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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탐방 에필로그 : 이태원 (1)

2024년 3월의 기록 (1) : 리움미술관

by 세니seny

2022년 3월부터 매월 서울의 한 군데씩을 방문하던 서울탐방 시리즈는 공식적으로 2024년 2월까지, 총 24개월간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종료했다.


그 덕에 그동안 나의 '가야지 리스트'에 들어가 있던, 즐겨찾기만 해두고 언젠가는 가겠지 했던 곳들에 많이 가볼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었다.


원래 마지막 편(24탄)을 처음 시작과 같은 이태원으로 마무리하려고 했었는데 날씨 등 여러 상황 때문에 다른 스케줄로 바꿨었다. 그 덕에 24탄도 재밌는 하루를 보냈지만 어떻게든 이태원으로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2024년 3월의 어느 날 이태원에 방문하게 되었다.




이태원이라고 해봤자 이태원의 초입쯤 될까.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 있었는데 못 가봐서 오늘을 기회로 삼아 가보기로 했다. 전날까지도 적절한 코스를 세우지 못하다 안쪽인 해방촌까지 가보려고 했는데 괜히 부담감 때문에 억지로 가지 않기로 했다. 하필 배탈이 심하게 나서 컨디션도 별로였는데 오후에 비도 온단다. 이렇게 한 군데쯤은 남겨둬야 다음에 갈 곳도 있는 거겠지.


배탈 때문에 병원에 들렀다가 거기서 강남역으로 출발했다. 여기서 리움미술관에 가는 가장 편한 교통편은 400번 버스를 타는 것이다. 오랜만에 들른 강남역 지하상가다. 작년까지만 해도 출퇴근길 동선에 있어서 하루에 두 번씩 들르던 곳인데 꽃집은 여전히 잘 되고 있구나. 역시 여기가 가성비 제일이다. 만오천 원에 저렇게 풍성하게 혹은 이쁘게 디피 된 곳은 여기밖에 없다.


생각해 보면, 집에 꽃을 꽂아두는 취미가 생긴 것도 이 길을 지나다녔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사를 가고 출퇴근길이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이 꽃집 앞을 지나가지 않아도 집에 꽃을 두는 습관을 유지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사는 곳 근처나 지나다니는 길에는 마음에 드는 꽃집이 없었고 지난겨울 내내 집에 꽃을 두지 않았다. 지금은 여정의 시작이라 꽃을 살 수는 없지만 이따 집에 길에 여기 들를까?라는 생각을 했다.


익숙한 버스를 타고 강남역을 출발한다. 2년 동안 출퇴근길을 함께 했으니 눈에 익은 길이라 창 밖의 시야에 금방 적응한다. 이제 곧 봄이 시작되겠지.


가만 보면 나는 여태 가을에 취업하고 또 가을에 이직해서 취업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봄에 그만두는 패턴이다.


패턴을 깨는 것. 가을은 원숙의 계절이자 한 해를 마무리하는 느낌이지만 봄은 시작의 기운과 새로움이 물씬 풍기는 계절이다. 나는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다. 잿더미인 줄 알았던 곳에서 불사조가 새롭게 태어나듯이.


리움미술관에 가려면 전에 살던 곳을 지나가야 해서 기분이 미-묘하다. 한때는 퇴근길이었던 이 길을 아주 오랜만에 낯선 여행자로서 다시 오는 기분이란. 리움미술관도 굳이 따지자면 전에 살던 곳 근처에 있어서 한 번은 와볼 법도 했는데 이제야 와본다. 마침 핫한 전시도 있다고 해서 내용도 제대로 안 보고 예약했다. 그냥 건물만 보고 돌아갈 게 아니라면 미술관에 왔으니 전시를 보는 게 좋겠지.


리움미술관 외관과 들어가는 길. (2024.03)


난 '미알못'(미술을 알지 못하는)이라 회화 전시 그것도 유명한 거 아님 안 보는데 이건 회화 전시는 아니다 보니 나에겐 허들이 있었다. 게다가 내가 소리에 예민한데 전시장 자체가 정체불명의 소리로 둘러 쌓여있어서 괴로웠다.


전시장에 놓여있는 여러 오브제 보다 이 오브제 사이를 걸어 다니는 관객들이 하나의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창문이 투명한 색이 아니라 약간 노란빛이 나는 소재로 되어있었다. 그런데다 허공에 공기를 넣어놓은 생선 모양의 풍선들이 띄워져 있었고 알 수 없는 소리들까지 이 공간을 메우고 있으니 이곳이 마치 비현실세계처럼 느껴졌다.


<필립 파레노 : 보이스> 전 @ 리움미술관. (2024.03)


보통 다른 전시에서는 내가 그림 속에 들어가고 싶어서 아무리 내 작은 눈을 크게 뜨고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나는 그저 그림 밖에 서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건 누가 뭐래도 내가 미술작품 안에 온전히 들어와 있었다.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느꼈다.


불규칙하게 들리는 소리는 꼭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인공 마법사 해리가 파슬텅(뱀의 언어) 할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뱀의 언어인 파슬텅은 우리 인간이 듣기엔 쉭, 쉭 소리만 들리는 흔히 뱀이 혀를 차는 기분 나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다.


전시장에 가만히 서서 귀로는 소리를 들으면서 잊어버리기 않게 오늘 여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는 전시장을 천천히 산책했다. 그야말로 비유가 아니고 진짜 산책이었다. 그렇게 한 바퀴를 쭈욱 둘러보고 나왔다.


리움 미술관 외부 조형물. (2024.03)


미술관 밖에 조형물이 있었다. 아까 들어올 때 사람들이 사진을 찍길래 뭔가 했는데 이거였다. 바깥으로 나오니 이태원 아래쪽도 내려다 보이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었다.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해 볼까?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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