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뜨거운 안녕>을 보고 막내 외숙모의 명복을 빌며
(2013년 시점에서 쓰인 글입니다.)
20대 때 매년 8월에 열리는 제천 국제 음악영화제에 갔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생긴 그 해에도 당연히 갔었다. 그 해 의림지 야외상영에는 <뜨거운 안녕>이라는 영화가 배정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볼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영화 개봉을 앞두고 홍보 차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주연배우들 때문에 대강의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 다름 아닌 영화의 주제가 생의 마지막을 앞둔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영화의 배경이 호스피스 병동인 만큼 반드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떤 의미로는 뻔할 수도 있는, 눈물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영화임을 짐작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대해서는 얼핏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알게 되고 실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은 폐지되어서 없어진 KBS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을 통해서였다. 호스피스 병동 편을 처음부터 본 것은 아니었는데,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호스피스 병동을 방문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출연자들은 환자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주로 코미디언인 멤버들이 많은 만큼 환자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 말미에 다음과 같은 자막이 떴다.
오늘 방영분은
10월 00일에 촬영되었으며
방송에 출연하신
OOO 씨와 XXX 씨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촬영을 하고 방송이 나가는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 동안에 벌써 세상을 뜬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곳이 바로 호스피스 병동이었다. 생의 마지막 기로에 서서 조금 더 편안한 죽음을 위해 잠시 머물러 있는 곳. 우리가 단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시행하는 많은 과정들을 뿌리치고 아프면 아픈 대로, 죽음이 다가오면 다가오는 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곳.
내가 호스피스 병동 편을 처음 봤을 땐 다른 시청자들처럼 슬프다고 생각했고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첫 번째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라식 수술을 하기 위해 미리 수술 전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녹내장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안과에 가서 추가로 검사를 받아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내가 사는 지역에 있던 비교적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평소 그렇게 긍정적인 편은 아니지만 젊었고 살면서 죄지을 만큼 못된 짓은 하지 않았으며 건강에도 자신 있었다. 그때까지의 인생에 그렇게 나쁜 일들이 많이 닥치진 않았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검사 후 2주 뒤 방문한 병원에서 너무나도 정확하게 녹내장이 맞다는 진단을 듣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을 멀뚱 거리고 옆에 서있던 엄마에게 의사는 내가 지금 보이는 반응이 지극히 당연한 거라고 했다. 솔직히 그 젊은 의사 선생님,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의대 수업 중에는 의사의 윤리랄까 환자는 대하는 방식에 대한 수업 같은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수업에서는 저렇게 싸가지 없게 들리는 식으로 말하라고 가르치는 걸까?
녹내장이라고 해서 (개인의 진행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당장 눈이 머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나는 아직 나이가 젊으며 앞으로 살날이 많으니 그렇기에 더더욱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살 날이 많다는 것이 이런 식으로 나쁜 의미로 다가오기는 처음이었다. 오히려 이럴 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야 좋은 거였나 보다. 어차피 곧 죽을 테니 관리하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일 테니까.
나는 녹내장 진단을 받고 나서 바로 얼마 전에 봤던, 호스피스 병동 방문 편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당연히 처음에 봤을 때 즉 병을 진단받기 전과 같은 반응일 순 없었다. 빼빼 마른 50대 환자의 사연을 들으면서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멤버들이 위문공연을 할 때 잠깐 웃었다가 다시 프로그램 말미에 뜬 자막을 보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살아있던 사람들이 방송이 준비돼서 실제 전파를 타는 그 사이에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다니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 나는 그 사람들과 다르게 당장 목숨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결국 같은 게 아닐까?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세상과 만날 수 있을까? 머릿속에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감이 확대 재생산되며 울어버렸다. 그렇기에 영화 <뜨거운 안녕>을 보기를 망설였다. 하지만 작년에 의림지에 갔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결국 가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의 고통보다는 결국 내가 가진 고통이 훨씬 크게 느껴지는 법이라 걱정이었지만.
이런 불편한 마음에 하나 더 추가된 건 이 영화를 보기 전 오후에 엄마로부터 받은 메시지 한 통이었다. ‘어제, 오늘 하던 막내 외숙모가 돌아가셨어. 엄마랑 아빠랑 내일 장례식장 내려갔다가 발인까지 보고 올게.’
막내 외숙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지도 까마득했다. 아마 내가 학생이던 어느 현충일 그러니까 6월 6일에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고 해서 엄마랑 고속버스를 타고 엄마의 고향에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때가 막내 외숙모를 마지막으로 본 것 같은데 그것도 십 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그날은 마침 공휴일이어서 엄마는 나를 데리고 갈 수 있었고, 다음날은 평일이었으므로 병원만 들렀다가 다시 저녁에 서울로 올라왔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막내 외숙모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큰 외숙모야 부모님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많이 뵀고, 둘째 외숙모는 음식 솜씨가 좋아서 가끔 음식을 받아와서 먹었기 때문에 인상에 많이 남아 있었다.
머리가 길고 예쁘장했던 막내 외숙모는 젊은 시절 지금의 남편이 된 막내 삼촌과 삼촌 친구 사이에서 삼각관계의 여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나(는 엄마의 부연설명)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고 남편과의 관계는 물론 시댁과 친정과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모든 관계에서 일방적인 잘못만 있는 경우는 드무니 여기엔 막내 삼촌의 잘못도 있다. 여하튼 이혼하네 마네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 전부터 술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게 결혼 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가정생활이 원만치 않으니 술에 더 의존하게 되었던 듯하다. 엄마가 볼 땐 알코올 중독이 아니었을까 싶었다고. 명절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보면 안색도 하얀 데다 손도 덜덜 떨고 있길래 몸이 안 좋아서 그런가 보니 쉬라고 했다는데 실제 사인도 간경화였고 손을 덜덜 떨던 것은 술 때문에 온 수전증이 아닐까 싶다고.
인생, 참 알 수가 없다. 약 20년 전, 그때의 막내 외숙모는 드라마처럼 두 남자 사이에서 사랑받다 결국 그중에 한 명과 결혼에 골인했고 요즘 100점이라는 딸 하나, 아들 하나의 어여쁜 남매를 두었는데도 40대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았다. 며칠 전 막내 외삼촌한테 연락이 왔을 때도 의식이 없다고 했었고 엄마도 이번엔 예감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막내 외숙모의 친정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친정어머니가 ‘올해 송장 두 번 치우게 생겼네’라고 했던 말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마음속에 담아둔 내 병과 갑작스레 전해 들은 막내 외숙모의 소식에 <뜨거운 안녕>을 관람하면서 계속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그렇게 멀쩡해 보이다가도 고통은 갑자기 찾아오고 죽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자의 자격에서 봤던 그 호스피스 병동이 떠오르며 나는 또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닦아냈지만 계속 눈물이 흘렀다. 차가운 밤공기에 차가워진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영화에 나오는 밴드 ‘불사조’의 멤버들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결성된 밴드라는 특수성 때문에 1기, 2기의 형식으로 멤버들이 바뀌어져 밖에 갈 수 없는 구조다. 그렇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불사조 멤버들은 다른 멤버들을 통해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영화 초반 이홍기의 연기는 어색했지만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진가를 발휘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원래 연기를 잘하는 임원희나 마동석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작고 귀여운 백혈병 아가씨와 아픈 엄마를 둔 남자 꼬마 아이 등 마지막 콘서트 장면에서 각자의 사연을 얘기하는 장면은 역시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펐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그런 의미의 죽음과는 다르지만 어쨌거나 내가 명확하게 밝혀진 죽음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상태다. 어젯밤, 같이 영화제를 보러 온 친구가 목욕하러 들어간 틈을 타 혼자 있게 되었을 때 마음 졸이며 몰래 안약을 넣었다. 가족 빼고는 병에 대해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리만 잘하면 된다고 하니 그나마 다른 병보단 나은 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니 처음 녹내장 선고를 받고 막막했던 감정에 휩싸여 엉엉 울었던 그때가 다시 떠올랐다. 다들 그런 게 아닐까? 영화 속 백진희의 대사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다.’ 나에게 닥쳐온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 시간을 소중하게 쓰자. 그리고 막내 외숙모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