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국어 공부역사 되돌아보기
내 앞에는 당면한 과제들이 많다. 그런데 나는 홀로 고군분투하며 아무도 시키지 않은 여러 가지 외국어 공부를 하는 중이다. 매일매일 조금의 시간, 그것이 단 10분일지라도 그 시간을 외국어 공부에 투자한다.
현재 제1외국어인 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까지 공부하고 있다. 사실 이외에도 공부하고 싶은 언어를 더 늘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 언젠가는 늘릴 거다. 문제는 후발주자인 중국어와 프랑스어 실력이 도통 어느 수준까지 올라오지 않고 있어서 당분간은 선뜻 새로운 언어를 시작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왜 AI가 발달하고(+앞으로 더 발달할 것이고) 번역앱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굳이 외국어 공부에 시간을 쏟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에 만난 반가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가 외국사람이길래 당연히 작가의 모국어로 쓴 책을 한글로 번역했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이 아니라 이런 종류의 책 특히 외국인들이 쓴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쓰는 것과 진행하는 방식도 다르고 유머를 풀어내는 방식도, 문장형태도 달라서 그런지 지루한 책들이 많았다. 이런 선입견이 있는 데다 마침 책도 두꺼웠다. 제목이 흥미로워서 빌릴까 하다 슬쩍 들춰보고 문장이 너무 눈에 안 들어오면 빌리지 말아야지 하고 서가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외국인인 저자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로 쓴 거라고? 뒤통수 한방 제대로 맞았다. 외국인이니까 당연히 저자의 모국어로 쓰고 그다음에 한글로 번역했겠지라고 생각한 건 나의 큰 착각이자 선입견이었다. 저자는 한국어도 공부했지만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많은 언어를 오랜 시간 동안 공부해 온 한 명의 학습자이기도 했다.
다만 이 분은 나처럼 취미로 외국어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고 직업도 언어학 전공에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등 직업과도 연관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미국에서 산 시간보다 해당 외국어를 쓰는 국가에서 거주한 경험도 많았다. 교수라는 전문가적인 관점도 놓치지 않으면서 그동안 자기가 왜 외국어 공부를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하고 있으며 외국어 학습자로서의 고충, 어려움, 이유 등도 설명해주고 있었다.
어려운 이론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한국어를 공부한 사람이 쓴 책이라 번역투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지 쉽게 읽혔다. 무엇보다 이 분의 직업이 교수라는 걸 떠나 한 개인으로 본다면 나같이 취미로 여러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친근감이 가기에 책이 잘 읽힌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몇 개의 외국어의 세계와 만나게 될까?
나에게 외국어는 세상을 보는 창문 같다고 했다. 같은 창문 앞에 서 있어도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풍경을 통해 느끼는 감정 역시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AI를 통해 외국어의 의미를 표면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언어를 통해 우리가 만날 새로운 세상의 풍경을 나만의 방식으로 접하고 싶다면 AI로 해결할 수 없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AI 시대에 우리가 외국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거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04페이지
AI의 등장과 발전으로 실용적인 목적의 외국어 학습은 조만간 사라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어 학습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외국어 학습의 주도권이 개인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즉 개인에 따라 외국어 학습에 대한 요구가 그만큼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요구에 의해, 누군가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시대는 이미 저물어 가고 있고, 그 대신에 개인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외국어를 학습하는 시대가 이미 문을 연 지 오래다.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열심히. 113페이지
외국어는 배울 것도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부인할 수 없다. 배워나가는 길은 시원하게 앞으로 뻗어나가는 직선이 아니다. 전진과 후퇴를 해나가다 보면 단계마다 고비마다 각별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 길의 가장 좋은 동반자는 좋은 교사도, 탁월한 교수법도 아니다. 외국어 공부를 그 자체로 즐기며 힘들지만 앞으로 나아가 보겠다는 각자의 마음과 태도다. 그러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학습 스타일을 발견하게 되고, 어느덧 외국어 공부에 끌려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해나가는 스스로를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평생의 친구를 얻게 될 것이다. 11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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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 결코 직선이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결국 큰 흐름으로는 직선을 향해 가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외국어 학습의 역사를 글로 기록하는 일은 유럽에서 외국어 학습자들에게 오래전부터 권장해 온 방법이기도 하다. 12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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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브런치 하면서 결국 하게 될 것이다.
쉬운 방법이란 말에 끌려 책을 펼치긴 하지만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 어떤 방법도 쉬울 수 없다. 그 이유도 간단하다. 외국어는 원래 배울 게 많고,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니 그렇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쉬운 방법을 찾아 헤매기보다 스스로에게 맞는 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외국어 성찰이다.
외국어 성찰은 시행착오를 거듭해 온 수많은 성인 학습자들이라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자신의 외국어 학습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면서 스스로 어떤 점이 한계이고, 어떤 부분이 강점인지를 파악해야만 자신에게 맞는 외국어 학습의 방향을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132페이지
외국어를 배우는 동안 이렇게 문장마다 새로운 것이 끝도 없이 나오고, 이를 이해하고 잘 사용하려면 역시 암기가 필수다. 암기만이 살 길이다. 암기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집중력이다. 137-138페이지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몰입은 수행해야 하는 일의 난이도와 수행자의 능력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즉 수행자의 능력에 비해 수행해야 하는 일이 너무 어려우면 몰입하기 쉽지 않고, 반대로 너무 쉬운 일을 할 때도 역시 몰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몰입이란 쉽게 말해 무슨 일에 미친 걸 뜻한다. 몰입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시간 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일에 집중하고, 그 결과에 대해 큰 보람과 성취를 맛보게 된다. 무언가에 깊이 빠져 그 안에서 최고의 집중 상태를 맛보는 즐거움은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다. 칙센트미하이는 여기에 '몰입은 자아에 따른 감정과 심리적인 장벽을 넘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138-139페이지
가장 중요한 건 어디에서 누구와 얼마나 많이 공부하느냐보다 본인에게 맞는 학습 방법을 찾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스스로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 학습법에서 자신이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를 우선 확인해야 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 시작한 외국어 공부에서 몰입할 부분이 없다면 집중하기도 어렵고, 성취감 역시 맛보기 어렵다. 결국 지속이 불가능하다. 반면에 한정된 시간에 집중도를 한껏 높여 마음껏 몰입하며 공부를 하고 나면 그때 느끼는 충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바로 그 충만함이 공부를 지속하게 하는 힘이다. 14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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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과 충만감. 중요한 요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수업이야말로 말 그대로 행위를 통한 학습이다. 프랑스 음식 문화를 통해 프랑스어를 배우는 외국어 학습이라니! 그때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선생님이 과제로 내준 빵과 과자를 만들면서 외국어도 배우고 친구들과 협력을 통해 프랑스 음식 문화도 익힐 수 있게 되었을 테니 한 과목의 수업을 통해 다양한 목표를 달성했을 것이다. 148페이지
지금까지 길게 이야기했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외국어를 잘하려면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다. 얼핏 돌이켜봐도 발음이나 문법, 단어, 표현 등 언어의 체계를 잘 알아야 하고, 해당 언어권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을 포함한 언어의 사용법을 잘 알아야 한다. 154페이지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언어 체계를 배우고, 배운 것을 수차례 연습하지 않고는 습득하기 어렵다. 외향적인 사람은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는 데 거침이 없으니 연습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찾는다. 그 사람의 자신감이 얼마나 내면화되어 있는가를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겉으로 볼 때 외향적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 있게 말하고 당장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낸다.
반면 내성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은 말하는 연습을 하고 싶긴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을 자신 있게 표현하는 걸 주저한다. 그 심리적인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외국어를 배울 때는 자신감 있게, 적극적으로 연습을 많이 해보는 것이 유리하다. 163페이지
우리에게는 다양한 인생 경험과 관심사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개성과 성향, 취향을 존중하며 각자의 요구를 스스로 파악해서 시작하는 쪽이 몰개성적인 외국어 비법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존중하며,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람에 따라 빨리 찾을 수도, 늦게 찾을 수도 있다. 시행착오를 여러 번 거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렇게 자신에게 좋은 방법을 찾는 동안, 자신이 정한 목표에 맞춰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력은 그만큼 쌓여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164페이지
여러 언어를 공부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외국어 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유일 수 있지만 낯선 언어를 깨우쳐 나가는 과정, 그것을 점차 익혀 자유롭게 말과 글을 통해 소통하는 걸 매우 즐긴다. 공부할수록 새로운 언어의 체계와 구조를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고, 배워 나갈수록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고, 글과 말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되어 즐겁다. 외국어를 사용할 때면 또 다른 내가 된 것 같다. 마치 무대에 선 연극배우 같다고나 할까. 16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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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의 변화는 모르겠지만, 한 달 전/두 달 전과 비교한다면 확실히 늘어 있다.
이런 해방감과 풍요로움은 나에게 그 자체로 외국어 학습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 미국에 살고 있지만 매일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히 몇 개의 외국어를 사용할 기회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맛본 해방감과 풍요로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내 방에 앉아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16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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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와도 비슷하다. 해외여행을 좋아하지만 맨날 여행을 다닐 수도 없다. 내 방 안에서 외부의 세계와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다.
"배우고 싶은 외국어로 된 글을 많이 읽으세요."
바로 다독이다. 내 경험으로는 새로운 외국어를 배울 때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스티븐 크레션 역시 읽기의 중요성, 특히 자유로운 다독을 강조했다. 다독과 정독은 똑같은 읽기라고 여기기 쉽지만 엄연히 다르다. 다독은 정독과 달리 폭넓고 다양하게, 부담 없이 편하게 읽는 것이다. 관심 있는 분야, 읽고 싶은 것을 그때그때 골라 읽으며 외국어와 접촉면을 넓히면 된다. 16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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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외국어를 공부하는 목적 중 하나는 해당 언어로 된 책이나 문학작품, 가사를 읽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항상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 되면 꼭 읽을거리를 찾아 나선다.
자신의 학습법을 스스로 만들어 공부를 하다 보면 그렇게 성공한 경험을 얻고 나면 다른 상황에서 훨씬 더 효과적인 자신만의 학습법을 스스로 만들어 익혀 나가게 된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177페이지
어휘력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다독을 함께 이야기했지만, 다독의 장점은 어휘력을 늘리는 것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혼자서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말하기는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하다. 열심히 연습하고 싶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읽기에는 한계가 없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만큼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다. 183페이지
자율성 때문이다. 성인 학습자의 외국어 학습 특징은 바로 자율성이다. 198페이지
자율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스스로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단계적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게 학습해 나가는 것이다. 학창 시절의 우리에게 스스로 정한 목적과 목표가 따로 있었을 리 없다. 이미 교육 과정이 설정한 목표가 정해져 있고, 무조건 그것을 따라야만 한다. 하지만 성인이라면 이제 이야기는 다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목적을 정하고, 단계적 목표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무슨 의미일까. 지금까지의 기억은 잊을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즉,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외국어 학습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거라는 의미다. 200페이지
나는 성인 학습자가 외국어를 대하는 태도야말로 이래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 즐겁고 편안하게 사용할 것. 그럴 수 있을 때까지 취미처럼 놀이처럼 꾸준히 배워 나갈 것. 205페이지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마음과 머리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머리에는 논리적으로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이유가 서 있어야 한다. 마음으로는 배우고 싶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210페이지
외국어를 배우는 행위 그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이야말로 외국어 학습의 성공 요인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고 생각해 보자. 새로운 발음과 문법의 체계를 익히는 것은 누구에게나 낯설다. 하지만 그 과정을 괴로워하기보다 그 자체에 관심을 갖고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지적 자극을 받는다면 어떨까. 지적 자극은 호기심 충족으로 이어지고, 매일매일 새로운 미션이 주어진다. 그 미션을 통과하는 과정 자체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어느덧 반복적인 연습, 암기가 필수인 외국어 학습 과정에 익숙해지는 스스로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변화하는 자신을 보는 것이 즐겁다. 즐거우면 지속하기가 훨씬 수월하고, 지속적으로 해 나가기만 하면 어느덧 우수한 학습자가 되어있다. 22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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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지속하기. 메모메모.
외국어 그 자체보다 배우는 행위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행위의 성격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외국어는 어쩌면 공부라기보다 훈련에 가까울 수 있다. 체육이나 음악과 비슷하다. 끊임없이 연습을 하지 않으면 익힐 수 없다. 학문적인 측면보다 실용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 발음을 연습하지 않으면 잘할 수 없다. (중략) 간단히 말해 외국어 학습은 근본적으로 새로 배운 것을 연습하면서 그로 인해 습득한 것을 자신 안에 조금씩 쌓아가는 행위다. 즉, '행위를 통한 학습'이다. 이러한 행위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야말로 관심의 첫걸음이다. 220페이지
처음에는 여러 개의 언어를 공부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접할 때의 호기심, 알아 나가는 과정이 주는 즐거움, 어느덧 조금씩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한 스스로를 만나는 기쁨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다중언어자의 길로 이끈 동력이라 할 수 있다. 22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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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언어자의 기쁨을 누리자.
익숙한 정도에 따라 언어별로 접하는 분량과 내용, 난이도는 제각각이지만 이렇게 습관을 들이면 실제 자주 사용하지는 않아도 해당 언어에 대한 감은 유지할 수 있다. 언젠가 필요할 때 예전 실력을 되찾는 속도가 한결 빨라진다. 226페이지
하나는 외국어는 무조건 배울 게 많고 어렵다는 전제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알면 포기하고 싶을 때 마음을 다잡는 힘이 된다.
또 하나는 외국어는 잊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는 전제다. 오늘 공부한 것을 다 잊어도 그게 외국어의 속성이라면 지칠 때마다 조금 위로가 된다. 228페이지
교육과정이 발전하고 교재 역시 다양해지면서 외국어 학습 과정을 직선이라고, 즉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오랫동안 외국어 공부를 해온 내 경험에 의하면 외국어 학습은 직선일 수 없다. 한 번 배운 걸 다 기억하고 앞으로 앞으로 쭉 뻗은 직선처럼 직진만 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중략) 그러나 희망을 잃을 필요는 없다. 언제까지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잡고 있으면 어느 순간 한 계단 성큼 뛰어오른 것 같은 희열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 희열을 경험하면, 그 경험을 두고두고 기억하면 어제 외운 것이 당장 오늘 떠오르지 않아도 덜 좌절할 수 있다. 230-231페이지
새로운 정보를 우리 뇌에 주입하는데 외국어 학습만큼 효과적인 것도 드물다. 그렇게 생각하면 외국어를 배우는 일이 어려울수록 뇌 건강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니 매력적으로까지 여겨진다. 이렇게 지난한 시간을 견뎌낸 뒤 마주하는 한 단계 상스의 희열은 더 크고 강력하다. 232페이지
다만 외국어를 기능으로 이해하면 학습기와 유지기의 특징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해 보자. 외국어가 기능이라면 훈련으로 수준을 끌어올리는 운동이나 음악과 별 차이가 없다. 운동과 음악 역시 학습기를 거치고 나면 유지기가 이어진다. 그동안 쌓은 실력을 유지하려면 쉬지 않고 연습을 해야 한다. 운동과 음악에 상당한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하듯 외국어 역시 비슷한 부분이 있다. 쉬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지속해야 실력을 유지할 수 있다. 243페이지
성인이 된 뒤, 일정하게 외국어를 공부하고 외국어 실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면 이제는 그 언어가 타자의 것이라는 의식을 버리는 편이 좋다. 즉 국적과 관계없이 스스로 그 언어 사용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243페이지
유지기는 절대 화석처럼 굳어있는 시간이 아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어디선가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것이 기다린다. 이름하여 우발적 학습이다. 알고 있는 것을 딛고 새로운 것을 내 것으로 삼는 즐거움이야말로 외국어 학습의 맛이다. 254페이지
모어만 할 줄 아는 사람에 비해 외국어를 하나라도 공부해 본 사람은 외국어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성인이 된 지금, 모어로만 세상을 보았다면 어떤 외국어라도 배워볼 것을 권한다. 의무적으로, 억지로 해야 했던 외국어가 아닌 나만의 새로운 동기로 외국어를 배워보는 것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당신을 안내할 것이다. 26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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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이게 내가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우면 좋은 점이 많다. 우선 지리적으로 가까우니 쓸모가 많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도 쉽게 갈 수 있고, 교류가 많으니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배운 외국어를 현지에서 쓸 기회를 많이 갖는 것은 외국어 학습에 대단한 동기가 된다. 269페이지
외국어 학습은 매우 길고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수시로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어떤 학습자가 어떤 언어를 만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변수다. 개인에 따라 잘 맞는 외국어도 있고 아닌 외국어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게 보자면 하나의 외국어를 잘했다고 모든 언어를 잘하는 게 아니다. 반대로 하나를 못했다고 모두 다 포기할 일도 아니다. 283페이지
에스페란토를 배우는 일은 그래서 단지 새로운 언어를 익힌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말하자면 에스페란토 학습은 '외국어 학습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비슷한 이상을 공유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학습자들끼리의 연대감이 매우 강하다. 290페이지
이제 누군가 정해준 외국어가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배워볼 때다. 목표도 스스로 정한다. 유창한 수준을 원하면 더 열심히 하면 되겠지만 스스로 만족하고 보람을 느낄 정도까지만 해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압박감에서 해방된 상태로 단계마다 성취감을 느끼며 그로 인해 풍부한 세계와의 만남을 기대할 수 있다. 290페이지
다시 한번 외국어 학습을 공부로 접근하기보다 때로는 취미처럼 또 때로는 놀이처럼 즐길 것을 제안한다. 취미와 놀이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재미가 있어야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은 같다. 어떤 취미나 놀이든 재미가 없으면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 다른 점은 뭘까. 놀이는 그냥 하면 되지만 취미는 일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291페이지
이렇게 결심을 했다고 해서 외국어 공부가 저절로 되는 건 물론 아니다. 우선 그동안의 외국어 학습 경험을 돌아보고 과연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은지 생각했다. 즉, 외국어 성찰이다. 297페이지
어떤 괴로움이 와도 한 번 맛본 즐거움을 떠올리며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외국어 학습의 정도이자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평생의 동반이란 이런 것이다. 313페이지
이제 외국어는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게 되었다.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한결 가까워진 지구에서 평화를 지키는 기본 요소다. 바로 그 문화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서로의 말, 서로의 언어를 아는 것이다. 이는 또한 세계 시민이 갖추고 평생 유지하면 좋은 기본 교양이기도 하다. 곧 외국어 학습의 의미는 실용적 수단, 도구를 뛰어넘어 그 자체로 개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이끄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319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