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문장에 눈물이 고이다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을 만났을 때(상)>편에서 이어집니다.
출근길에 오며 가며 팟캐스트로 이번주 낭독분량을 계속 듣고 있었다. 하지만 소음이 많은 밖에서 들으니까 잘 안 들리는 부분도 많아서 대강 줄거리만 이해하는 정도만 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자세한 내용이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점심시간에 시간이 남길래 사람들이 다들 점심 먹으러 나가서 비어있는 조용한 사무실에서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연락온 아이코는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사실 그 결혼이 츠키하라 덕분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로 아이코의 결혼 상대가 그때 촬영현장 끝나고 같이 술을 마셨던 다른 연예인의 매니저였던, 케이스케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아이코는 어렸을 때 풍선을 좋아했고 특히 엄마가 풍선에 그려준 토끼를 좋아했다고 했다. 어느 날은 아빠한테 대신 그려달라고 했더니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아빠가 이상하게 그려준 적이 있었다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우연히 다른 현장에서 만난 케이스케와 재회하고 같은 신칸센에 타게 됐는데 본인은 1호차, 케이스케는 16호차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어떡할까 하다가 '옆자리가 비었는데요'하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케이스케가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1호차까지 왔다고. 그때 기차 문이 열리며 케이스케가 나타났을 때 왠지 모르게 어렸을 때 좋아했던 그 토끼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렇게 인연이 된 케이스케와 결혼을 결심하게 되고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父に会わせると、
「愛子、よくやった。本当いい人見つけてくれてお父さん嬉しいよ」って言ってくれて。
何だか嬉しくて、泣けてきて、そしたら父が
「なんだ、愛子。何泣いてる?あ、わかった。あれか?お父さんが昔描いたウサギ思い出したのか」って。
そしたら私、また泣けてきて、お父さん、お母さん、今までありがとう。そして、啓介さん、こんな私を見つけてくれて、ありがとう。
そう、心から思いました。
아빠를 만나게 했더니
'아이코, 잘됐다. 정말로 좋은 사람을 찾았구나. 아빠는 너무 기쁘단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뭔가 기뻐서 눈물이 났다. 그러자 아빠가 ‘뭐야, 아이코. 왜 우는 거야? 아, 알겠다. 그것 때문이지?
아빠가 옛날에 그려줬던 토끼 생각이 난거지?'라고.
그러자 나는 다시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요.
아빠, 엄마, 고마워요.
그리고 케이스케 씨, 이런 저를 발견해 줘서 고마워요,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어요.
처음엔 엄마만큼 토끼를 예쁘게 그려주지 못한 아빠에게 어린 마음에 아빠에게 뭐라고 한 아이코 때문에 1차로 눈물이 터질 뻔했다. 그리고 또 다른 여배우의 매니저였던 케이스케의 모습을 보고 토끼가 떠올랐다는 아이코와 케이스케와 만나게 되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면서 부모님에게 인사시키러 갔을 때 아빠가 '네가 드디어 좋은 사람을 찾았구나'하고 말할 때의 부모의 마음.
겨우 효도를 한 거 같다는 느낌을 받은 아이코 그리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토끼가 생각났냐고 묻는 아버지 때문에 2차로 눈물샘이 폭발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오면 우리 아빠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너 초등학교 1학년 땐가, 토요일에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데 그렇게 밝게 웃으면서 집에 오더라고"와 같은, 나도 잊어버리고 있던 순간의 이야기를 할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나의 어떤 모습에 대해 말할지도. 이런 순간을 위해 말하지 않고 아껴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와 내 상황이 겹쳐 보였다. 나는 부모님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 것 같아 엄청 미안해졌다. 물론 자식인 나를 두고 결혼 못/안 하는 걸 가지고 니 탓 내 탓하는 식으로 말한 건 진짜 기분 나빴지만 한편으로는 또 그런 마음도 드는 거지.
부모님이 속상한 마음을 그렇게 말한 건가. 본인들이 볼 때는 멀쩡한 딸내미가 왜 결혼을 안 하는가 싶은 거고 한편으로는 또 언제까지 본인들의 나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하나 싶고 그런 복잡한 감정. 그래서 나는 이런 내가 죄인 같이 느껴지고...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내용과 관련 없이 일본어로 된 이 라디오 소설의 대사들은 심각하고 어려운 문장이 아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한국어로 읽었다면 그렇게까지 크게 감동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냥 슥 읽고 지나갔을지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걸 일본어로 읽었기 때문에,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해석하면서 감정이 한번 더해지고 일본어로 된 특유의 글 분위기 때문에 좀 더 울컥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점심시간에 혼자 남겨져서 아무도 없이 고요한 회사 회의실 한 칸에서 팟캐스트를 듣는 시간. 나도 언젠가는 아이코처럼 부모님께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소개할 날이 올까? 그리고 나는 과연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두 눈에 눈물이 꽉 고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