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마지막 출근날 (1)

십여 년의 근무기간을 곁들인

by 세니seny

8년 반 정도 다닌 회사의 마지막 출근을 한 오늘. 이 오늘 하루를 적어볼까 한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회사 관련한 새로운 글은 올라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글을 쓸 당시엔 호언장담했지만 쓰다 보니 이후의 이야기가 있어서 몇 개 더 나옵니다...ㅎ)




아침에 병원에 들렀다 조금 늦게 출근했다. 오자마자 바쁘다 바빠. 거래처에 나 그만둔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전화 돌리기 시-작. 거래처래봤자 많지도 않지만 이 사실을 모르면 나중에 서운해 할 수도 있으니 간단히 사정을 얘기하고 전화 끊기를 반복한다. 그중엔 통화가 안된 분들도 있어서 메시지를 남겼다.


그중에 한 분하고 꽤 오래 통화를 했다.


개인적으로 내 친동생하고 생년월일까지 똑같아서 동생 같은 느낌인 회계사님이다. 이 분이 저연차일 때부터 우리 회사를 맡았는데 그 이후로 여태까지 담당자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의 애정이 있다. 이번에 세무조정 하면서 따로 밥도 먹으면서 얘기도 많이 나눴다. 그리스 여행 다녀왔다는 얘길 하길래 캐물어서 놀기에 어느 섬이 좋다더라, 하는 정보도 얻고 어떤 말을 하면서 슬쩍 그만두는 거에 대한 이야기를 흘리기도 했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무실이 두 개 층을 쓰고 있어서 내가 근무하는 층이 아닌 다른 층에도 인사하려고 내려가봤더니 전멸이네? 진짜 별로 안 친한 한 명과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한 분은 전화통화를 하고 있길래 그냥 나왔다. 그 층엔 외근직 직원이 대부분이라 이맘때가 외부일정이 많아서 다들 자리에 없었다. 심지어 사장님도 자리에 안 계셨다.


그러고 났더니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인사팀장과 상사와 잠깐 이야기 나누고 팀원들과 점심 먹으러 갔다. 마지막 날이니까 더 맛있는 걸 먹으러 가도 됐었지만 내가 속이 안 좋아서 무난한 음식을 먹고 음료수 한 잔씩을 사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결국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하던 날 편의점에서 샀던 고장 난 우산은 회사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다. 그래야 미련이 안 남을 거 같아서. 볼 때마다 생각나니까. 어차피 그 동인 여러 번 뒤집혀서 이미 고장 나기도 했고 눈에 안 보이면 기억에서도 사라지니 좀 낫겠지.


자, 이제 인사팀에 퇴직서를 제출하고 법인카드도 반납하고 노트북도 반납한다. 아참, 출입증도. 그리고 임시보관함에 저장해 두었던, 전사에 발송할 퇴사 안내 메일의 전송 버튼을 눌렀다.


점심시간이 끝난 직후인 1시 반쯤, 지금은 퇴사하셨지만 나에게 팀장 자리를 물려주신, 근처 3분 거리에서 일하는 상사와 잠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에 맞춰 나온다는 게 늦어졌다. 다른 팀은 아무도 없고 우리 본부 사람들 밖에 남지 않은 한낮의 사무실을 황급히 빠져나오려는데 팀에서 미리 준비한 꽃다발을 전해주더라. 나 꽃 좋아하는데... 찡해졌다. 다 같이 사진을 찍고 급하게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상사가 마지막으로 1층까지 데려다주셨다.


눈물이 조금 나올 것 같았지만 울지는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오후의 햇살이 따가웠다.


건물 나서자마자 바로 전 팀장님께 전화를 했는데 안 받으시네...? 사무실이 여기서 200미터 앞이니 가보자. 드릴 게 있었는데 연락이 정 안 되면 건물 로비에다가 전달해 달라고 주고 나와야 하나. 아님 그냥 대표님 드리고 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과 함께 10분만 기다려보자 하고 서있었더니 다행히 전화가 온다. 금방 사무실에서 내려오셨다.


내가 미용실 예약을 해놓는 바람에 얘기할 시간이 많이 없었다. 원래 이번 주에 술이라도 한 잔 하기로 했는데... 바쁘셨겠지. 카톡은 진즉 월요일에 보내놨는데 읽지 않으시길래 그러려니 했건만 뜬금없이 오늘 아침에 전화가 왔다. 메시지를 이제야 봤다고. 전화드릴 걸 그랬나 보다.


카페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까의 꽃다발의 여운 때문인지 계속 눈물이 나오려 해서 혼났다. 카페를 나와 지하철역 입구까지 데려다주셨다. 여행 다녀와서 꼭 뵙기로 하고 지하철 출입구로 들어갔다.

매거진의 이전글2-12. 퇴사 전 날, D-1 (3)