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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탐방 에필로그 : 이태원 (2)

2024년 3월의 기록 (2) : 내가 꿈꿔왔던 수프가게와 비슷한 가게

by 세니se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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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사과 조금 먹고 여태 아무것도 안 먹었다. 비록 배탈은 났지만 그거랑 별개로 먹은 게 없으니 배가 고프고 기운이 없다. 근처에서 브런치를 먹을까 하다 한 곳을 발견했다. 리움미술관에서 큰길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었는데 아까 오다가 본 가게였다.


점심 한 끼는 좀 가벼운 게 먹고 싶어서 샐러드나 토스트를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차, 스프를 단독 메뉴로 파는 가게를 발견한 것이다. 아무리 샐러드 가게라 해도 스프를 단독으로 파는 곳은 잘 없을뿐더러 스프란 대부분 메인 메뉴에 붙어서 같이 나오거나 있어도 조그만 사이즈로만 판다. 결코 1인분이 될 수 없는 양. 특히 우리나라에서 스프는 어딜 가도 메인 메뉴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는 가격대는 좀 있었지만 스프를 단독으로 팔았다. 다른 가게에서 스프만 시킨다면 사이드 디쉬로 취급되는 스프만 시켜 먹기 미안한 마음과 함께 덤으로 눈치도 보인다. 그런데 여기는 스프만 사 먹어도 가게 주인한테 욕먹지 않고 내가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토마토 스프를 주문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빵 한 조각과 함께 스프가 나왔다.


깔끔했던 카페 내부와 소박한 토마토 스프. (@루트에브리데이, 한남점 / 2024.03)


그러더니 아마도 주인인 듯한 점원분이 와서 테이블이 안 닦여 있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난 그저 별생각 없이 앉았고 사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나쁘지 않았던 기분이 풀렸다.


그러다 떠올랐다. 내가 언젠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스프를 파는 가게가 있으면 좋겠다고 원형을 떠올렸던 그곳과 꽤 흡사한 느낌의 가게라는 사실을. 물론 이곳은 상상 속의 내 가게보다 좌석이 촘촘했고 스프만 단독으로 파는 가게는 아니었다. 그리고 고객들과 1:1로 교류하는지 아닌지까진 모르겠지만.



작은 규모의 가게에 적어도 스프를 단독메뉴로 파는데 스프도 한 종류가 아니라 두세 종류나 있었다. 싹퉁머리 없는 아르바이트생이나 손님에게 냉랭한 사장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가게 주인이 나를 왕처럼 떠받들어 주길 원하는 게 아니다. 들어오고 나갈 때 서로 인사를 하고, 나는 주문을 하고 음식을 잘 받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 혹여나 서빙 중 빠진 게 있으면 미안하다고 하고 주문 내역에 맞게 음식을 내주면 된다. 그거면 된다.


내가 오늘 속이 안 좋았기에 핫플레이스인 이태원에 와서도 양이 많고 플레이팅이 이쁘고 번드레레한 브런치는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면 결국 그거라도 시켜서 먹으면 반 이상 남겨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그 와중에 배는 고프니까 뭘 먹긴 먹어야 해서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마침 눈앞에 딱 나타난, 적당한 가격에 수프 한 그릇으로 요기를 때울 수 있는 곳이었다. 가게를 평가할 수 있는 모든 면의 점수ㅡ메뉴, 가격, 위치, 친절도 등ㅡ가 육각형에 가깝게 분포되어 있어서 좋았다. 요즘 이런 곳은 매우 흔치 않다.


사실 스프맛 자체는 특별할 것 없는 그냥 스프맛이었다. 심봉사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그런 맛집은 아니었다. 시판하는 오뚜기 토마토 스프를 따뜻하게 끓여만 줬대도 ‘감사합니다’하고 먹어야 할 맛이었지만 오늘의 나에게는 최고의 식사였다. (혹시라도 진짜 솥에 넣고 몇 시간씩 끓인 거라면 데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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