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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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KBS 시청자 게시판에 청원도 넣었다. 바쁜 와중에도 홈페이지에 접속해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에 열심히 동의하기도 눌렀지만 결국 그 결정을 뒤집지는 못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업무 특성상 12월 말 ~ 1월 초중순이 제일 바쁜 시즌이다. 야근은 기본이고 1년에 한 번도 안 하는 주말 근무에 1월 1일도 근무하는 거지 같은 스케줄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러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어느새 마지막 방송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회사일에 허우적대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다음 주가 마지막 방송이었다.
수능특집 편 1교시 국어영역에서 '시청률이 낮은 원인에 대해 논술하시오'라는 주제에 맞게 모두 글을 쓰는 시간이 있었다. 그중 우재가 피라미드 조직처럼 한 명이 한 명한테 전파하고 그럼 걔가 또 재밌다고 두 명한테 전파하는 일명 피라미드 전도법을 예로 들었었다. 되게 웃긴 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 또한 이미 그러고 있었다는 거다.
난 성격이 샤이해서 내가 좋아하는 게 있어도 잘 추천하고 다니는 편이 아니다. 대체로 취향이 마이너 하다는 이유도 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재밌기도 하고 충분히 대중성이 있는 거라고 판단돼서 주위 친구들에게 떡밥을 던졌는데 크게 반응이 없었다. 나는 드라마보단 예능을 찾아보는 편인데 안 그런 사람도 있고 예능이라고 해도 유튜브만 보는 사람도 있고 다 다르구나 싶어서 그냥 혼자 좋아해야지 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감히 베프라고 부를 수 있는 친구 하나를 만나서 얘기하다가 나 얼마 전에 홍김동전 뮤비 찍으러 다녀왔다고 했더니 자기도 요새 그거 재밌게 보고 있다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내가 지난번에 만났을 때 강추해서 나중에 한참뒤에 생각나서 봤는데 재밌어가지고 푹 빠졌다는 것이다!
내 친구도 나랑 성격이 비슷해서 그런지 이런 걸 좋아한다고 호들갑 떨고 나대는 편이 절대 아니다. 한마디로 요즘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우직함을 가지고 있는 친구.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카톡 하나만 보내서 '야, 요새 네가 추천해 준 홍김동전 재밌게 보고 있어~'라고 한 마디만 해줬어도 같이 뮤비 촬영현장 가는 거였는데. 아무튼 본의 아니게 한 명을 입덕시키긴 했다.
그렇게 입덕시킨 친구가 있어서 함께 종영의 아쉬움을 달래다 드는 생각. 어떻게든 막방날은 야근 안 하도록 스케줄을 짜서 친구랑 만나서 같이 볼까? 아무래도 혼자 보긴 쓸쓸하기도 하고 집에 텔레비전도 없으니 텔레비전이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갈까? 친구도 작년에 독립을 해서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그 생각만 하고 바쁘고 어쩌다 보니 말할 힘도 없었는데 누가 팬카페에 글을 올렸다. 같이 모여서 마지막 방송을 보면 어떨까요?라고. 거기에 댓글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하면서 모임이 추진되었다. 나도 얼른 신청을 했고 친구는 카페는 가입을 안 해서 동반인 자격으로 친구까지 신청을 마쳤다.
원래 퇴근시간보다 조금 일찍 퇴근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만나서 밥을 먹고 모임 장소로 이동했다. 도착했더니 이미 한 열 분이 와계시고 음식과 음료수 등 먹을 걸 엄청 많이 깔아 놓으셨더라. 밥 먹고 와서 지송.
다들 처음 뵙는 분들이지만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동하는, 이런 자리에 여러 번 가본 나는 알고 있다. 여기서는 무슨 말을 해도 다 이해해 줄 거라는 것. 이때만큼은 나를 가장 잘 아는 가족도, 친구도 그 무엇도 필요 없다는 것을. 스탭님의 비하인드썰도 듣고 영상도 보고 종영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하다 보니 어느새 본방시간이 되었다.
자막 하나하나, 화면 하나하나 넘어갈 때마다 다들 깔깔대다가 훌쩍거리다 배를 잡고 웃다가 욕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여 남짓한 방송이 끝나버렸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느껴졌다.
이제 나의 목요일은,
내 일주일은 누가 책임져주지...?
물론 요즘 재밌는 거 너무너무 많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나를 이렇게 무방비로 웃게 한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리고 제약 속에서도 힘겹게 피워낸 꽃을 보는 것에 대한 보람이자 뿌듯함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아무나 손쉽게 방송을 할 수 있다. 유튜브만 해도 아무 소재를 들고 심의규정 준수 같은 거 필요 없이, 아주 거리낌 없이 별 것들을 소재 삼아 쉽게 방송을 한다.
다섯 명의 멤버와 공중파 방송이라는 제약이 있는 환경. 게다가 거기에 양질의 웃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지켜 가면서도 충분히, 차고 넘치게 재밌고 좋았다. 근본적으로 방송사에서 타겟팅하는 시청률과 이 프로그램이 타겟팅하는 시청자 범위가 애초에 다르다 보니 둘은 양극단에 서있는 평행선 같은 관계다. 절대 성립될 수 없는 조건.
방송이 끝나고도 지난 방송을 틀어놓고 우리끼리 코멘트도 하고 인증샷도 찍었다. 이후의 시간을 위해 게임도 준비하셨다는데 나는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집에 가려면 또 한참을 이동해야 돼서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아마 집에서 혼자 봤으면 많이 쓸쓸했을 거 같다. 그리고 더 많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도 훌쩍거렸지만 그래도 같이 욕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울었어도 금방 다시 웃었다. 내가 그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한마디는 딱 이 말이면 충분할 것 같다.
출연진분들
그리고 제작진분들,
우리 정말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