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소설인데 왜 이렇게 우리네랑 비슷한 느낌이지?
가족은 참 신비하고 신기한 존재다. 세상 가까운 존재이기에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서로 욕하고 싸우고 치고받고 영원히 멀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함께했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낄 수 없는 끈끈함이 존재한다.
작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반쯤은 아니 반 이상은(?) 진짜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려낸 이야기. 여기 나오는 아버지가 자식들이 맘에 안 들거나 할 때 당나귀 같은 자식이라고 하는 게 그게 너무 웃겼다 (ㅋㅋㅋ). 어렸던 막내(작가)가 커가면서 펼쳐지는 가족들만 통하는 암호나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막내도 성장을 하면서 가족 간의 관계가 변화하고 달라진다.
이탈리아가 한국과 사회적으로 닮은 점이 많다고 하던데 그중 하나가 열정이 넘치고 가족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과 통하는 점도 보여서 재밌게 읽었다.
우리 형제는 5남매다. 우리는 각기 다른 도시에 살고 있으며 어떤 형제는 외국에 산다. 그리고 편지 왕래도 자주 없다. 만났을 때도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끼리는 단 한마디면 족하다. 단 한마디, 한 문장, 우리의 어린 시절에 수도 없이 듣고 반복했던 그 오래된 말 한마디면 우리들의 옛날 관계를 단숨에 되찾는다. ‘우린 베르가모에 소풍 온 게 아니오’라든지 ‘황화수소한 냄새는 어떤지.’ 우리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는 떼려야 뗄 수도 없게 이런 문장, 이런 말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문장 하나 혹은 이런 말 중의 하나는 우리 형제들이 어두운 동굴 속이나 수백만의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도 서로를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문장들은 우리들의 라틴어였고 지나간 날들의 사전이었으며 이집트 혹은 아시리아-바빌로니아의 상형문자, 존재하기를 멈추었지만 난폭한 물살과 시간의 부식 속에서 살아남은 생명세포들과 같은 것이다. 이런 문장들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존재하게 될 우리 가족 간의 연대감의 토대를 이루면서, 우리 중 누군가가 “친애하는 리프만 씨”라고 말하게 될 때, 그리고 곧 “그 이야기 좀 집어치워! 도대체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군!”이라고 말하는 성급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우리의 귀에 다시 울리게 될 때, 지구상의 이곳저곳에서 이런 말들이 다시 창조되고 살아날 것이다. 36-3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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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도 우리 가족만 이해할 수 있는 이런 말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아임 한구리 나우'와 같은.
파올라와 마리오는 너무나 참을 수 없는 아버지의 독재성, 극도로 단순하고 엄격한 우리 집의 습관들이 자신들의 우울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했다. 언니와 오빠는 우리 집에 유배당해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어떤 집, 전혀 다른 습관들을 꿈꾸는 듯한 분위기였다. 언니와 오빠는 시무룩해 있는 달덩이 같은 얼굴, 생기 잃은 시선, 이해할 수 없는 표정, 짧은 대답, 집이 다 울릴 정도로 문을 쾅 닫아버리거나 토요일과 일요일 산행을 단호하게 거절함으로써 자신들이 우리 집을 참을 수 없어한다는 것을 표현했다. 아버지가 방에서 나가면 언니 오빠의 기분이 금방 좋아졌는데 참을 수 없어하는 대상에 어머니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참을 수 없어하는 대상은 오로지 아버지 한 분이었다. 88페이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버지 본인도 그다지 권위가 없음을 증명하게 되었다. 파올라 언니가 몇 년 동안 그 청년과 산책을 계속했으니까. 그리고 촛불이 꺼져 사그라지듯 차츰차츰 저절로 시들해졌을 때 언니는 산책을 그만두었다. 그 일은 아버지의 의사를 따른 게 아니었고 아버지의 고함과 금지는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93페이지
그 서적상은 전쟁이 끝난 후 프라이부르크에 돌아가자 이렇게 소리쳤다.
“이젠 나의 독일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구나!”
이 말은 우리 집에 남아 있는 아주 유명한 문장이었고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물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게 되면 이 말을 크게 외치곤 했다. 103페이지
아버지가 손수 그 집을 샀는데 아버지는 값이 싼 데다가 멋은 없지만 여러 가지 이점, 즉 역에서 아주 가깝고 집이 커서 방이 많다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역에서 가까운 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우린 생전 어디로 떠나지도 않잖아요?” 105페이지
“비르 어디 간 거야! 너희들 비르 어떻게 했어!”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정말 너무 어수선해! 난 너희들처럼 무질서한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니까!”
그런데 비르는 대게 아버지 책상 서랍 속에 들어 있곤 했다. 109페이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민족주의자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어떤 형태이든 민족주의를 증오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대한 오빠의 멸시는 두 분과 우리 식구 모두, 우리의 습관과 우리의 모든 생활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였다. 159페이지
파올라 언니는 미란다 올케의 아기가 못 생겼다고 말했다. “얼굴선이 거칠고 못 생겼어요.” 언니가 말했다. “철도원 자식 같아요!”
이제 어머니는 미란다 올케의 아기를 보러 갈 때 이렇게 말했다.
“철도원이 잘 있는지 가서 보고 오마.” 17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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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쾌하다. (ㅋㅋㅋ)
그러다가 언니는 마리오 오빠와 함께 하던 게임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모두 광물성이야! 아델레 라세티는 정말 순수한 광물성이야. 난 이제 그런 광물성 사람들과 잘 지낼 수가 없어!”
며칠 후 언니는 다시 떠났다. 그러면 아버지는 말했다. “왜 좀 더 있다 가지 그러니? 넌 정말 당나귀 같구나!” 178페이지
난 결혼과 동시에 갑자기 피곤과 노동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태해져서 의지는 약해졌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마비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나는 완전한 무력감에 포위되어 있는 내 모습만을 상상했을 뿐이었다. (중략) 나는 돈도 알게 되었다. 난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고, 어머니처럼 씀씀이가 헤펐는데 이런저런 일을 통해 돈이란 피곤하고 애매모호한 복잡한 존재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191-192페이지
어머니는 스웨터를 말할 때 ‘노이베르크 거야!’라고 하듯, 외투를 말할 때 ‘벨롬 씨가 만든 거야!’라고 하듯, ‘이건 카르팡뒤야!’라고 했다. 식사 때 사과가 맛이 없다고 아버지가 불평하면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맛이 없다고요? 이건 카르팡뒤인걸요!” 203-204페이지
출판사 사장은 더는 수줍음을 타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수줍음은 외부 사람들과 대화해야 할 때에만 가끔 되살아났는데 그럴 때는 수줍음을 타는 게 아니라 차갑고 조용하고 신비에 싸인 사람처럼 보였다. 이 때문에 그의 수줍음은 외부 사람들을 위협해서, 외부 사람들은 커다란 유리 테이블 맞은편에서 명료하고 냉철한 남빛 시선이 자신들을 에워싸며 얼음같이 차갑게, 분명한 거리를 유지하고 자신들을 탐색하고 저울질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그 수줍음은 직업상 큰 무기가 되었다. 그 수줍음은 힘이 되었고 나비가 불빛에 현혹되어 달려들듯이 외부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 힘에 부딪혔다. 22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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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사람도 잘 살아갈 수 있다.
어머니는 어떤 곳을 생각할 때 언제나 당신이 아는 그 지방 사람에 의존해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벨기에 전체를 통틀어 어머니가 아는 벨기에 사람이라고는 셰브르몽 한 사람뿐이었다. 벨기에에 무슨 일이 벌어지거나 홍수가 나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이렇게 말했다. “셰브르몽은 어떻게 됐을까!” 235페이지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의 세상은 거대하고 이해할 수 없으며 경계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할 수 있는 대로 세상을 다시 살아갔다. 어머니는 천성이 유쾌한 분이어서 유쾌하게 세상을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 어머니의 영혼은 나이를 먹어갈 줄을 몰랐고 절대 노년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과거의 몰락을 애석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접어놓았다. 어머니는 과거의 몰락을 눈물 없이 바라보았고 애도를 표하지도 않았다. 237페이지
카라라 씨는 흰 콧수염을 기른 키가 크고 마른 분으로, 검은 망토를 휘날리면서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어머니는 그분을 정직한 사람이라고 항상 말했는데 ‘카라라 씨처럼 정직하게’라고 예를 들 정도였다. 청렴결백의 극치를 가리키고 싶을 때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분이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 그렇게 말했다. 246-247페이지
아버지는 항상 어떤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과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궁금해했다. “어떻게 그 사람을 알게 됐지? 어떻게 서로 알게 되었을까?” 아버지는 불안스럽게 물어보았다. “아, 어쩌면 산 때문인지도 몰라! 산에서 알게 되었을 거야!” 아버지는 그렇게 두 사람 관계의 출발점을 정해놓은 뒤에야 조용해졌다. 그리고 둘 중 한 사람을 존경하면 나머지 한 사람도 호의적으로 인정했다. 271페이지
롤라는 항상 감옥에서 보낸 시간을 향수에 젖어 이야기했다. “내가 감옥에 있었을 때” 종종 이렇게 말했다. 감옥에서 그녀는 아주 편안했고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듯이 차분해졌으며 열등감과 억압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정치적인 이유로 수감된 유고슬라비아 처녀들이나 억류자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롤라는 그녀들이 공감할 말을 찾아내서 신임을 얻었다. 그래서 다른 여죄수들은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고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왔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발보와 대화를 하면 이야기는 항상 ‘감옥에 관한’ 것으로 끝났다. 그녀에게는 감옥에 있을 때처럼 아주 편안하고 자유롭고 억압받지 않고 완전히 자기 노력의 주인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둘 다 이르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찾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얼마 뒤에 그녀가 병에 걸려 잠깐 동안 입원해야 했다. 그녀는 병원의 처녀 환자들 속에서 극적인 순간마다, 긴장과 위험의 순간 그리고 절박한 순간마다 뚜렷하게 발산되는 민중 지도자로서의 힘을 다소나마 되찾을 수 있었다. 274-275페이지
그녀(리세타)의 솔직하고 부드럽고 어린아이 같은 성질 속에서 그녀의 의견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것과 뒤섞여, 마치 잎사귀가 많은 커다란 나무가 그렇듯,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어나갔고 그러면서 맑은 거울 같은 그녀의 영혼이 그녀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277페이지
사실 그(발보)가 어떤 종류의 과학과도 관련이 없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건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을 아주 잘 해냈고 그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뿐만 아니라 후에 이 시리즈의 책임자가 되었는데 그는 계속 온화하고 부드럽고 무방비 상태의 슬픈 미소를 지었으며 항상 팔을 벌리며 자기는 과학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그는 출판사를 떠났고 과학 서적을 내는 출판사를 혼자 힘으로 차렸다. 279페이지
지금도 가끔씩 그(파베세)를 떠올릴 때마다 가장 많이 기억나고 눈물 나게 하는 추억은 그의 풍자다. 이제 그런 풍자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책 속에는 풍자의 그림자조차 남아 있지 않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가는 그의 짓궂은 미소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80페이지
파베세는 우리보다 훨씬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는 충동이나 경솔, 어리석음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반면 파베세의 실수는 신중함과 빈틈없는 생각, 계산, 지성에서 탄생했으니까.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위험할 게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실수는 치명적이었다. 빈틈없이 생각했기에 잘못 접어든 길에서 되돌아 나오기가 힘들었다. 치밀하게 저지른 실수는 우리를 단단히 얽어매었다. 치밀함은 경솔함이나 무모함보다도 더 단단하게 우리들 속에 뿌리를 내린다. 그렇게 강하고 그렇게 단단하고 그렇게 깊이 우리를 얽어맨 그 매듭에서 어떻게 풀려날 수 있을까? 신중함이나 계산, 치밀함은 이성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답변할 말을 찾지 못해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성의 얼굴, 이성의 씁쓸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282페이지
롤라로 말하자면, 그녀는 지금 자기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이상적인 아이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매 순간마다 게으르고 어수선하고 부주의한 자기 아이들과 이상 속의 아이들을 비교했다. 그래서 야비하고 혼란스럽게 아이들을 야단치기만 했다. 하지만 야단을 겁내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어서 그저 집안 분위기만 불편하고 시끄럽고 혼돈에 빠진 듯이 혼란스러웠다. 285페이지
그녀(롤라)는 먼 곳에 사는 실내장식업자나 비용은 적게 들지만 전화가 없는 목수들,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 때문에 적게 돈을 들이고도 옷감을 살 수 있는 오지의 상점들을 찾아다니느라 실제 생활이 더 복잡해졌다. 28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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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싼 것만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자아비판하던 때 기억나?” 전쟁이 끝난 후에 우리 사이에서는 자아비판이 유행이었다. 즉 잘못을 저지른 뒤 그것들을 큰 소리로 분석하고 해부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실수에 실수를 더했다. 음악이 오페라의 언어들과 뒤섞여 그 의미가 불분명해지고 언어들이 영광의 리듬 속에서 변화해 가듯, 자아비판은 이미 저지른 실수들과 합쳐지고 뒤섞여 버렸다. 289페이지
“당신도 그 애들이 그 불쌍한 테르니와 항상 수다 떨던 거 생각나지! 프루스트에 미쳐서 언제나 그 이야기만 했지. 그런데 지금은 파올라와 마리오 사이가 너무 냉담해. 이젠 얼굴도 마주 보려 하지 않는다니까. 마리오는 파올라가 부르주아라고 생각하지. 당나귀들 같으니라고!” 295페이지
내가 재혼해서 몇 달 뒤 로마로 가자 어머니는 얼마 동안 나에게 원망 같은 걸 품었다. 하지만 원망이라는 감정은 어머니의 영혼 속에 그렇게 씁쓸하고 깊은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다. 난 로마와 토리노를 왔다 갔다 했다. 영원히 토리노를 떠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295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