 루페뉴의 밤은 굿즈에 없어서 아쉬웠지만 요즘 미니멀라이프 지향 중이라 굿즈샵 와도 물건 진짜 안 사는데 이것저것에 머그컵까지 사버렸다. 전시회 입장료는 2만 원인데 굿즈를 4만 원어치나 샀다. 하하하.






     굿즈까지 알차게 사고 나는 이제 어디로 간다? 바이올린 연습실에 간다. 연습실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해서 비타민 스테이션을 통해 예술의전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발견한 것.


서리풀 악기거리에 대한 안내판.


      이 동네는 예술의전당이 있어서 그런지 일대에 악기점이 많고 자연스럽게 그런 거리가 형성이 된 것 같다. 그런데 횡단보도 앞에서 아예 서초구에서 만든 듯한 '서리풀 악기거리'라는 안내판을 발견했다.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악기 거리 골목을 들어가 봤을텐데 해 떨어질 시간이라 추워지기도 하고 얼른 연습하고 집으로 가야 해서 들어가보진 않았다. 버스를 타기 위해 큰 대로변을 따라 쭉 걸었다.


     이 길은 서울의 다른 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많이 펼쳐지는 길이다. 악기사들이 보이고 고급 피아노 악기점이 보이고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집하는 포스터도 보인다. 발레샵도 눈에 띄고 작은 공연장과 그곳에서 있을 공연을 안내하는 포스터들이 붙어있다. 심지어 레스토랑 이름마저도 라 칼라스다. 유명한 성악가 이름인 마리아 칼라스(미국에는 마리아 칼라스 홀도 있다)의 이름을 땄겠지? 괜히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올 것만 같이 두근거리는 발걸음으로 거리를 걷는다.


    나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했고 음악을 사랑하는 아마추어로서 연습을 하러 바이올린 연습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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